[김영한 칼럼] 체포되어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예수: 두 가지 역설(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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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VI. 진리가 무엇인가 묻는 빌라도

복음서 저자 요한은 빌라도 심문을 받는 역사적 예수의 정체성(正體性) 측면을 조명하고 있다. 빌라도는 다시 관청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서 묻는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 18:33)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요 18:35).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예수는 그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정치적 사회적 나라가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예수는 분명히 당시 열심당(Zealots)이 추구했던 정치적 사회적 왕국를 거부했다. 빌라도가 말한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요 18:37a).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 18:37b).

여기서 예수가 자신이 왕이라 하심은 이 세상에서 통치하는 정치적 왕을 의미한 것이 아니다.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세상적 질서를 포함하는 영적인 질서를 포함하고 있다. 이 하나님 나라에는 정치적 군사적인 로마 제국에 대한 권세도 포함되어 있다. 예수는 만유의 통치자로서의 하나님 아들이라는 측면에서 실제로 로마 제국을 통치하는 왕이시다. 그러므로 왕중 왕이시다. 로마 황제의 권력과 운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로마제국을 세우시고 운영하시고 그 운명을 주재하시는 분이시다. 구약시대에 앗시리아와 바벨론이 하나님의 세상통치의 도구였듯이, 신약시대에는 희랍과 로마제국도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막대기다.

그러므로 예언자 이사야는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페르시아를 건설한 고레스 왕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같이 대언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 곧 너를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사 45:1-4).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고레스는 비록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열국을 정복하는 권세를 부여하였다. 고레스는 하나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막대기다. 로마시대에 하나님은 지금 로마황제에게 세상의 주권을 위임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 자신은 우주의 왕이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포괄하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다.

근본주의자들은 너무 좁게 해석하여 예수는 단지 구원받은 영혼들이 모인 왕국의 영적 왕이라는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은 나사렛 예수가 전파한 하나님 나라를 너무 영적으로 협착(狹窄)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예수는 구원받은 영혼들의 나라만이 아니라 빌라도가 그 왕국의 총독 노릇을 하고 있는 로마제국을 포함하여 앞으로 다가오는 이 세상 나라와 그뿐 아니라 앞으로 천상에서 내려와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는 뜻이다.

나사렛 예수는 이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역사과정에는 세상나라 속에서 복음의 씨가 뿌려지면서 하나님 나라가 누룩처럼 퍼져 나간다. 하나님 나라는 작은 보이지 않는 실재다. 이 실재는 역사과정에서 커져간다. 그리고 파편적인 모습(예컨대 오순절 사건,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 니케아 종교회의,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개혁, 18세기 웨슬리와 에드워즈의 부흥운동,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등 교회 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는 세상 나라는 하나님 나라에 편입된다.

로마인 유대 총독 빌라도는 예수에 대하여 유대인들보다는 동정적이어서 예수를 석방하려하고 심지어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 여기서 빌라도는 심문자이지만 오히려 피의자 예수에게 진리가 무엇인가 묻고 있다. 빌라도는 진리를 증거하는 예수의 말씀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예수가 진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예수는 제자 도마와의 대화에서 천명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빌라도는 성육신하신 진리 자체인 역사적 예수와 대화하고 있으면서도 진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빌라도는 그 앞에 인격이신 진리 자체가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irony)이다. 이에 대하여 복음서 저자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서문에서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 1:9-10).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여태까지 예수를 따르던 백성들은 일단 예수가 체포되자 예수에 대한 열광(熱狂)에서 돌아서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아우성을 지른다. 이것이 바로 군중(群衆)심리요, 불안정한 민중들의 마음이다. 심지어 군중들은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석방한다면 가이사(황제)의 충실한 신하가 아니라고 협박한다. 여기서 두 가지 역설이 드러난다. 하나는 제도종교가 종교의 실체인 하나님의 아들을 고발하는 역설이요, 위임받는 세속권력이 우주의 통치자를 심문하고 십자가에 처형하는 역설이다. 참 하나님은 이러한 두가지 역설이 그의 아들의 십자가 사건에서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 정의로우시고 희생 사랑을 보여주신 겸허한 분이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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