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가게> 구원 서사, 감동 있지만 효능감 없는 이유

|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조명가게> (2)

OTT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조명가게>는 어두운 골목 끝을 밝히는 유일한 곳 ‘조명가게’, 이곳에 어딘가 수상한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배우 주지훈과 박보영을 비롯해 김설현, 배성우, 엄태구, 이정은, 김민하, 박혁권, 김대명, 신은수, 김선화, 김기해, 박정표 등이 대거 출연한 강풀 작가 원작, 배우 김희원 감독의 드라마를 새해 첫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 분석합니다. 이 드라마는 임사 체험(臨死體驗, near-death experience, NDE)을 다루고 있는데, 사고 등으로 죽음에 가까워진 이들이 사후 세계를 체험하고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편집자 주

▲죽음의 문턱 앞에 선 이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각자 생생한 임사체험을 공유한다는 설정의 공포 미스터리극, &lt;조명가게&gt;.

▲죽음의 문턱 앞에 선 이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각자 생생한 임사체험을 공유한다는 설정의 공포 미스터리극, <조명가게>.

복음 이전 무속에 대한 향수
삶의 무의미 구출 나름 해법
이승과 저승 연결한 가족애
오늘날 결여에 열망 자극도
실효성 없는 옛 구원의 방편
이제 월등한 구원의 길 열려

무속의 저승: 가족애로 연결되는 죽은 자들의 공간

<조명가게>는 실제 임상적 관찰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임사체험을 묘사하고 있다. 긴 골목 통과, 어두움 속 밝은 빛, 아늑한 집으로 복귀, 가족과 연인 등장 등은 실제 여러 병원에서 심정지 환자들이 체험하거나 꿈꿨다는 기록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그런데 <조명가게>에 묘사된 임사체험 내용에는 단 하나, 현실과 전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임사체험 중인 중환자들의 의식이 같은 심상의 공간(혹은 영적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인셉션>에서 여러 사람이 첨단기술을 통해 꿈을 공유하는 것처럼, <조명가게>의 등장인물들은(심지어 이미 죽은 이들까지도)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소통하고 각자의 앞길을 결정한다.

여기에는 원작 웹툰 작가 강풀의 공상적 세계관이 반영돼 있다. 이 공상적 세계관의 특성은 무속의 영혼과 저승에 대한 이해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안동대 문화유산학과 이용범 교수는 <한국 무속의 죽음이해 시론>(2011)이라는 논문에서, 무속의 내세관에는 다음 세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존재한다고 밝힌다.

첫째,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이승의 존재에서 저승의 존재로 변화되는 일이다. 둘째, 죽은 자의 존재 변화와 지속은 가족관계의 맥락에서 이뤄진다. 죽음을 통해 이승의 가족은 저승의 가족이 될 뿐 생전의 가족관계는 변하지 않으며, 양측의 끈끈한 가족애가 유지된다면 죽은 이는 결코 외롭지 않다.

셋째, 무속의 저승관념은 복합적이다. 저승은 죽은 자가 묻히는 무덤이기도 하고, 긴 여정 끝에 도달하는 먼 공간이기도 하다. 이승과는 분명 다르지만, 이승과 단절돼 있지 않은 공간이 바로 저승이다. 그래서 저승은 이승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환생을 통한 새로운 탄생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이용범 교수가 정리한 무속 내세관 특성은 <조명가게>에 묘사된 임사체험자들, 그리고 임사체험 공간의 특성에 전적으로 부합한다.

첫째, 이 작품 속에서 사고와 연관돼 죽은 이들(현민의 연인 이지영, 현주의 어머니 유희, 선해의 동성연인 혜원, 사고의 주범 오승원 등)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생전 기억과 의식을 갖고 인격체로 존속하고 있다. 이승의 존재에서 저승의 존재로 변했을 뿐 그들의 존재는 소멸하지 않고 남아있다.

둘째,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임사체험자들은 가족이나 연인과의 사랑에 힘입어 삶의 끈을 이어 나가거나 삶을 포기할 것을 결정한다. 이들 모두의 결정은 기본적으로 가족애를 근본 동기로 삼는다는 점에서, 가족관계 덕분에 죽음이 외롭지 않다는 무속의 죽음과 영혼 이해를 적극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임사체험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버스정류장, 골목길, 골목길 근처 집, 그리고 조명가게라는 공간은 죽음에 가깝긴 하지만 아직 살아 있는 이들, 그리고 이미 확실하게 죽은 이들이 공유하는 이승과 저승의 교차점이다. 이는 저승이 죽은 자들의 세계지만 산 자들의 세계와 중첩되거나 멀리 있지 않다는 무속의 세계관에 부합한다.

