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와 아직 사이’, 바울이 생각했던 ‘시간관’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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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북뉴스 서평]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의 진리를 시간성 속에서 풀어낸 책

바울과 시간
L. 앤 저비스 | 김지호 역 | 도서출판100 | 320쪽 | 22,000원

이 책은 참 놀랍다.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의 진리를 시간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자가 전개하고 싶어 하는 주제, 곧 신자는 그리스도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거대한 모티프를 이해하려면 ‘구원사적 관점에 본 바울의 시간 개념’과 ‘묵시론 관점에서 본 바울의 시간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무엇보다 바울 학파들의 반성 없는 습관에 도전하고 있다. 즉 ‘이미와 아직(already-not yet)’을 결합해 현재 신자들이 옛 시대와 새 시대 사이의 ‘중첩’ 내지 ‘긴장’ 속에 존재한다는 식으로 바울의 종말론을 설명하는 일반적 방식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높아지신 아들을 통해 오히려 그리스도의 현재 시간을 신자들에게 열어주신다는 놀라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그리스도의 시간 속에서 신자는 그리스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아가는 엄청난 은혜와 특권 속으로 부르심을 받는다.

그리고 이 시간 속에서 신자는 모든 것, 심지어 고통, 인간의 죄 성향, 육체적 죽음까지 그리스도의 생명과 삶으로 변형되고, 생명과 삶을 위해 변형되는 초월적 삶에 참여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위해 아우구스티누스, 칸트, 플라톤, 칼 바르트를 인용한다. 하지만 바울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구원사적 관점과 묵시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여기서 구원사적 관점이란 시간을 선형적이고 순차적이며 목적론적으로 보는 것이며, 묵시적 관점이란 하나님께서 영원의 시간을 현재적 시간 속으로 침입하실 수 있고 또 침입하게 하셨다고 보는 것이다.

▲사도 바울 동상.

▲사도 바울 동상.

저자는 구원사적 관점에서 본 바울의 시간 개념을 설명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 불트만의 <역사와 종말론>, N. T. 라이트의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제임스 던의 <바울 신학> 등에서 다루고 있는 직선적 시간 개념, ‘이미 성취된 것’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 사이의 긴장이라는 시간의 중첩 개념을 나름의 이해력으로 통찰해내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하나님께서 역사적 과정의 일부로서 구속을 성취해 오셨고, 이 역사 속에서 계속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종말의 시간에 꽃을 피우게 될 것임을 밝히고 있다.

또 저자는 묵시론 관점에서 본 바울의 시간 개념을 설명하면서, 알베르토 슈바이처의 <사도 바울의 신비주의>, 칼 바르트의 <로마서>와 <교회 교의학>, 에른스트 케제만의 <로마서>, 〈Primitive Christian Apocalyptic> 등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 개념을 분석한 결과, 바울의 두 시대라는 개념 속에는 근본적으로 묵시적 개념이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 연속적 두 아이온에 대한 묵시적 도식은 현재 시간 속으로 침입했으며, 역사의 종말은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의 때에 이루어질 것이기에, 시간은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실체임을 밝히고 있다.

이로써 현재 두 시대가 동시에 존재하며, 신자들은 두 시대를 동시에 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부활이 새 시대를 개시했기에, 신자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부분적으로는 새 시대에 살고 있고, 부분적으로 옛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결론은 신자가 단순히 중첩된 시대에 살아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항상 바울의 초점은 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지닌 시간성을 다음과 같이 풀어내고 있다. 즉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룬다는 것은 곧 신자가 그리스도의 현재적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의 시간을 살아냄으로써 악한 현 시대와 완전히 구별되는 시간성 속에 살아가며, 악한 현 시대에서 해방돼 높아지신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되고, 인간의 삶 속에서 성령을 매개로 한 그리스도의 활동을 하며 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자들은 현재 그리스도의 시간 속에 삶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 승리 가운데 살고, 현재적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 속에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리스도의 현재를 그리스도와의 연합 위에서 누릴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그리스도의 날/ 파루시아가 도래하기 전부터 현재적 삶으로 누릴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신자의 승리로 치환할 수 있으며, 이미 그리스도께서 죄와의 전투에서 승리했기에 그리스도의 승리를 담보로 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사탄에 맞서는 선택만으로 하나님의 승리가 현시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이 모든 은혜를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부활, 높아지심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시간성 안에 살고 있다”는 말로 압축해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와 같이 웅장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서재에 꽂혀 있어 틈틈이 탐독돼야 할 뿐 아니라, 2025년 새해를 웅비(雄飛)하게 시작하고픈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들려야 한다.

이종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고문
의정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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