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무례한 방식으로 자신의 교회를 정치계로 끌어들여”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취임 행사를 마무리하는 국가기도회에서 성소수자(LGBT)와 불법 이민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말한 성공회 주교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각) 워싱턴국립대성당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마리안 버드(Mariann Budde) 미 성공회 워싱턴 교구 주교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당신은 사랑하는 하나님의 섭리적 손길을 느꼈다.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지금 두려워하는 미국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한다”며 “민주당, 공화당, 무소속 가정에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자녀가 있고 일부는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불법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시민이 아니거나 적절한 서류가 없을 수 있지만 대다수는 범죄자가 아니”라며 “부모의 체포를 두려워하는 자녀를 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전쟁터와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온 이들이 긍휼과 환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좋은 예배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후 22일에는 자신의 ‘트루스소셜’(Truth Social) 플랫폼을 통해 “버드 주교는 강경한 급진 좌파이자 트럼프 혐오자였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트럼프는 “그녀는 매우 무례한 방식으로 자신의 교회를 정치계로 끌어들였다. 그녀는 어조가 형편없었고 설득력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았다”며 “우리나라에 들어와 미국 시민들을 죽인 수많은 불법 이민자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민자들은 감옥과 정신병원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범죄의 물결”이라고 했다.
그는 “버드 주교와 성당이 대중에게 공개 사과해야 한다”면서 “예배 행사는 매우 지루하고, 영감을 주지 못했다”고 했다.
앞서 진행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불법 이민은 2024년 선거를 앞둔 유권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국가적 문제로 나타났다.
기도회 이후 ABC ‘더뷰’(The View)에 출연한 버드 주교는 해당 논란에 대해 “어제 오전 저의 책임은 성찰하고, 국가와 함께 통합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다”며 “저는 통합의 기초는 무엇일까 숙고했다. 모든 인간의 명예와 존엄성, 기본적인 정직성과 겸손을 존중하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합을 위해 어느 정도 자비, 긍휼,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꺠달았다. 한동안 미국 사회에서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설교에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CP에 따르면, 워싱턴국립대성당이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 사임한 게리 홀(Gary Hall) 주임 사제는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취임예배를 성당에서 열기로 한 결정에 실망했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홀 신부는 2017년 민주당 계열 뉴스 매체인 ‘씽크 프로그레스’(Think Progress)와의 인터뷰에서 “국립대성당이 트럼프 행정부를 ‘합법화’했다”고 비난했다.
한편 워싱턴국립대성당은 193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전 대통령의 첫 취임식부터 대통령 취임 기도 예배 장소로 사용돼 왔다. 또 대성당이 건립된 이후 세상을 떠난 21명의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과 추모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