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북뉴스 칼럼] 성경이 소망으로 답하게 하라
기독교는 성경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믿고 전파하는 종교다. 성경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시며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다. 그런데 비통한 일을 만나면 성경의 하나님에 관하여 많은 의문이 생긴다.
2011년 일본 도호쿠 지방에 쓰나미가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 미국 MSNBC 케이블 뉴스 앵커 마틴 바슈어가 당시 복음주의 대형교회 목사였던 롭 벨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런 재앙이 하나님은 선하신데 능력이 부족하셔서 일어난 겁니까, 아니면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선하지 않으셔서 일어난 겁니까?”
롭 벨은 저서인 <사랑이 이긴다>의 골자를 이용하여 하나님은 선하시고 사랑이 풍성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지옥에 보내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로, 인류 최대 비극인 사망에 관해 답했다. 바슈어는 롭 벨의 말이 그럴듯하여 희망을 주고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성경의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말씀과는 다르다는 것을 지적해냈다.
비극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의문을 남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그에 관한 답을 주기 위해, 자주 성경의 하나님을 왜곡하며 변호한다. 몇 가지 자주 범하는 실수를 살펴보자.
1. 하나님도 모르셨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요일 3:20).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 46:10)”.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아신다. 방금 일어난 일뿐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도 아신다. 눈앞에 보이는 일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사람의 말과 마음 속 생각까지) 아신다. 하나님이 알지 못하시는 것은 없다.
2.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앞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단지 아신다는 것을 넘어, 뜻하시고 이루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기는 이(엡 1:11)”이시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욥에게 일어난 엄청난 비극, 그의 재산과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고 몸의 건강까지 잃은 그 모든 재앙은 마귀가 주범이지만, 마귀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왜 허락하셨는지는 말씀해 주시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3. 죄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비극적 사고나 사건을 통하여 무고한 사람이 희생됐을 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바로 “네 죄 때문”라고 비방하는 일이다. 욥의 세 친구가 그렇게 비방하다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심판으로 사람에게 재앙을 즉시 내리신다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 뻔하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성경이 이미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롬 3:23).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과 질병과 수고와 죽음은, 죄의 결과가 맞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온 인류와 피조물을 타락으로 이끌지 않았더라면 경험하지 않았을 일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불행한 일이 일어난 원인을 개인의 죄와 억지로 연관 지으려는 것도 잘못이지만, 불행한 일의 원인이 죄와 아무런 상관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도 잘못이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처형한 일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열여덟 사람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신 거라고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눅 13:5).
우리는 비극적인 일이 그 일을 당한 자의 죄 때문에 일어났다고 비방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비극적인 일의 궁극적 원인이 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4. 하나님은 선하지 않다
그렇지 않다. 사람이 겪는 고통이 궁극적으로 죄의 결과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람은 무고한 피해자가 되고,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악한 신이 되고 만다. 반대로 사람이 겪는 모든 고통이 하나님을 배반한 죄의 결과라면, 하나님은 배반당한 신으로 공의로운 심판을 내릴 권리가 있으신 분이 되고 사람은 배반한 죄인으로 그에 합당한 고통을 충분히 받아야 마땅한 존재가 된다.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이 죄를 심판하신 것을 보라. 여덟 명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홍수로 목숨을 잃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종말의 심판을 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 하신 끔찍한 재앙이 이 땅에 쏟아질 것이다.
노아 시대와 종말에 있을 대재앙은 그 시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난/날 대재앙이지만, 모든 시대,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 임한 저주가 있다. 모두 죄로 인하여 죽음을 맛볼 것이고, 또한 죽음 그 이후에는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히 9:27). 불행한 일은 하나님이 선하지 않으셔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악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으로 악을 간과하실 수 없다.
5. 하나님은 사랑이 없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빛이신 분이다. 도덕적으로 완전히 선하신 분으로, 악을 조금도 용납하실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악이 가득한 세상과 죄인을 즉시 심판하지 않으신다.
첫 사람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으면 정녕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지만, 그가 반역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930세까지 살게 하셨다. 먹고 마시고 자녀를 낳고 삶을 즐기게 하셨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해 아래서 헛되고 헛된 인생을 안개처럼 짧게 살다가 이 땅을 떠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배우자와 자녀와 건강과 부와 음식과 누릴 수 있는 많은 것을 선물로 주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보는 하늘과 땅을 불사르실 것이라고 예언한다(벧후 3:7). 그러나 당장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계시다는 것 자체가 그분의 자비와 은혜를 드러낸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도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분의 사랑이 오래 참으시는 인내로서 주어지고 있는 이 때에, 회개하라고 하신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누구나 멸망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이-누구도 의심할 수 없도록 분명하게-나타난 사건이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속속들이 아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죗값을 찾으실 권리가 있으시다. 그렇게 하신다 해서 그분의 선하심에 흠집이 나는 것도 아니다(오히려 그분의 선하심은 어둠을 배척할수록 더 빛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인을 위하여 아들을 내어주셨다. 그들의 죗값을 아들에게서 찾으시려고, 십자가에 아들을 못 박으셨다. 죄인을 살리려고 아들을 죽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만일 하나님이 사랑 없는 분이셨다면, 우리 모두를 살려두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사랑 없는 분이셨다면, 우리를 살리기 위해 아들을 죽이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깊이와 너비와 높이와 길이를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어떻게 비극에 반응해야 하는가?
먼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무리들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요 11:33)”셨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요 11:35)”셨다.
예수님이 비통히 여기신 것은 모든 비극을 일으킨 죄 때문이고, 그분이 불쌍히 여기신 것은 그 죄로 인해 비참한 일을 당한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비통히 여기고 슬픈 일을 당한 자들을 불쌍히 여겨 함께 눈물을 흘리자.
그리고 기도하라(딤전 2:1). 성경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고 하면서 그 이유에 관하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밝혔다.
마귀는 욥에게 비극적인 일을 일으켜 그의 믿음을 빼앗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게 하려고 애썼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그분의 주권과 사랑을 보여주기를 원하셨다.
우리는 비극적인 일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마귀의 시험에 빠져 눈이 더욱 가리우거나 마음이 더욱 딱딱해져서 구원의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부정하지 않게 되기를. 죄 때문에 겪는 비극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배반하는 끔찍한 죄로 나아가지 않기를.
오히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의지할 것 없고 소망이 사라진 공허한 마음 속에 죄와 사망을 이기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두고 그분 안에서 확고한 소망을 갖게 되기를 간구해야 한다. 모든 일어난 일들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뿐인 아들을 우리를 살리기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으로, 그 사랑을 힘입어 구원에 이르고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비극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극심한 고통과 슬픔이 철저히 자기중심적 사고와 태도를 갖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성경의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말씀을 곡해하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 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참된 위로와 소망을 발견할 수 없다.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의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붙잡는 것만이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비극적인 일을 통과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모두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간구한다. 혼란을 잠재우고,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고 신뢰하여 살아있는 소망을 가지고 금보다 더 정결한 믿음으로 그 결국인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기를 간구한다.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