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장난과 위협과 조롱,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  

[사자와 어린 양이 뛰노는 나라: 이사야 36장] 앗수르 침략이 하나님의 뜻인가?

▲ⓒ픽사베이

▲ⓒ픽사베이

이사야 36장 강해

요절: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21절)

히스기야는 아하스와 아비에서 태어나 25세에 등극하여 29년을 치리합니다.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을 합니다. 그는 산당들 돌기둥과 아세라 목상과 모세의 놋뱀과 우상을 제거합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정치적으로 앗수르 왕을 배격하였습니다. 군사적으로 가사와 온 국경선까지 망대와 요새화된 성읍까지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같은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과 군사적 승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2차 침입한 것입니다.

1. 앗수르 산헤립의 공격

1-3절을 보면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점령하였습니다.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포위합니다. 예루살렘이 지형적으로 방어하기에 유리해, 쳐들어오지는 못하고 협박합니다.

히스기야 왕 14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들을 쳐서 취하였습니다. 주전 701년부터 4년간 재위한 산헤립은 유다의 주요 도성을 점령하고 포위하였습니다. 유다의 46개 도성을 침략하였습니다. 조롱 속 새처럼 예루살렘을 봉쇄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지 5년 만에 다시 유다를 공격하였습니다. 산헤렙이 공격한 이유는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였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바쳤습니다. 그러나 앗수르 왕은 침공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요새인 라기스를 점령하였습니다. 그곳을 앗수르 군의 중요 주둔지로 삼았습니다. 산헤립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관직명입니다. 유다는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있습니다.

앗수르 왕은 라기스에서부터 군대장군 랍사게에게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였습니다. 랍사게는 총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앗수르 왕은 장기적 소모전보다는 히스기야의 빠른 항복을 바랐습니다. 그는 윗못 수도 곁에 세탁자의 밭 큰길가에 섰습니다. 왕궁 맡은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이가 랍사게에게로 나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모였습니다. 군인들이 간 것이 아니라 외교관들이 갔습니다.

4-5절을 보면 랍사게가 온 것은 정치적 타협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히스기야에게 최후 통첩을 위해서 온 것입니다. 항복이냐 몰살이냐는 것입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에게 전하라고 합니다. 히스기야에게 무엇을 의지하느냐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무슨 힘이 있어서 앗수르를 반역했느냐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참모도 없고 군대도 없다고 합니다.

랍사게는 앗수르 왕의 글을 통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와 그 백성을 두렵게 하고 낙망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는 히스기야가 싸울 전략과 용맹이 없다며, 그와 유다 백성을 두렵게 하고 힘을 빼며 낙망케 하려 하였습니다. 에굽도 그들을 도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2. 앗수르 침략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함

7-10절을 보면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불신을 심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헛되다며,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그와 유다 백성의 믿음을 흔들어 놓으려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이 지방에서 바알을 섬기는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예루살렘에서 하나님만 섬기게 하였습니다. 산헤립은 이것을 히스기야가 각 지방에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한 것으로 오해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왕과 백성을 이간질시킵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하는 개혁 신앙에 대해 불신을 심었습니다. 그가 개혁하였으나, 앗수르가 유다의 중요 성읍을 점령하였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구하기로 하였더라면, 앗수르의 침공 자체를 못하게 하였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무능했다고 말합니다. 랍사게의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앗수르 왕은 자신이 쳐들어온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산헤립은 하나님이 유다를 치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 앗수르 침략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런 말은 매우 설득력이 있는 말입니다. 그들은 정당성을 가지고 이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들이 유다를 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회개치 않자 바벨론에 항복하여 포로로 끌려가라고 합니다. 사단은 교묘하게 말합니다.

11-14절을 보면 앗수르 왕은 18만 5천 명이 쳐들어왔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군사가 5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는 물도 없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수로도 막았습니다. 예루살렘은 바위를 뚫고 수도공사를 합니다. 산헤립은 히브리 말로 예루살렘을 모욕합니다. 아주 심한 말을 합니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는 히스기야를 대신하여 나옵니다.

3.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심고 거짓 희망을 심음

15-17절을 보면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나를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신뢰하면 앗수르 왕에서 건지리라고 말했는데 그것을 신뢰하지 말라고 합니다.

히스기야는 유다의 구원은 예루살렘 성전을 신뢰하지 않고 여호와를 신뢰하는 데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히스기야는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자고 합니다. 백성은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백성들은 히스기야의 하나님을 믿고 히스기야를 신뢰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자는 히스기야의 말은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그러나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도 듣지 말라고 합니다. 유다의 아름다운 미래는 하나님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히스기야와 이사야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도 도전합니다. 히스기야는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니 미혹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불신을 심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건질 수 있다는 말도 믿지 말라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제시한 구원의 소망을 포기하도록 말합니다.

