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글리와 칼빈의 개혁사상 비교연구의 의의와 중요성 (1)
지난 2월 8일 오전 화성 신나는교회에서 열린 ‘제506주년 츠빙글리 종교개혁 기념대회’에서 기조강연을 전한 정일웅 전 총신대 총장님의 발표문 전문을 차례로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총신 중심 보수 교회 신학 정체성
‘개혁주의 또는 개혁주의 신학’,
이념적 표현 사용, 참된 그리스도
복음 전파와 진리 걸림돌 의구심
정치적인 편 가르기 이용되기도
6.25 때 북한 공산주의자들 행태
자유주의 신학과 이단사이비 등
방어 위해, 이념적 표현 시작돼
서언
츠빙글리(쯔빙글리) 종교개혁 506주년을 맞는 뜻깊은 날을 기념하여, 츠빙글리 학회가 츠빙글리와 칼빈의 개혁 사상을 비교하는 학술행사를 개최하게 된 것을 축하하며, 오늘 이 행사에 기조 강연에 초대해 주신 주도홍 박사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학술 행사에 발표할 여러분의 연구 주제들을 살펴 보니, 그간 시도되지 않았던 츠빙글리와 칼빈의 신학을 비교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어, 여러분의 연구는 앞으로 한국장로교회와 한국교회 지도자들 전체에 개혁 신학에 관한 더 깊은 통찰을 심어주는 일에 크게 공헌하리라 생각하면서 여러분의 학문적 수고에 찬사를 드립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3가지 관점에서 여러분의 학문적 수고가 얼마나 중요한 의의와 중요성을 지닌 것인지를 거론해 보려 합니다.
1. 츠빙글리의 종교개혁과 그의 신학, 그리고 칼빈과의 비교 연구
그간 한국교회, 특히 우리 장로교회 목회자들이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 한 분의 생각에만 의존된 모습을 새롭게 하며, 개혁신학에 관한 보편적 인식의 빈약성을 보완하는 일에 크게 공헌하게 된 의의입니다.
그간 우리 모두 경험한 것처럼, 츠빙글리에 관한 것은 신학교에서 종교개혁사를 공부할 때 잠시 언급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특히 츠빙글리는 루터와 동시대 인물로서 그의 이름이 분명히 거론되지만, 루터가 종교개혁에 미친 영향 때문에 종교개혁사는 루터의 이야기에 집중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종교개혁의 거의 완성자로 알려진 제네바의 칼빈에 더 우선권을 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온통 칼빈의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취리히의 츠빙글리 종교개혁은 크게 주목되지 않았으며, 종교개혁사는 루터와 킬빈의 것으로만 만족해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개혁교회 예배와 예전학’을 강의하면서 츠빙글리를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츠빙글리가 루터처럼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 성경 말씀 설교 중요성을 깨우려 ‘Prophezei(프로페차이)’란 성경 교육기관을 운영한 것, 루터처럼 이신칭의를 성경이 말해 주는 복음적 구원의 진리로 확고히 붙든 것, 성만찬 신학에서 루터의 공재설을 거부하고 상징설을 주장한 것 등입니다.
가장 부정적인 것은 예배에서 파이프 오겔이 하나님 찬양 대신 교황 찬양 도구였다는 이유로 취리히 성당에 있는 오겔을 취리히 광장에서 끌어내 파괴한 일, 그 일로 예배에서 악기 사용을 금지한 일, 에베소서 5장 19절 말씀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해 예배에서 찬송과 악기 사용을 금지하는 ‘무악기파’가 탄생하게 된 일 등입니다.
물론 19세기에 이르러 취리히의 개혁교회 후손들이 츠빙글리 악기 사용 금지 행위를 반성하고, 다시 예배당에 파이프 오겔을 설치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외에 가톨릭에 철저한 교회개혁을 주장한 것 등이 츠빙글리에 대한 이해의 전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나 최근 여러분을 통해 츠빙글리에 관하여 많은 것이 연구돼 새롭게 알려지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언약’은 츠빙글리가 창안자이며, 불링거를 거쳐 칼빈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특히 성만찬 신학에서 그리스도가 어떤 모양으로 성찬에 임하는지에 관한 물음에서 루터는 공재설을, 츠빙글리는 상징설을 주장해 서로 대립했지만, 여러분의 연구는 츠빙글리가 실제로 상징설이 아니라 칼빈처럼 성령임재설을 말해준 것이 분명하며, 그것이 불링거와 칼빈의 취리히 합의서(Consensus Tigurinus)에서 확인됨을 밝힌 것은 여러분의 수고와 공헌이 분명하게 여겨집니다.
