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독교적인데 반감만 내세울 수 없는 영화 <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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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넷플릭스 영화 <계시록> (1)

박욱주 박사님의 이번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에서는 넷플릭스에서 3월 21일 공개된 스릴러 영화 <계시록>을 분석합니다. <부산행>, <정이>, <지옥> 등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과 <그래비티>, <로마> 등으로 유명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협업한 신작으로 배우 류준열, 신현빈, 신민재, 문주연, 한지현, 김보민, 최광일 등이 출연합니다. 이 칼럼에는 최소한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 주

▲영화 &lt;계시록&gt;은 한 개척교회 목회자의 폭주를 통해 한국교회의 잘못된 계시 이해, 그리고 교회 내부의 각종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영화 <계시록>은 한 개척교회 목회자의 폭주를 통해 한국교회의 잘못된 계시 이해, 그리고 교회 내부의 각종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개신교 비판 능력 정점 올랐지만
반감만 느끼기 어려운 쟁점 존재
잘못된 계시 이해, 목회자 외도,
교회 가입 자격, 정치·직위 경쟁,
헌신과 야심 혼재, 비리 무마 등
오늘날 교회 모든 문제들 담아내

연상호 감독의 반기독교적인, 하지만 예리한 교회 비판 영화

3월 2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연상호 감독의 <계시록>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삼는 영화로, 심각하게 뒤틀린 삶을 사는 세 사람의 서사를 작은 미자립 개척교회를 배경삼아 하나로 엮어내고 있다. 서사를 이끌어가는 세 사람의 주인공은 각각 젊은 목회자, 강력 성범죄자, 그리고 강력계 형사라는 삶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작품 분위기는 시종일관 불안하고 암울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극을 이끌어가는 두 사람, 개척교회 목회자 성민찬(류준열 분)과 성범죄자 권양래(신민재 분)의 삶이 험악하게 망가져 가는 모습이 서사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강력계 형사 이연희(신현빈 분)가 권양래가 납치, 감금한 여학생을 구출하며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는 장면만이 잠시 밝고 감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뿐, <계시록> 전체는 러닝타임 내내 시청자를 무겁게 짓누르는 갑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야말로 연상호 감독다운 연출이 아닐 수 없다. 교회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압축해 폭로하는 서사와 연출방식은 연상호 감독의 전매특허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 <사이비>(2013)와 드라마 <지옥>(2021·2024)에서 보여준 한국 개신교 비판 혹은 개신교계 이단 비판 실력은 국내 미디어 콘텐츠 제작자들 가운데서 비견할 이가 없을 정도다.

이번에 공개된 <계시록>을 보면, 연상호 감독의 한국 개신교 비판 능력이 그 정점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신교 신자들 가운데 이 작품을 보고 유쾌함을 느낄 이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연상호 감독의 교회와 교역자에 대한 비판의식 가운데는 우리가 단지 반감만 느끼고 넘어갈 수 없는 고민스러운 쟁점들이 다수 존재한다.

계시에 대한 잘못된 이해, 교회 가입 자격 문제, 교역자 가정에서 발생하는 외도, 교회 내 정치와 직위 경쟁, 교회 세습, 헌신의 소명과 개인적 야심의 혼재, 교회 내부비리 무마방식, 하나님의 인도와 계획에 대한 오해 등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가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거의 모든 문제들이 <계시록> 서사에 하나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이 작품을 단순히 ‘반기독교적’이라고만 매도하기 어려운 이유다.

연상호 감독이 제기하는 여러 문제들 가운데 여기서 특별히 논하고 싶은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참된 계시란 무엇인가? 둘째, 교회는 죄인(실제 범죄자)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이번 편에서는 첫째 쟁점인 참된 계시를 분별하는 기준에 대해 잠시 설명한 다음, 영화 속에 묘사된 계시에 대한 잘못된 이해 행태에 대해 논평하고자 한다.