그는 마치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이 백성을 미혹하는 거짓말인 것처럼 선전하며 유다 왕을 모독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지도자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심습니다. ‘듣지 말라’, ‘따르지 말라’, ‘미혹되지 말라’, ‘속지 말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유다 사람들에게 앗수르에게 항복하면 포도와 무화과와 자기 우물을 마실 것이라고 합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겨서 정착하여 살게 하겠다고 합니다.

유다가 앗수르에게 항복하면 그들에게 축복을 약속하겠다고 합니다. 히스기야만 빼고는 행복을 주겠다고 합니다. 우리와 조약을 맺고 화평을 누리자고 합니다. 사단은 자신의 말을 들으면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4. 현실에 근거한 합리적인 불신을 심음

18-20절을 보면 랍사게는 여러 경험을 들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심습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가 건진다고 하여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주의 종에 불신을 심습니다.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신은 없다고 합니다. 하맛(720)과 아르밧(740)과 스발와임과 사마리아 어느 신도 앗수르 왕의 신에서 건지지 못핬다고 합니다.

여러 나라 신이 무릎을 꿇었듯 여호와도 그럴 것이라고 합니다. 우상과 여호와를 동일시합니다. 하나님을 우상화합니다. 랍사게는 여호와도 열국의 신들 중 하나와 같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앗수르 왕은 하나님을 자기와 비교하며, 하나님의 이름과 권위와 능력을 발로 밟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모독한 큰 죄였습니다.

앗수르 왕의 말은 마귀와 말과 같았습니다. 마귀는 성도들에게 절망을 안겨줍니다. 그는 세상적 방편이 아무것도 없음을 말하며, 인간적으로·세상적으로 성도를 절망시키려 합니다. 마귀는 성도에게 두려움과 의심, 불신을 조장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으려 합니다.

그러나 산헤립은 그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유다가 죄악이 있을 때 징벌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앗수르 왕을 쓰셔서 역사를 이룬 것을 그는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히스기야는 하나님만을 믿도록 개혁을 하여서, 다른 나라와 다릅니다. 산헤립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짓고 18만 5천 명이 하루아침에 죽음을 당합니다.

5. 왕에게 순종하여 잠잠한 유다 사람들

21-22절을 보면 유다 사람들은 히스기야를 신뢰하고 한마디도 대답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용하였습니다. 백성들은 떠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의 말에 순종하였습니다. 백성들이 히스기야를 믿어주었습니다. 히스기야을 중심으로 신앙적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모욕을 받으면서도 침묵하였습니다. 그들은 왕을 신뢰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극적이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굴욕을 당할 때 신앙적으로 조용해야 합니다. 조용과 침묵 속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옷을 찢고 슬퍼하며 분노하였습니다. 그들은 히스기야에게 이 모든 것을 전하였습니다. 사단의 말에는 반응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로 사단을 대적해야합니다.

유다 백성은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그들에게 명하여 대답지 말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장난과 위협과 모독적 말에도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에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 옷을 찢고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고하였습니다.

이사야 37장 1절은 그가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고 증거합니다. 그것이 해답입니다. 거기에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며 믿음과 의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고난의 현실도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오요한 목사.

▲오요한 목사.

오요한 목사

천안 UBF(말씀사랑교회)
성경 66권 유튜브 강해자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

많이 본 뉴스

123 신앙과 삶

CT YouTube

더보기

에디터 추천기사

승리의 시작

백선엽 장군 영화 <승리의 시작>, 촬영 마치고 후반 작업 중

작품 객관성 위한 대규모 인터뷰 백 장군 전투 지역 함께 방문 촬영 극적 장면, 드라마 형식 재연 장점 집안 기독교 내력, 친일 이력 정정 이승만 대통령 영화 으로 작년 전국 극장 상영과 광복절 KBS에서 방영한 권순도 감독이 백선엽 장군 소재 영화 으로 관객들…

한기총 임원회 고경환 대표회장

한기총 “WEA 신학적 문제 밝힐 포럼 계획 중… 백서 발간도 고려”

고경환 대표회장 “배도 우려 요소 및 문제점 분명히 밝힐 것”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고경환 목사, 이하 한기총)는 12일 “WEA의 보다 근본적인 신학적 문제점을 밝히기 위해, 저명한 신학교수들과 포럼을 계획했다”며 발제문과 일시는 추후 공개하기로 …

윌버포스

“그리스도인 정치가, 정치적이되 정파적이지 않아야”

“그리스도인 정치인이 정치적이되, 정파적이지 않아야 한다.” ‘Statesman’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는 노예 무역 폐지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당시 사회 시스템의 질적 성숙을 목표로 ‘도덕(악습) 개혁’에 나섰던 야망 …

이 기사는 논쟁중

인물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