▲&lt;조명가게&gt; 속에 등장하는 임사체험자들의 공간은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이 공유하는 이승과 저승의 교차점이다. 이는 저승이 죽은 자들의 세계지만 산 자들의 세계와 중첩되거나 멀리 있지 않다는 무속의 세계관에 부합한다.

▲<조명가게> 속에 등장하는 임사체험자들의 공간은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이 공유하는 이승과 저승의 교차점이다. 이는 저승이 죽은 자들의 세계지만 산 자들의 세계와 중첩되거나 멀리 있지 않다는 무속의 세계관에 부합한다.

무속의 구원: 복음이라는 대안이 없던 시절, 삶의 구원

이처럼 무속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조명가게>의 배경과 인물 설정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목적으로 채택된 것인가? 만화 애니메이션 문화학 연구자 김대권과 박경철은 <토비아스의 메인 플롯 구성 방법을 통한 강풀의 웹툰 분석>(2015)이라는 논문에서 <조명가게>가 구출과 수수께끼 플롯을 활용해 서사의 매력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조명가게>의 중심서사가 ‘구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으로부터의 구출인가? 첫째는 죽음에서의 구출이고, 둘째는 삶의 무의미함에서 구출이다.

<조명가게>의 임사체험자들 중 전구 빛을 받아들인 이들(현민, 현주, 지웅)은 저승에서 이승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구출된다. 그리고 전구 빛을 받아들이기를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인 이(선해)는 사랑할 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삶을 거부함으로써 삶의 무의미함으로부터 구출된다.

이 두 가지 형태의 구출은 모두 궁극적으로 하나의 ‘레종 데트르(raison d’être, 존재의 이유)’를 지시한다. 바로 가족의 사랑 혹은 연인 간의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명가게> 서사 속에서는 죽음 앞에 놓인 이들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가 실상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작중 현민의 생존이 껄끄러움을 남기는 이유, 그리고 선해의 죽음이 시청자 입장에서 슬프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민은 사고에서 살아남았지만, 연인인 지영의 마음과 헌신을 외면했다. 그러니 그의 생존은 현민에게 공허함을 가져다줄 뿐이다. 반면 선해는 스스로 죽음 속에 남기를 선택했지만, 죽은 상태로 동성 연인과의 사랑을 완성했기에 존재의 무의미함과 공허함을 극복한다.

▲현민은 사고에서 살아남았지만 연인인 지영의 마음과 헌신을 외면했다. 그러니 그의 생존은 현민에게 공허함을 가져다줄 뿐이다.

▲현민은 사고에서 살아남았지만 연인인 지영의 마음과 헌신을 외면했다. 그러니 그의 생존은 현민에게 공허함을 가져다줄 뿐이다.

이로써 <조명가게>는 인간 영혼을 삶의 무의미함에서 구출하는 방법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그 해법은 우리 민족 전통 무속 세계관에 바탕을 둔 가족애의 재발견이다. 재난, 질병, 사고 등에 노출된 불안하고 갸날픈 인간 존재에 강인한 의지와 충만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가족애라는 것이 <조명가게>의 핵심 메시지다.

절대자·초월자에 대한 계시와 믿음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전근대 한반도에서 무속은 그나마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초월적 힘이었다. 샤먼(shaman), 즉 무당이 행하던 점술과 굿, 초혼술은 늘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했던 한반도 민중에게는 원시적이고 주술적인 방식으로나마 삶의 구원을 도모하는 길이었다. 물론 그 구원, 구출이라는 것이 진정 효력이 있는 것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순순히 그렇다고 답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 구한말 개신교 선교는 구원의 복음, 근대적 계몽, 그리고 선진 의료기술을 통해 한반도 민중의 영혼과 정신과 육체를 살리고 돌보는 일을 맡았고 갖가지 어려움 가운데서도 확실하고 실증적인 효력을 발휘했다.

이로써 한국 개신교회는 온전한 삶의 구원, 구출의 길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계명에 있고, 그의 가르침에 밑바탕을 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력과 문화양식을 통해 우리 삶에 현실화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샤먼(shaman), 즉 무당이 행하던 점술과 굿, 초혼술은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했던 한반도 민중에게는 원시적인 방식으로나마 삶의 구원을 도모하는 길이었다. 물론 그 구원, 구출이라는 것이 진정 효력이 있는 것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순순히 그렇다고 답하기는 쉽지 않다.