물론 한 가지 과제로 남은 것은 종교개혁 당시 프로테스탄트 연합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됐고, 1529년 독일 마르부르크에서 두 분 종교개혁자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졌지만, 15개 항목 중 15번째 항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루터는 비텐베르그로, 츠빙글리는 취리히로 되돌아간 역사적 사건은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전 세계 프로테스탄트 교회 분열의 근간이 됐습니다.
그래도 오늘 여러분의 학문적 수고를 통해 그간 덜 알려지고 부정확했던 츠빙글리의 종교개혁과 그의 신학에 관한 많은 것이 새롭게 알려지게 되니 참으로 다행스럽고, 오늘 이곳에서 발표되는 여러분의 수고는 한국교회, 특히 장로교회 지도자들을 돕는 학문적 각성에 크게 공헌하는 일이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2. 츠빙글리와 칼빈의 비교 연구
츠빙글리와 칼빈의 비교 연구는 개혁신학의 토대를 더욱 분명히 하며 견고히 하는 일에 크게 공헌하는 의의를 생각하게 됩니다.
한국교회는 선교 역사상 가장 크게 성장한 교회를 이룬 것이 분명하며, 그 가운데 한국 장로교회는 역시 가장 큰 교세를 가진 교회로 자리잡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물론 한국 장로교회는 그간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 오늘날 200-250여 분파로 나누어져 있다는 유감스러운 소식도 듣게 됩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분열한 그룹들 대부분 장로교회의 역사적 신앙의 토대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따른다는 언급과 그들이 지향하는 신학적 정체성은 ‘개혁주의 신학, 개혁주의’라는 말을 모두 사용하는 것에서 공유점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생각하면 역사적 토대에 근거해 연결고리의 근거를 붙들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분열 행위를 정당화하는 모습일 뿐, 분열된 모습에서 우리는 역시 종교개혁 신학의 사상적 토대가 너무 빈약한 것이 염려스러우며, 오히려 사이비 이단 종파로 전락할 위험을 우려하게 됩니다.
그들의 신앙적 태도와 삶에서 다들 장로교회의 전통과 역사와 신앙이 보여준 모습은 확인되지 않는 점이 문제입니다. 특히 우리는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가 왜 이렇게 심각한 분열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1950-60년대 장로교 분열은 그래도 기장과 통합 교단이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것에 대항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오늘날은 그 어떤 분명한 분열의 명분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파된 한국 장로교회들을 깨우치며, 그 교회들이 이단적 가르침의 유혹에서 온전하게 돌아서게 하는 일에 오늘 여러분의 비교 연구는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며, 견고한 개혁신학 형성과 그 지평 확대에 크게 공헌하리라 기대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논의해 보고 싶은 것은 우리가 한국 장로교회, 특히 우리 총신 중심의 보수 교회의 신학 정체성을 말할 때, ‘개혁주의 또는 개혁주의 신학’이란 이념적 표현 사용에 관한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와 진리 규명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지 않나 의구심이 생깁니다.
특히 근년에 우리 합동 교단 정치권에서 주로 이 용어를 빈번히 사용해, 정치적인 편 가르기에 이용되는 모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신학 학술 현장에서도 이 용어가 여전히 사용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여기서 질문은 과연 신학 사상을 이념적 표현인 ‘주의(-ism)’로 표현하는 일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러한 용어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배경은 정확히는 잘 모르나, 아마 한국교회를 크게 위협하고 기독 신앙을 박해한 6.25 전란으로 인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행태와 신앙에 혼란을 초래한 자유주의 신학과 이단사이비 종파들의 영향을 방어하기 위해, 신앙 사상을 신학 사상과 동일시해 이념적으로 표현한 것에 연유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우리 장로교회는 종교개혁 이후 역사에서 교리적 대립이 극심할 때, 정통 신앙 사상의 강조와 함께 ‘칼빈주의’란 신학 사상적 이념 표현이 기독교 역사에서 무신론과 대항하며, 가장 성경적으로 해석해준 종교개혁 신앙의 진리를 밝히는 일에 큰 역할을 감당한 것이 인정돼 오늘날도 그 용어가 허용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상황에서도 올바른 성경적 신앙 사상을 표현한 장로교회 신학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개혁주의 또는 개혁주의 신학’이란 이념적 표현을 새롭게 적용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계속>
정일웅 교수
총신대학교 전 총장
한국 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