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대표, ‘계몽’ 부정하고 배신의 길 걷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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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호 박사의 ‘이중창’ 127] 계몽과 개 논란

▲이재명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의 설전 관련 보도 화면. ⓒ연합뉴스TV

▲이재명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의 설전 관련 보도 화면. ⓒ연합뉴스TV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최근 자서전을 통해 “국민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계몽이란 말이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친다는 뜻인데, 우리 국민이 계엄령으로 계몽해야 할 대상일 수는 없다”고 강조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경고성 계엄’ 발언과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가장 위험한 인물”로 지목하며, 윤 대통령의 계엄 논란을 단죄하지 않으면 “이재명의 계엄을 막을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매우 모순적이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발언을 조정하는 기회주의적 태도가 뚜렷이 드러난다. 한 전 대표는 계몽의 의미를 축소 해석하면서 국민의 정치적 각성과 진실을 인식하는 과정을 부정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윤석열 대통령을 ‘손절’하며 ‘배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계몽의 의미를 축소하고 국민의 각성을 부정하는 한동훈

우선 한 전 대표가 말하는 ‘계몽’이란 개념 자체가 잘못 정의되어 있다. 그는 계몽을 단순히 “지식이 부족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으로 규정하며, 마치 국민이 무지하지 않으므로 계몽될 필요가 없다는 듯 주장한다. 그러나 계몽이란 특정 계층만이 교육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춰진 진실을 깨닫고 새로운 현실을 인식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도 계몽주의는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기존 질서 속에서 은폐된 진실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개혁하는 과정이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계몽사상가들은 절대왕정과 성직자 중심의 권력을 비판하며 시민들의 권리의식을 일깨웠다. 대한민국 역사에서도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국민이 정권의 실체를 깨닫고 행동하면서 변화가 이루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지금 ‘계몽’될 필요가 없을까? 한 전 대표의 주장과 달리, 국민은 지금껏 감춰져 있던 정치·사법적 부조리, 선거관리위원회의 비리, 검찰·법원의 카르텔을 직접 목격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는 과정 자체가 ‘계몽’이다. 국민의 지식수준이 낮아서 계몽되는 것이 아니라,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이 깨어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정치적 이념과 좌편향된 성향, 중국 공산당의 선거 개입 문제,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장 대법관 겸직 문제와 친인척 특혜 채용 비리, 그리고 그동안 은폐돼 온 간첩 세력의 활동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특히 민노총 내부에서 북한 김정은의 지령을 받은 세력들이 국가 전복을 도모하며 사회 곳곳에 침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간첩법 적용 확대 개정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또 각종 악법과 불법 행위를 통해 국민의 권리가 억압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한 전 대표가 “계몽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와 다름없다.

한 전 대표는 이러한 국민의 인식을 마치 불필요한 과정인 것처럼 평가절하하며, “국민이 계몽될 필요 없다”는 주장을 통해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는 자신만은 국민을 계몽하는 ‘지도자’의 위치에 서겠다는 듯한 모순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기꺼이 국민을 지키는 개가 되겠다”가 아니라 “기꺼이 주인을 무는 개가 되었다”

한동훈 전 대표의 또 다른 모순은 그의 ‘배신자 프레임’에서 나타난다. 그는 과거 윤 대통령과 함께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정치적 기반을 다졌지만, 이제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그는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두고 “저는 기꺼이 국민을 지키는 개가 되겠다”고 반박했지만, 실상은 “저는 기꺼이 주인을 무는 개가 되었다”는 말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에게 정치적 기회를 제공했고, 함께 ‘정의의 검찰’을 외치며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한 전 대표의 행보는 명백한 ‘배신’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은 30에 스승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행태를 떠올리게 한다. 정의를 외치던 사람이 권력과 정치적 이익을 위해 변절하는 모습은, 결국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배신의 전형적 사례일 뿐이다.

윤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자, 한 전 대표는 빠르게 거리를 두며 “계엄령은 위헌·위법”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단순한 소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전략적 거리두기다. 정권 초반 윤 대통령과 한 몸처럼 행동하다가, 이제 차기 대권 주자로서 독자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윤 대통령을 ‘손절’하는 모습이 뚜렷했다.

배신자는 한 번만 배신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계속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고, 정치적 기회주의자로 낙인 찍히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한 전 대표가 향후 또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될 때,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은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결론: 한동훈은 배신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동훈 전 대표는 국민이 계몽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국민은 정치적 진실을 깨닫고 있으며, 이는 계몽의 과정이다. 그는 이를 인정하기보다, 국민을 수동적 존재로 만들려 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차기 정치적 행보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배신의 아이콘이 되었고,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언제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지금 대학가에서는 시국선언이 들불처럼 퍼지고 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이 연이어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현 정권과 정치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한 전 대표가 말하는 ‘계몽될 필요가 없는 국민’이 아니라, 이미 깨어나 행동하고 있는 국민이다.

결국 한 전 대표가 부정한 계몽의 불길은 곳곳에서 타오르고 있다. 국민은 이미 정치적 현실을 깨닫고 있으며, 기득권 세력의 모순과 배신을 분명히 보고 있다. 한동훈 전 대표가 아무리 “국민은 계몽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각성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한동훈 전 대표는 ‘국민을 지키는 개’가 아니라 ‘기꺼이 주인을 무는 개’가 되었고, 배신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치인이 되었다. 국민은 이를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깨어난 국민은, 다시는 그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최원호 목사 캐리커처.

▲최원호 목사 캐리커처.

최원호 박사

심리학 박사로 서울 한영신대와 고려대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했습니다. <열등감을 도구로 쓰신 예수>, <열등감, 예수를 만나다>, <나는 열등한 나를 사랑한다> 등 베스트셀러 저자로 서울 중랑구 은혜제일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최원호 박사의 이중창’ 칼럼은 신앙과 심리학의 결합된 통찰력을 통해 사회, 심리, 그리고 신앙의 복잡한 문제의 해결을 추구합니다. 새로운 통찰력과 지혜로 독자 여러분들의 삶과 신앙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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