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칼럼] 십자가에 달리신 왕, 나사렛 예수(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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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VI. 십자가의 하나님: 신 개념의 혁명

살아계시는 대속의 하나님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우리 가운데 계시며, 하나님이 전능하시더라도 무능하신 하나님인 것처럼 우리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신다. 십자가의 길은 영광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죽음의 길을 통하여 그의 생명의 길을 여신다. 아들이 십자가의 처형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이 섭리로서 정하신 길이다. 내면적으로는 간섭하시나 표면적으로 전혀 간섭하지 아니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그분만이 진정 하나님이시다. 아들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시는 처형을 받음으로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 심판을 충족시켜야 한다. 처벌을 받는 과정에서 아들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진노의 잔을 마셔야 한다.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아들의 절규하는 기도에 대하여 아버지는 응답하시지 않으신다. 아버지는 십자가 상에서 아들의 목숨이 다하도록 침묵하시고 내버려 두신다.

하나님은 십자가 상에서 아들이 철저히 인류 대속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도록 하신다. 이것이 아버지의 고귀하신 뜻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처참하게 죽어가는 아들을 내버려 두시고 간섭하지 않으신다. 이와 상응해서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신뢰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수용하고 있다. 메시아 의식을 분명히 가지신 예수는 십자가 처형에 이르는 어려운 고난의 과정을 유한한 인성을 뒷받침하는 그의 무한한 신성으로 수행하고 있다. 예수는 아들인 자신을 철저히 외면하시는 아버지의 부재(不在)를 수용하고 있다. 아버지 불간섭과 부재에 대한 수용과 인식에 있어서 역사적 예수의 신성(the divinity of historical Jesus)의 역할이 있다. 예수의 신성은 그의 취약한 인성을 극복하고 있다. 예수의 신성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인성의 좌절과 죽음의 고통을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이 수행되도록 신적 인내와 신뢰 속에서 수용한다. 수용하는 능력은 신성에 동반된 충만한 성령이 무한히 공급한다(요 3:34). 십자가에 달리신 아들에 대한 불간섭과 그를 철저히 죽음에 버려두시는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무신론이나 전통적인 이신론이 아니라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전혀 새롭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전통적 헬라적 신 개념 혁명을 가져다 준다. 헬라적 신은 불변하는 신이며, 시간 속에 있을 수 없으며, 고통을 느낄 수 없으며, 특히 죽을 수 없는 존재였다. 이러한 신은 인간에게는 거리가 멀고 친근하게 느낄 수 없는 분이다. 유대인들조차도 하나님은 너무나도 초월해 있기 때문에 감히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분이시며, 이름도 제대로 부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한 헬라적 신 개념을 깨뜨린 사건이 바로 십자가의 하나님이다.

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대속제물로 주셨다. 아들은 성자 하나님이다. 십자가 상에서 성자 하나님이 죽으신 것이다. 삼위일체적으로 말하면 성자 안에서 성부 하나님이 죽으신 것이다. 분명히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죽음을 말한다. 성자 하나님의 죽음 속에 성부 하나님의 죽음도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삼위일체론적으로 해석된 하나님의 죽음 사건은 지난 세기 1960년도 미국의 사신(死神) 신학자들(반 뷰런, 토마스 알타이저, 윌리엄 하밀톤 등)이 선언한 내재화된 세속시대 속에서 선언되는 신의 죽음과는 다르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죽음은 세속화된 세상에서 신성한 영역이 더 이상 없으며, 하나님의 자리가 더 이상 없다는 의미에서 사신론(死神論)의 주장이 아니다. 신약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죽음이란 역사상 구체적으로 예루살렘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서 하나님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자신의 귀하신 생명을 대속의 제물로 주셨다는 것이다. 바로 성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앞에 성자 하나님이 중보자로서 자기의 몸을 희생제물로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재래적인 종교 신 개념의 혁명이다. 재래적인 종교 신은 인간에게 죄의 보상을 요구하며 인간의 희생을 요구하고 인간의 비극과 형벌을 요구하고 인간 스스로의 보상을 요구한다. 이러한 이방(異邦)신은 변덕이 많고, 자의적으로 인간에게 불행과 재난과 질병을 가져다 오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항상 공포를 느끼는 그러한 신이다. 이에 반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분은 인간이 자력으로 죄책을 담당하고 속죄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능히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구약의 예언자 이사야는 다음같이 스스로 인간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다: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 구속할 해가 왔으나, 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사 63:4). 이 십자가의 대속은 하나님이 자신이 이미 주전 8세기에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하신 그 말씀대로 하나님 자신이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성취하신 경륜의 사건이다.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은 그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주신 그의 희생하시는 사랑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요일 4:9-10). <계속>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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