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형 칼럼] 일자리 지형 변화
‘일’ 의미 성경적으로 되새겨야
하나님께서 인간에 주신 사명
직장, 단순히 돈 버는 곳 아닌
우리 삶의 예배 드리는 자리
AI로 일 잃은 이들 공감 필요
우리 사회와 짊어져야 할 과제
AI 기술 발전이 우리의 일자리 지형을 빠르게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특히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업무들은 AI로 대체되는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얼마 전 한 시중은행 콜센터에서는 240여 명의 상담사가 한꺼번에 해고 통지를 받았습니다. 은행 측은 인공지능 상담 도입 이후 고객센터 문의량이 전년보다 약 20% 감소해, 부득이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눈앞의 현실이 된 AI 대체는 이제 더 이상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닙니다. 세계적 IT 기업들도 AI로 인한 인력 재편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IBM은 앞으로 5년 이내에 최대 7,800개의 일자리를 AI로 대체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미국 IT 전문 매체인 CNET의 경우, AI를 활용해 기사를 작성한 지 몇 주 만에 전체 직원의 약 10%를 해고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면서 실제 인력 감축이 현실화되는 사례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산업혁명 시기에도 기술 발전으로 인한 구조적 전환이 있었습니다.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농업 사회가 공업 사회로 옮겨갔지만, 이러한 변화가 자리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동노동 금지법, 노동조합 출현, 근로 시간 제한 등의 사회적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70-10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갈등과 조정을 거쳐 비로소 산업사회에 맞는 제도가 마련됐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는 AI 중심의 변화는 그때보다 훨씬 압축된 시간 안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일터의 풍경부터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이에 알맞은 사회적 준비를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제도와 안전망은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AI 기술을 둘러싼 변화의 흐름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소수의 경제 권력이 주도하는 기형적 발전이라는 그림이 보입니다.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거대 기업들이 AI 혁신을 이끌면서, 그 열매의 상당 부분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반면 평범한 노동자들과 약자들은 그 변화에 따른 희생을 고스란히 떠안는 형국입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 사회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흐름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빠르게 달리는 기술 발전 이면에 고통받는 이들에게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는 일, 이 또한 신앙 공동체의 책임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일(work)’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일’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거룩한 소명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은 사람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고 가꾸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우리가 땀 흘려 일하며 세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시간을 통해 그분의 창조 목적에 동참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직장은 단순히 돈을 버는 곳만이 아니라 내 삶의 예배를 드리는 자리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자신의 소명을 잃은 마음의 상실감까지 불러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실직의 아픔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일의 신성한 의미를 알기에, 일터를 잃은 이들의 상심과 좌절에 더욱 공감하게 됩니다.
AI로 인한 거대 변화 속에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이들은 사회적 약자와 힘없는 노동자들이기에, 그들의 어려움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짊어져야 할 과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사명은,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울고 함께 짐을 지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손을 놓지 않고 그들 곁에서 함께해 준다면, 실직으로 인한 절망의 어둠 속에서도 그들은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얻을 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혁의 시대에 교회가 세상의 아픔을 껴안고 서로의 짐을 지면서, 잃어버린 자리에서 새로운 소명을 발견하도록 돕는 안내자로 부름받은 사명을 충실히 행할 때,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를 모아 준비할 때,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도 새로운 길과 새로운 사명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박순형 목사
웨이크신학원 교수
‘AI 시대 과학과 성경’ 강의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서기
극동방송 칼럼. 국민일보 오늘의 QT 연재
(주)아시아경제산업연구소 대표이사
이학박사(Ph.D.)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M.Div)
필리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