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북뉴스 서평] 마르크스에서 마르쿠제까지
세상을 바꾸려는 비판 이론
칼 트루먼 | 윤석인 역 | 부흥과개혁사 | 267쪽 | 22,000원
서던침례신학교 총장인 앨버트 몰러는 이렇게 평가했다: “칼 트루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를 발명해야 했을 것이다.”
재치 있고 탁월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트루먼처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상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여 발전되어 왔는지 추적하고 연구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트루먼은 현재 그로브시티대학 성경학 및 종교학 교수다. 그가 쓴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는 교회가 오늘날 시대 정신이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분명한 관점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부흥과개혁사, 2022). 이 책은 <이상한 신세계>라는 요약본으로도 국내 소개됐다(부흥과개혁사, 2022).
이번에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한 <세상을 바꾸려는 비판 이론: 마르크스에서 마르쿠제까지>는 갑자기 모든 분야와 영역을 장악해 버린 것 같은 ‘비판 이론(Black Lives Matters 등이 그 예시가 될 것 같다)’, 그 배후에 어떤 사상적 배경이 흐르고 있는지 정확하게 진단하고 고발한다.
결론을 먼저 밝히면, 트루먼은 비판 이론을 모두 부정하거나 배척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지적한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의 부작용, 즉 인간을 사물화하고 소외 현상이 일어나는 등 인간을 인간으로 존중하고 배려하지 않는 여러 사상적 문제를 기독교는 경청하고 동의하고 복음으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트루먼은 비판 이론의 방식은 철저하게 반대한다. 그들이 지적한 것들이 문제이지만, 그들이 이를 해석하고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민 것은 역사가 증명한 것처럼 오히려 더 극심한 문제의 증폭을 가져다 준다고 평가한다.
트루먼은 사실 비판 이론은 현재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만 관심이 있지, 회복 또는 개선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비판한다. 비판 이론은 무엇이 진리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다만 지금의 기득권을 요동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면 그것이 바로 진리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스스로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남성이 여성 스포츠 경기에 참가해 우승하고, 그것이 불공정하다고 모두가 인정하면서도 ‘기울어진 세상’을 뒤흔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어쩌다 이런 ‘이상한 신세계’가 출몰한 것일까? 트루먼은 칸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칸트의 업적은 진리와 그 진리를 이성으로 아는 것을 분리시켰다는 데 있다.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를 각각 다르게 기억하는 것처럼 진리는 듣는 이가 기억하는 것이고, 결국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유일하게 진리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이성이다. 그래서 칸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칸트는 그렇게 객관적인 진리를 알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주관적인 진리만을 효력이 있는 것으로 취급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트루먼은 이어서 헤겔을 언급하는 데, 헤겔은 그 확실한 것처럼 보였던 주관적인 지식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세상의 체제와 이념, 역사와 배경이 각자의 이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생각은 달라진다. 같은 시대라도 한국과 네팔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헤겔은 그렇게 개인의 이성이 주장하는 것도 불확실한 것으로 만들고, 결국 애매모호할 수도 있는 시대, 문화, 배경, 정치 등이 진리를 규정하거나 억압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칸트와 헤겔의 영향 아래 마르크스는 경제를 가장 큰 비판 대상으로 삼았고, 이후 코르쉬와 루카치, 프랑크푸르트 학파, 라이히, 마르쿠제는 경제 외에 여러 요인을 비판 대상으로 확대하여 적용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라고 물었는데, 칸트-헤겔의 반석 위에 마르크스에서 마르쿠제까지 비판 이론의 벽돌을 쌓아 올린 이들의 대답은 결국 “알 수 없지만, 지금 경제·문화·사회 등을 장악한 기득권이 진리를 왜곡하고 있다”가 되고 말았다.
누구도 객관적 진리를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전파할 수 없도록(그것 또한 기득권의 논리를 따르는 얘기라고 쉽게 취급하기 때문에), 세상은 비판 이론만이(단지 비판의 기능만 있지만) 모두가 수긍해야 하는 절대 진리인 것처럼 여기는 신세계가 되었다.
칼 트루먼은 이 책에서 여러 번 기독교의 관점을 제시하고, 또 마지막 장에서 기독교의 시대적 사명을 제안한다. 세상을 바꾸려는 비판 이론은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며, 더 암울한 세상을 가져올 것이다. 기독교는 진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복음을 가지고 있다.
트루먼은 기독교가 그 복음을 정확하고 담대하게 변증하는 것뿐 아니라 살아내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상적 세상을 꿈꾸지도 못하고 비판 정신으로만 가득 찬 불쌍한 영혼들에게, 천국을 꿈꾸게 하는 사랑으로 가득 찬 공동체를 보여주라고 한다. 그래서 기독교라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는 믿음을 주라는 것이다.
트루먼의 강력한 도전에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가 ‘아멘’으로 화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