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논평 발표…헌재에 탈이념·탈정치 촉구도
헌법재판소는 양심과 순수성에 있어 다시 태어나야
정치권은 정쟁 멈추고 민생 살리는 일에 당장 나서야
한국교회는 고난주간 맞아 국민의 고통에 동참해야
목소리가 큰 사람, 세를 모으는 사람이 승리자 아냐
하나님 사랑과 정의의 승리 믿으며 십자가 기억하길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이하 샬롬나비)은 4월 14일 발표한 고난주간 논평에서 “헌법재판소는 이 고난주간 국민들 앞에서 이념과 정치색을 벗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여야 정치권은 정쟁을 멈추고 서민들의 고통을 해소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샬롬나비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당했던 극악한 고통과 고난이 인류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대신 짊어진 것으로 믿는다”며 “인간과 세계가 당하는 고통과 고난은 악이나 숙명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여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이 미증유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음을 본다”며 “국민들은 (탄핵)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몇 개월째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다. 경제는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고, 자영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방위비 협상은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에 샬롬나비는 첫째로 “헌법재판소는 그 양심과 순수성에 있어서 국민 앞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헌법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 헌법재판소가 과연 헌법수호의 책임을 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에 반하는 이념성향을 갖는 재판관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국민의 의혹과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서 사실적인 민주주의 기관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둘째로 “정치권은 정쟁을 멈추고, 민생을 살리는 일에 당장 나서야 한다”며 “대통령 파면으로 지금 한국사회는 거대한 위기 앞에 직면해 있다. 거대야당이 진정으로 민생을 챙기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또 “파면된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지금 국민의힘 역시 철저한 자기반성과 쇄신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며 “죽어가고 있는 경제를 살리고, 절망에 빠진 민생을 살리는 일에 야당과 협치해서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셋째로 “한국교회는 고난주간을 맞아 국민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내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개교회주의에서 벗어나 모든 교회가 힘을 합해 산불 피해 주민들을 돕는 일에 연보를 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지역 가운데 있다. 그 지역의 골목상권을 살리고, 자영업자들을 돕는 일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밝혔다.
넷째로 “주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모든 문제의 근원적인 뿌리인 죄를 해결하는 고난의 길이었다”며 “이러한 인간의 죄로 인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여 인간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만들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만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짊어지셨다. 이 고난의 십자가의 의미를 우리는 이 고난의 주간에 깊이 묵상해야 한다”고 했다.
다섯째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며 나의 십자가를 묵상하자”며 “나의 입장만이 옳다는 외침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며 경청하며 상호공존과 공생의 길을 모색해야 우리 사회의 화합이 가능해질 것이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마음을 닫고 나의 주장만을 외치는 우리에게 주님의 십자가는 내려 놓으라고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주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승리를 믿으며 십자가를 지셨음을 기억하자”며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와 정의가 승리할 것을 믿어야 한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세를 많이 모으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가 승리할 것을 믿으며 걸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논평 전문.
2025년 고난주간에 즈음하여
헌법재판소는 이 고난주간 국민들 앞에서 이념과 정치색을 벗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정쟁을 멈추고 서민들의 고통을 해소하는 일에 적극 나서라
기독교를 나타내는 가장 보편적인 상징은 십자가이다. 건물에 십자가가 보이면 거기에 기독교 신앙의 공동체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된다. 이렇게 십자가는 기독교이며, 기독교는 곧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고대 로마에서 극악한 사형수를 처형하는 잔혹한 사형도구였다. 여러 역사가가 인정하듯 주후 1세기의 나사렛 예수는 이 십자가에 매달려 사형을 당했다.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당했던 극악한 고통과 고난이 인류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대신 짊어진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인간과 세계가 당하는 고통과 고난은 악(惡)이나 숙명(宿命)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여는 과정이다. 예수의 이 고난을 기억하고 현재화하는 시간이 고난주간이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이 미증유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음을 본다. 다행히 최악의 산불은 진화됐지만 이 과정에서 고귀한 인명이 희생됐고, 재산과 산림 피해는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여전히 곳곳에서 작은 산불이 나고 있으며 불을 진화하는 과정에서 인명희생이 계속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인용으로 파면됐지만, 국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몇 개월째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다. 이로 인해 경제는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고, 자영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곳곳에서 울부짖는 서민들의 비명소리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방위비 협상은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극악한 고난과 고통 후에 영광의 부활이 있음을 우리는 믿기에, 지금의 이 고통과 고난 후에 새로운 희망과 미래가 대한민국에 올 것임을 우리는 굳게 믿으며,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1. 헌법재판소는 그 양심과 순수성에 있어서 국민 앞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헌법재판소(헌재)는 지난 4월 4일 국회에서 탄핵된 윤석열 대통령을 재판관 8명의 의견으로 파면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 동안 탄핵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엄청난 갈등과 대립이 있었는데, 이 불행한 사태를 과연 헌재가 치유했는지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헌재는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기각이든 인용이든 늦어도 3월 중순에는 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4월 4일에 내렸고,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야 했다.