▲샤먼(shaman), 즉 무당이 행하던 점술과 굿, 초혼술은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했던 한반도 민중에게는 원시적인 방식으로나마 삶의 구원을 도모하는 길이었다. 물론 그 구원, 구출이라는 것이 진정 효력이 있는 것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순순히 그렇다고 답하기는 쉽지 않다.

오래된 한민족 고유의 세계관과 문화, 그리고 종교로서의 무속은 우리에게 복음을 통한 실제적 구원의 길이 열려 있지 않았을 당시 한반도 민중이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구원의 방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한반도 개신교 선교 역사, 복음화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 이제는 무속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월등한 구원의 길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조명가게>의 구출, 구원 서사는 과거 우리 민족이 스스로의 영혼과 삶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알 수 없었던 흑암의 시절 의지했던 오래된 전통 종교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결여돼 있는 가족애에 대한 깊은 열망을 자극한다.

덕분에 <조명가게>의 구원 서사는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다. 다만 그 감동에 실효성은 없다. 한민족 역사상 무속이 잠정적 위로 외에 우리 삶을 진정 나아지게 만든 사례가 과연 존재하는가. 우리가 죽음 앞에 섰을 때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는 방편이 과거와 같이 무속밖에 없다면 상상만 해도 암담하지 않은가.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 좁은문은혜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면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박욱주 박사. ⓒ크투 DB

▲박욱주 박사. ⓒ크투 DB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

123 신앙과 삶

CT YouTube

더보기

에디터 추천기사

전한길 선관위

전한길 강사의 외침 “대한민국 혼란, 선관위가 초래”

이 글은 전한길 강사가 2025년 1월 19일 유튜브 채널 ‘꽃보다 전한길’에서 ‘대한민국 혼란, 선관위가 초래했다’라는 주제로 열변을 토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이다. 최근 많은 분들이 내가 왜 이처럼 목소리를 내는지, 그리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궁금…

갑바도기아 토칼리 동굴 교회

갑바도기아 동굴 교회 성화들, 눈이나 얼굴 벗겨진 이유

동굴 교회들, 어디든 성화로 가득 비둘기 알과 물 섞어 사용해 그려 붉은색은 포도, 노란색은 샤프란 갑바도기아, 화산 활동 지형 변화 동굴에서 박해 피하며 성화 그려 무슬림, 성화 눈 빼고 얼굴 지워 오전 8시가 지나자 ‘록타운(Rock Town)’ 여행사 안내직원…

예장 개혁 정서영 총회장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아”

한기총 “사랑의교회, WEA 재정 지원 중단해야”

재정 지원 급급, 매관매직 우려 봉사 경력 2-3년에 부총무 임명 종교다원주의 의혹 해소가 먼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정서영 목사, 이하 한기총)에서 ‘사랑의교회는 WEA에 대한 재정지원을 즉각 중단하라: 친이슬람, 친중 인사인 사무엘 창 부총무는 사…

뭉크

<절규> 에드바르트 뭉크가 그린 <골고다>

십자가 그리스도 주위 군상들 기독교 없는 고통과 갈등 초점 사적 감정 토로할 이미지일 뿐 현대 예술, 문화적 자살인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를 말할 때 떠오르는 것은 (1893)라는 작품이다.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는지 이 작품은 뭉크의 대…

조명가게

<조명가게> 구원 서사, 감동 있지만 효능감 없는 이유

OTT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는 어두운 골목 끝을 밝히는 유일한 곳 ‘조명가게’, 이곳에 어딘가 수상한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배우 주지훈과 박보영을 비롯해 김설현, 배성우, 엄태구, 이정은, 김민하, 박혁권, 김대명, 신은…

33차 복음통일 컨퍼런스 넷째 날

“복음 없는 통일은 재앙… 性오염 세력에 北 내주면 안 돼”

제33차 복음통일 컨퍼런스(북한구원 금식성회) 넷째 날 성회가 에스더기도운동(대표 이용희) 주최로 경기 파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1월 16일 진행됐다. ‘분단 80년,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에 7:3)’라는 주제로 전국과 해외에 유튜브를 통해 생방송으…

이 기사는 논쟁중

인물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