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알고리즘 의한, ‘눈에 보이지 않는 통제’ 시작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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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형 칼럼] 소프트 전체주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결합된
현대판 소프트 전체주의 등장
빅테크 기업들, 알고리즘 이용
자극적·극단적 콘텐츠 추천해
불편한 목소리는 삭제나 가림
무의식적 ‘자발적 복종’ 상태
강압적 전체주의보다 파괴적
통제당한다는 사실조차 몰라

▲관련 기획 다큐 보도 화면. ⓒKBS

▲관련 기획 다큐 보도 화면. ⓒKBS

오늘날 우리 사회는 교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의 통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결합하면서 현대판 ‘소프트 전체주의’가 등장한 것입니다.

우리는 플랫폼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클릭하고, 편리함과 흥미에 이끌려 개인정보를 제공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이러한 행동이 빅테크 기업의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고리즘은 마치 우리에게 최적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행동을 교묘히 설계하고 있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은 우리가 플랫폼에 오래 머물도록,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콘텐츠를 앞다퉈 추천합니다. 우리는 흥미롭거나 편하다는 이유로 그 콘텐츠에 머물게 되는데, 이는 알고리즘이 허락한 만큼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발적 복종’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처럼 디지털 공간에서 무의식적으로 길들어진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잃고, 거대하며 보이지 않는 손에 조종되는 꼭두각시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튜브나 틱톡에서 보는 영상들, 페이스북과 스레드,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서 접하는 글들은 모두 AI 알고리즘을 거쳐 제공됩니다. 알고리즘은 개인의 취향에 맞춰 콘텐츠를 제공하는 동시에, 불편한 목소리들을 조용히 삭제하거나 가려버리기도 합니다.

폭력적이거나 부적절한 콘텐츠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이슈를 담은 콘텐츠까지 사라지는 일도 발생합니다. 실제로 일부 플랫폼은 음모론이나 가짜뉴스 방지를 명분으로 콘텐츠를 삭제하거나 제한하는데,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결국 소수 플랫폼 운영자들이 디지털 여론을 통제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이렇게 한정되고 왜곡되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비판 정신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한 통제는 처음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편리함과 즐거움에 빠져 있는 사이 우리 정보는 차곡차곡 축적되고, 행동 패턴은 분석되며, 선택은 점점 더 제한되게 됩니다. 이렇게 모든 통제의 조각들이 맞춰지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힘을 잃고 시스템에 묶인 존재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소프트 전체주의’의 위험성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폭력이나 억압이 없다는 이유로 간과되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강압적 전체주의보다 훨씬 강력하고 파괴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통제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 믿으므로 그 사슬을 끊어내기 더 어렵기 때문이며, 특히 우리를 통제하는 자들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AI 기술의 힘이 막강해진 만큼, 그 기술이 잘못 쓰일 때 우리 자유를 순식간에 빼앗을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처럼 전체주의적 통제는 먼 나라의 옛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위협입니다.

편리를 향한 무심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기술과 그 기술을 움직이는 세력들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정부에 투명한 규제와 견제 장치를 요구하고, 그들에게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최우선 가치로 삼을 것을 촉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디지털 독재의 싹을 그대로 방치하면, 머지 않아 되찾기 힘든 자유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 미래가 인간의 존엄과 자유 위에 설 것인지, 아니면 감시와 통제 속에 갇힐 것인지는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세력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통제를 할 수 있는 마법과 같은 이 강력한 도구의 사용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서서히 전체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이 상황이 단순히 사회적·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과 신앙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지해야 합니다.

이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야욕을 이루는 도구에 이용당할 수 있으며, 그 영향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 기도, 진리의 말씀대로 행함,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기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적극적으로 감당하고, 전체주의로 가는 이 흐름을 막아낼 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시대적 사명이자, 이 땅의 자유와 영적 생명을 지켜내는 길입니다.

▲박순형 목사.

▲박순형 목사.

박순형 목사

웨이크신학원 교수
‘AI 시대 과학과 성경’ 강의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서기
극동방송 칼럼. 국민일보 오늘의 QT 연재
(주)아시아경제산업연구소 대표이사
이학박사(Ph.D.)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M.Div)
필리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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