▲&lt;계시록&gt;에 나타난 연상호 감독의 교회와 교역자에 대한 비판의식 가운데는 우리가 단지 반감만 느끼고 넘어갈 수 없는 고민스러운 쟁점들이 다수 존재한다.

▲<계시록>에 나타난 연상호 감독의 교회와 교역자에 대한 비판의식 가운데는 우리가 단지 반감만 느끼고 넘어갈 수 없는 고민스러운 쟁점들이 다수 존재한다.

웨인 그루뎀 제시한 ‘계시’ 해석
1. 성경 준하는 새 계시는 없다
2. 참된 계시는 거시적 맥락에서
3. 자연계시는 부분적일 뿐이다
계시 자의적 규정, 경홀히 해석
교역자·신자들 씁쓸한 현실 짚어
정확·성경적인 분별 기준 세워
선 넘는 행태 규제 자정 노력을

복음주의적 계시분별 기준을 내던진 한국교회의 갑갑한 현실

참된 계시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초대교회 교부들, 그리고 중세부터 현대까지 무수한 신학자들이 참된 계시가 무엇인지 반복적으로 가르쳐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어느 시대든지 계시에 대한 오해가 결코 종식된 적이 없는 까닭이다. 역사상 단 한 차례 예외도 없이 복음이 처음 전파되는 곳에는 항상 정통 교의를 비트는 해석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곤 했다.

현대 서구철학은 이것이 당연한 순리라고 말한다. 현상과 해석에 대한 현대적 견해들, 이른바 실존철학과 포스트구조주의에서 인간 이해의 핵심 원리는 삶의 개별성이다. 인간 실존을 구성하는 시간과 공간은 내용상 서로 다 다른 속성을 갖기에, 한 인간이 타인 혹은 세계와 맺는 관계성 역시 다른 모양새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가운데 주어지는 모든 텍스트 또한 각자의 입장에서 다 다른 방식의 의미화를 거친다는 것이 현대의 철학적 현상학과 해석학의 기본 골자다.

이러한 견지에서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생겨나는 온갖 잘못된 교의 해석, 교회 전통, 심지어 이단과 사이비마저 삶의 개별성의 지극히 당연한 산물로 여겨진다. 결국 법적·윤리적 물의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모든 해석의 개별적이고 고유한 진리성(truthfulness)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다양성 존중의 원리가 일반화된 이 시대의 기본 정서다.

반면 복음주의 개신교 신학자들은 해석의 개별성에 일정한 선을 그으려 한다. 성서 해석의 개별성을 전부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서의 가르침을 깨우치는 데는 절대 무너뜨릴 수 없는 몇 가지 공통 근본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이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확고한 입장이다. 이를 벗어나는 절대적 개별성은 결국 계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훼방한다는 것이다.

▲참된 계시를 분별하는 복음주의적 근본원리를 벗어나는 절대적 개별성은 결국 계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훼방한다.

▲참된 계시를 분별하는 복음주의적 근본원리를 벗어나는 절대적 개별성은 결국 계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훼방한다.

일례로, 미국 피닉스 신학교 저명한 복음주의 조직신학 및 성서학 교수인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은 성서 계시의 올바른 이해에 대한 정통 교의로부터 다음 세 가지 원리를 도출해 제시한다.

첫째,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직접 배운 사도들과 제자들을 통해 완성됐다. 그러므로 성서 계시에 준하는 새로운 계시 같은 것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둘째, 참된 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려주신 그리스도의 가르침, 그리고 인류의 영혼에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이라는 거시적 맥락 안에서만 올바르게 해석될 수 있다.

셋째, 자연을 통해 주어지는 자연계시도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참된 계시 이해에 이를 수 없다. 자연계시는 오로지 하나님의 존재와 부분적 섭리만 나타내며, 그조차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특별계시 안에서만 올바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이 세 가지 원리는 복음주의 개신교인 입장에서는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 성서 해석의 핵심 규준이다. 그런데 막상 목회 현장에서 적지 않은 수의 교역자들과 신자들이 이 기준을 쉽게 내던진 채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계시’를 추종하곤 한다. 영화 <계시록>은 한국 개신교 목회자들이 흔치 않게 범하는 이런 어리석음을 예리하게 짚어내 비판한다.

