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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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153] 제3차 전도여행(40) 니고볼리(8)

옥타비아누스 악티움 패했다면
니고볼리 건설 못했을 것, 바울
디도서에서 니고볼리 언급 불가
기념 박물관 찾느라, 한참 헤매

▲악티움 해전이 벌어진 곳. 옥타비아누스 함대는 해협 오른쪽,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 함대는 해협 왼편에서 대치했다. 바다 건너 보이는 육지는 악티움 반도.

▲악티움 해전이 벌어진 곳. 옥타비아누스 함대는 해협 오른쪽,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 함대는 해협 왼편에서 대치했다. 바다 건너 보이는 육지는 악티움 반도.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과동하기로 작정하였노라(디도서 3장 12절)”.

바울 사도가 디도서에서 언급한 니고볼리는 지난 회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와 악티움 해전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곳이다.

만약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해 니고볼리를 건설할 수 없었다면, 사도 바울은 디도서에 니고볼리를 언급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긴 만약 옥타비아누스의 정적인 안토니우스가 승리했다면 그 역시 승리를 기념하여 도시를 건설했을지도 모르지만….

니고볼리를 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프레베자 시 동부 해안, 즉 암브라키아(Ambracia) 만에 면한 해안에는 악티움 해전을 기념하는 박물관이 있다. 필자는 이 박물관을 인터넷을 검색하다 발견했다.

▲악티움 해전 박물관. 건물 오른편은 생태환경 보전 박물관.

▲악티움 해전 박물관. 건물 오른편은 생태환경 보전 박물관.

그러나 인터넷에는 박물관이 프레베자 시내에 있다고만 돼 있을 뿐, 위치, 주소, 전화 등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 주민 여러 명에게 물어보았으나 모르겠다고 하므로, 필자는 시내 중심에 있는 시청 관광과를 방문했다.

직원들은 프레베자 지도를 주면서 박물관 위치에 O표를 표시해 주기에, 찾기 쉬워 보였다. 다음 날 아침 필자는 그 지도를 들고 박물관 위치에 찾아가 보았지만, 아무리 살펴도 ‘악티움 해전 박물관’이라는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건물 외부에 유럽연합(EU)이 지원해 주고 있다는 ‘생태환경 박물관’ 간판만 보인다.

주위를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 보아도 모르겠다고 한다. 혹시 더 가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수백 미터를 걷다 보니, 학교로 보이는 현대식 건물이 나타난다. 국립 해양대학교다.

그리스는 고대로부터 해양 강국이므로 프레베자에도 해양대학교가 있다. 교문 입구를 학생 서너 명이 걸어 들어가므로, 이들을 세우고 ‘악티움 해전 박물관’ 위치를 물어보았지만, 자기들도 모르겠다면서 휴대폰을 꺼내 검색을 한다.

▲상공에서 본 암브라키아만. 중앙 하단 해협 왼편이 프레베자, 해협 오른편이 악티움 반도. 니고볼리는 왼쪽 끝에 보인다.

▲상공에서 본 암브라키아만. 중앙 하단 해협 왼편이 프레베자, 해협 오른편이 악티움 반도. 니고볼리는 왼쪽 끝에 보인다.

잠시 후 한 학생이 그 박물관은 이곳에 없고 여기서 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있다면서, 필자가 손에 들고 있는 지도 위에 볼펜으로 표시를 해준다. 필자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부지런히 서쪽(프레베자 시 서쪽 해안) 방향으로 걸어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학생들은 실수로 엉뚱한 곳을 가르쳐 줬다. 3km 정도 걸어가자 도시를 벗어나려 하는 지점이었으므로, 이런 곳에 박물관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만나는 주민들에게 물어보자, 이곳에 그런 박물관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다고 한다.

묘안을 생각한 끝에 길거리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카페 안에 10명이 넘는 주민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길래, ‘혹시 악티움 해전 박물관 위치를 아느냐’고 묻자 이들은 서로 상의했다.

그 가운데 노인 한 명이 그 박물관은 이 지역에 없고 암브라키아 만에 면한 곳에 있다고 한다. 그는 자세히 위치를 설명해 주면서 자기가 아는 한 그 박물관은 폐쇄됐고,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원한다면 헛걸음을 각오하고 한번 가보라고 한다.

이 분이 말한 곳은 원래 시청 직원이 알려준 바로 그 위치이다. 필자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3km를 걸어가 노인이 알려준 바로 그 건물에 도착했다. 아침에 앞을 걸어서 지나쳤던 건물이다.

▲악티움 해전 박물관 내부(해전지도)와 필자. 육군사관학교 모자와 대한민국 해군 체육복을 착용하고 있다. 육군병장 전역자인 필자는 명예해군(8호), 명예해병(87호), 명예공군(공군사랑회)이며, 현재 육군사관학교 역사포럼 고문직을 맡고 있다.

▲악티움 해전 박물관 내부(해전지도)와 필자. 육군사관학교 모자와 대한민국 해군 체육복을 착용하고 있다. 육군병장 전역자인 필자는 명예해군(8호), 명예해병(87호), 명예공군(공군사랑회)이며, 현재 육군사관학교 역사포럼 고문직을 맡고 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생태환경 박물관답게 프레베자 주변의 어류, 식물, 해양 보전에 관련된 각종 자료가 전시돼 있다. 남자 직원에게 악티움 해전 박물관을 찾아 왔다고 하자 바로 여기라고 한다.

원래 건물 전체가 악티움 해전 박물관이었는데, 방문객이 많지 않아 EU 지원을 받아 암브라키아 만을 중심으로 서부 그리스 지역의 생태계 환경보전을 위한 박물관과 연구소로 건물 용도를 변경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악티움 해전 관련 전시물은 바로 옆에 있는 대형 홀에 모아 놓았다며, 그곳으로 필자를 안내해 주었다. 전시실은 방문객이 없으므로 잠겨 있어, 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가 악티움 해전 관련 전시물을 설명해 주었다.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은 로마의 미래를 결정지은 중요한 전투였다. 이는 옥타비아누스(후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였으며, 이 전투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함으로써 로마 제국의 통일을 이끌었다.

이 해전의 승리로 옥타비아누스는 황제가 되어 로마는 공화정을 끝내고 제국이 됐다. 즉 악티움 해전은 로마를 제국으로 만든 전투이다. 또 이 해전은 해상 전술의 중요 사례로서 후일 전사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이 해전은 프레베자 남부와 악티움 반도 사이에 있는 암브라키아 만 입구 앞에서 벌어졌다.

권주혁 장로

세계 145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사도 베드로의 발자취를 찾아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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