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생명 경시 사조 조장해선 안 돼”

이명진 원장(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이 중앙일보의 ‘조력 존엄사’ 관련 보도에 강력히 반박했다. 그는 “의사는 치료자(Healer)이지 살인자(Killer)가 아니”라며 생명경시 사상을 조장하는 언론 보도는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국민 82%가 조력 존엄사 찬성” 보도
중앙일보는 지난 2월 2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를 인용해 우리나라 성인 82%가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조력 존엄사는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약물을 투여해 생을 마감하는 방식으로, 응답자들은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불필요하다”(41.2%)는 이유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91.9%는 말기 환자가 될 경우 연명의료를 중단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고,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 의향도 81.1%에 달했다. 중앙일보는 이를 근거로 조력 존엄사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해석했다.
“사회적 약자‧취약계층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
그러나 이에 대해 이명진 원장은 “조력 존엄사라는 표현 자체가 언어유희에 불과하다”며 “모든 안락사는 결국 인간의 생명을 끊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좋은 죽음’이라는 의미를 지닌 안락사(euthanasia)라는 용어도 본래는 생명윤리에 위배되는 위험한 개념”이라며 “과거 우생학이 인종 차별과 학살로 이어졌듯이, 조력 존엄사 또한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원장은 의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전 세계 모든 의사협회가 의사조력자살(PAS, Physician Assisted Suicide)에 반대하고 있다”며 “의사는 치료자로서 환자를 돕는 존재이지, 죽음을 돕는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또한 현행법에서도 의사조력자살은 금지돼 있다며, 형법 제252조(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 등)에 “사람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 원장은 “이미 21대 국회에서도 조력 존엄사 법안이 발의됐으나, 의사단체와 종교계, 생명윤리단체의 강한 반대로 폐기된 바 있다. 같은 내용의 법안을 22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최선의 치료’, ‘돌봄 환경 조성’
‘정신의학적 도움’ 등 요청하며 조력자살 반대해
이 원장은 대한의사협회의 윤리지침과 정책(KMA POLICY)을 근거로 조력 존엄사가 의사의 직업윤리에 반하는 행위임을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조력자살은 의사가 환자의 자살에 관여하는 행위다 ▲의사는 의사조력자살을 시행하거나 자살을 방조해서는 안 된다 ▲환자의 고통은 조력자살이 아닌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존중되어야 하나 의사조력자살은 생명을 중단하는 행위로 자기결정권의 경계를 벗어난다 ▲임종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의 치료와 돌봄 환경 조성(정책 제안 포함)의 지속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완화의료 및 정신의학적 도움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식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통계 왜곡 보도 자제하고 생명윤리 지켜야”
이 원장은 설문 결과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며 “해당 연구 보고서는 호스피스 확대와 웰다잉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지만, 중앙일보는 일부 통계를 선택적으로 인용해 마치 조력 존엄사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높은 것처럼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명의료결정과 조력 존엄사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며 “호스피스를 강화하고 임종기 환자들에게 최선의 돌봄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지, 환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도록 조력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언론이 생명경시 사조를 조장하는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며 “인간의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존엄성이 보장돼야 하며, 어떤 순간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올바른 언론이라면 늙고 병든 이웃을 돌보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문제를 제기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