작중 성민찬 목사는 우연치 않게 성범죄자 권양래와 계속 엮이게 된다. 성민찬은 처음에 이 범죄자가 자기 아들을 납치한 것으로 오판하고 권양래를 공격했다가, 나중에는 그가 자기 교회에 출석하던 여학생을 노려 납치한 사실을 알아내고 권양래를 죽이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산등성이를 보고 거대한 얼굴 형상을 인식하거나 구름 낀 하늘에서 빛나는 천사의 모양을 발견한다.

또 성민찬은 예상치 못하게 자신이 근처에 새로 지어지는 중대형 예배당의 담임목회자로 내정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범죄자와 엮이며 자연물로부터 특이한 징후를 포착하고, 그 와중에 자신의 사역에 대한 야심이 이뤄지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성민찬은 성범죄자 권양래를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자 계시라고 확신하게 된다.

▲작중 성민찬 목사는 우연치 않게 성범죄자 권양래와 계속해서 엮이게 되고, 자연물로부터 거대한 얼굴이나 천사의 형상을 인식하면서 권양래를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자 계시라고 확신하게 된다.

▲작중 성민찬 목사는 우연치 않게 성범죄자 권양래와 계속해서 엮이게 되고, 자연물로부터 거대한 얼굴이나 천사의 형상을 인식하면서 권양래를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자 계시라고 확신하게 된다.

여기서 성민찬이 계시라고 생각한 것은 신학자 그루뎀이 정리한 복음주의 신학의 세 가지 계시 분별 기준에 분명하게 어긋난다. 첫째,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준하는 계시는 오늘날 나올 수 없음에도, 성민찬과 주변 교역자들은 함부로 ‘계시’를 거론하고 그 내용을 자의적으로 이해한다.

둘째, 인류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참된 계시의 조건임에도, 성민찬은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성범죄자를 악의적으로 살해하려 한다. 셋째, 자연계시는 결코 특별계시 수준의 권위를 가질 수 없는데, 성민찬은 산과 하늘에서 본 착시를 하나님의 계시로 단정하고 있다.

영화 <계시록>이 약간 과장된 형태로 계시를 자의적으로 분별하고 규정하는 한국 개신교 교역자들의 그릇된 행태를 풍자하고 있지만, 사실 연상호 감독의 비판의식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애초 한국교회 교역자들이 모두 올바른 정통 교의 기준에 따라 계시를 규정하고 이해했다면 저런 풍자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계시록>은 계시를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그 내용을 경홀히 해석하는 교역자와 신자들이 드물지 않게 목격되는 한국교회의 씁쓸한 현실을 짚어내 공격하고 있다. 교역자들과 신자들이 자신의 과오나 비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 계시를 들먹이는 행태가 종식되지 않는 한, 이런 아전인수격 계시이해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조롱하는 미디어 콘텐츠의 어조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근래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한국교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작품들이 자주 제작되곤 했지만, 이번 <계시록>만큼 날카롭게 한국교회의 약점을 공략하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이 작품의 주인공 성민찬과 그 주변 개신교인들 모두 작중 이단·사이비 종파가 아니라, 한국의 복음주의 정통교단 소속이라는 설정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계시, 하나님의 뜻, 인도하심 등의 정확하고 성경적인 분별 기준을 세우고 선을 넘는 행태를 규제하려는 교회의 자정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이견을 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교역자들과 신자들이 자신의 과오나 비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 계획, 계시를 들먹이는 행태가 종식되지 않는 한, 이런 아전인수격 계시 이해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조롱하는 미디어 콘텐츠의 어조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교역자들과 신자들이 자신의 과오나 비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 계획, 계시를 들먹이는 행태가 종식되지 않는 한, 이런 아전인수격 계시 이해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조롱하는 미디어 콘텐츠의 어조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 좁은문은혜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면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박욱주 교수.

▲박욱주 교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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