헌법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각자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초월해 모두 동의하기로 합의한 최고의 계약이다. 예컨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헌법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헌법재판소이다. 그런데 헌재는 결정을 고의로 연기함으로 많은 국민을 혼란과 대립으로 몰아갔다. 헌재가 과연 헌법수호의 책임을 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헌재가 헌법에 반하는 이념성향을 갖는 재판관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전원일치라는 만장일치 의견이 나왔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혹시 독재의 망조 혹은 강압에 의한 것은 아닌지 의혹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헌재는 명실상부한 국민을 위한 헌법수호기관으로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국민의 의혹과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서 사실적인 민주주의 기관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2. 정치권은 정쟁을 멈추고, 민생을 살리는 일에 당장 나서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이다. 정부, 국회, 법원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은 정쟁을 멈추고, 파탄 지경에 이른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대통령 파면으로 지금 한국사회는 거대한 위기 앞에 직면해 있다. 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실제적인 권력은 거대야당이 쥐고 있다. 그런데 거대야당이 진정으로 민생을 챙기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당대표의 사법적 리스크를 방탄하는 일에만 당력을 모으고 있지 않는지 반성해야 한다. 권력을 쟁취하는 것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민생을 챙기고, 민생을 살리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기를 촉구한다.
파면된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지금 국민의힘 역시 철저한 자기반성과 쇄신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최고 지도자의 탄핵과 파면은 국가적 손실이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거대야당의 전횡에 큰 원인이 있지만, 그렇다고 보수정당의 책임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민생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탄핵과 파면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어가고 있는 경제를 살리고, 절망에 빠진 민생을 살리는 일에 야당가 협치해서 나서기를 촉구한다.
3. 한국교회는 고난주간을 맞아 국민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어느덧 선교 140년을 맞았다.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성숙한 자세로 한국사회에 희망과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한국의 초대교회가 다양한 교육과 구제사업으로 국민들의 신망과 신뢰를 얻었던 그 역사를 회복해야 한다.
가장 먼저 산불로 인해 큰 피해를 당한 주민들을 돕는 일에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 내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개교회주의에서 벗어나 모든 교회가 힘을 합해 산불 피해 주민들을 돕는 일에 연보를 해야할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참된 교회의 모습이다. 또한 파탄지경에 이른 서민경제를 살리는 일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물론 경제 활성화는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지만, 이들이 이 과제를 방기하고 있기에 이제는 교회가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는 지역 가운데 있다. 그러기에 그 지역의 골목상권을 살리고, 자영업자들을 돕는 일에 힘을 보태야 한다.
한국교회가 예전과 같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는 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 외에는 없다.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강도만난 이웃을 치료해 주는 선한 사마리아가 지금 절실한 시기이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누가복음 10장 37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한국교회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4. 주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모든 문제의 근원적인 뿌리인 죄를 해결하는 고난의 길이었다.
오늘날 인간 사회는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자연환경의 파괴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우리 삶의 자리의 피폐화, 러우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같은 끊임없는 전쟁, 트럼프의 관세 전쟁을 촉발시키는 패권경쟁과 함께 무역 불균형의 문제 등 헤아릴 수 없는 갈등과 반복이 세계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의 뿌리에는 인간의 죄의 문제가 놓여 있다. 내가 남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이기심, 남을 지배하며 더 큰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권력욕 등 인간의 삶의 뿌리에 있는 죄에서 나오는 결과들이다. 인간의 죄로 생겨나는 가장 큰 결과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죄로 인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여 인간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만들고 인간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만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짊어지셨다. 그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통해서만 인간의 죄값을 지불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 인간들 사이의 갈등과 분리를 극복할 수 있었으므로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외치시면서 십자가를 지셨다. 이 고난의 십자가의 의미를 우리는 이 고난의 주간에 깊이 묵상해야 하겠다. 분열과 반복, 갈등과 대립의 길에서 내 생각만이 옳다는 주장을 넘어서서 서로의 속에 있는 죄의 깊이를 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할 때 상생의 길이 열릴 것이다.
5.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며 나의 십자가를 묵상하자
오늘 우리의 사회는 극단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선명성의 기치를 내세우면서 분열과 대립이 더 심화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러한 반복과 갈등은 교회 내부에도 깊숙이 침투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교회의 분열 속에서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는가?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자신의 것을 내려 놓는 것이다. 나의 것을 포기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가 극단을 내려 놓아야 한다. 나의 입장만이 옳다는 외침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며 경청하며 상호공존과 공생의 길을 모색해야 우리 사회의 화합이 가능해질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며 상호존중을 해야 서로의 마음이 열릴 것이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마음을 닫고 나의 주장만을 외치는 우리에게 주님의 십자가는 내려 놓으라고 요구한다.
6. 주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승리를 믿으며 십자가를 지셨음을 기억하자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면서 그 앞에 있는 승리의 기쁨을 바라보셨다. 히브리서는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라(히12:2)”라고 말한다. 주님이 십자가의 그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참으실 수 있었던 것은 그 앞에 놓여 있는 기쁨, 즉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는 것을 바라보셨기 때문이었다. 마귀는 예수님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으면 승리할 것이라 보았으나, 오히려 예수님은 그 악한 길을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인 인간 구원의 정의와 공의의 길로 선용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와 정의가 승리할 것을 믿어야 한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세를 많이 모으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가 승리할 것을 믿으며 걸어가야 한다. 우리는 갈라진 사회, 반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섬기며 화해시키며 화목을 이루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번 고난의 주간에 우리는 “십자가로 이 둘(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몸으로”(엡2:16) 만드신 주님의 길을 묵상해야 하겠다.
2025년 4월 14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