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 어디를 가도, 십자가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강덕치의 아프리카 자전거 선교 순례 2만 리

크리스천투데이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한인교회 강덕치 집사님이 자전거로 에티오피아 전역을 누비며 쓴 선교 수기 ‘아프리카 자전거 선교 순례 2만 리’를 연재합니다. 이 글은 매주 수요일 게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본지에 ‘아프리카 자전거 선교 순례 2만 리’를 연재하는 강덕치 집사.

▲본지에 ‘아프리카 자전거 선교 순례 2만 리’를 연재하는 강덕치 집사.

여러 해 전, 그러니까 2003년 2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기치 아래 사담 후세인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라크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 한 무명의 순례자는 세계에서 가장 후미진 나라들 가운데 하나인 에티오피아로 선교와 평화의 심부름꾼을 자처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사실 에티오피아 입국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저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 수단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는데 저를 부시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오해한 수단 정부는 끝내 입국을 거절했습니다. 저는 수단 남부 지방에 가서 노예로 잡혀 있는 수많은 크리스천 형제자매들을 구출하는 일도 수행할 참이었는데, 잘못하여 오히려 노예로 잡히거나 생명의 위협을 당할까봐 하나님은 저의 수단행 발길을 미리 막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비두니아(오늘날의 터키 북부 지방)로 가고자 했지만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행선지를 유럽 땅 마케도니아로 돌린 것처럼, 그리하여 저도 선교 순례지를 돌연히 수단에서 에티오피아로 돌리게 된 것입니다.

에티오피아는 물론 수단, 지부티,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등 동북 아프리카 나라들은 한국교회가 선교사 파견을 가장 꺼리는 나라들이며, 실제로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거의 없는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선교 교육이나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순례자는 누가복음 9장 3절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동북 아프리카 나라들의 오지를 향해 선교 순례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험준한 산악길을 제외하고는 자전거로 광야와 초원길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순례자가 2003년 2월 21일부터 5월 15일까지 거의 3개월간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및 지부티를 자전거와 버스와 기차로 구석구석 2만 리(약 8천km) 길을 누비며 길 잃은 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베풀었던 일들은 오로지 주님의 놀라운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고 오묘하게 지으신 구스 땅의 산천을 자전거로 달리며, 역시 하나님께서 신비스럽고 어여쁘게 지으신 까만 살결의 사람들을 만나서 눈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사귀며 사랑을 주고 받았던 일들이 어찌나 그리도 신나고 재미 있었던지요! 언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십자가 하나와 긍휼(矜恤) 가득한 눈빛과 사랑 가득한 한 줌의 손길이면 충분했습니다.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동북 아프리카는 한국교회가 선교사 파견을 꺼리는 나라들입니다.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동북 아프리카는 한국교회가 선교사 파견을 꺼리는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평화의 순례자는 선교 여행 중에 전혀 예기치 않은 일들로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도착 첫날에는 대학생과 가이드를 자처하는 청년의 속임수에 빠져 할렘에 갔다가 이 나라에서 다섯 식구를 가진 두어 가정의 한 달 생활비에 버금가는 거액(1백 달러)의 구제비를 탈취당했습니다.

나흘째 되는 날에는 호텔 로비에서 어리고 요염하기 짝이 없는 한 ‘거리의 소녀’를 만나 성(性)의 유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도리어 이쪽에서 십자가의 자석으로 그 소녀를 생명의 길로 유혹할 수도 있었는데 담대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순례자는 좋은 기회를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자전거 선교 여행 둘째날 모조와 코카 구간의 내리막길을 달리던 중 자전거에서 넘어져 무릎과 팔꿈치 등을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타박상에 약(근육통 완화제)을 잘못 발라 상처가 돋고 완치되기까지 한 달이나 걸렸습니다. 잘못된 신앙이나 미신 또는 우상 숭배는 영적인 불치(不治)를 의미한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항구 도시 아싸브 남쪽의 에리트레아 지부티 국경 근처 광야에서는 길을 잃고 극한 상황에서 여러 시간 동안 광야의 모래 길을 헤맸습니다. 제 체중보다 더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말입니다. 반(半) 사막의 칠흑 같은 밤에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 침낭을 펴고 엎드려 하나님께 ‘포기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반 시간도 되지 않아 주님은 울부짖는 자의 영혼의 음성을 청종하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주님은 유목민 아파르 족 목동 형제를 보내주셔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지부티 에티오피아 국경 초소에서는 새벽 미명에 정거장 플랫폼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여자들을 촬영하다가 경찰관에게 필름을 빼앗겼습니다. 그 필림 안에는 지부티 시의 거리와 시장 풍경과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 겨운 모습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는데 아깝게도 모조리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에티오피아나 에리트레아 같은 가난한 제3세계 나라에서는 국경 역이나 초소, 교량 등에 대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그 시간에 이어 순례자는 여권에 기재된 내용에 대한 국경 이민국 파견 직원의 사무상 무지(無知)와 실수로 인하여 이틀간이나 황량한 국경 마을 데벨레에 묶여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었던, 참으로 억울한 경우였습니다.

이런 사고와 사건들을 통하여 순례자는 많은 것을 깨닫고 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무지(無智)한가! 처음에는 “주님께서 이 소자에게,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아골 골짜기까지 다니며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 작은 제자에게, 왜 그 흔한 지혜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순간순간마다 이 소자에게 주님은 이래선 안 되고 저렇게 해야 한다며 미리 예시(豫示)나 예감을 주셨더라면 제가 이런 일을 피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고 주님을 원망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이번 선교 여행 중에 깊이 깨달았습니다.

무자격 빈털터리 평신도 선교사가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 떠돌며 주님 말씀을 증거하러 다닌 순회 선교 사역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언어와 숙식에 많은 불편이 따랐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만났을 때 많은 아픔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과 아픔의 잿더미 속에서 복음의 불씨, 말씀의 불씨를 하나씩 꺼내어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전해주는 일은 아주 보람차고 즐거웠습니다. 나는 빈들과 초원의 모래 길과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늘 콧노래와 휘파람으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번 에티오피아 자전거 선교여행의 결산의 절반은 순례자 자신의 영적 훈련의 귀중한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저에게 여행 초기에 고질인 알레르기 기침과 설사병으로 며칠간 고생하는 가운데 식욕을 잃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건강을 회복한 후에도 하루에 두 끼만 먹고 한 끼를 굶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한 끼 굶은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굶어도 배가 고프거나 허기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혼 깊숙한 곳으로부터 기쁨의 활력이 샘솟았습니다. 성령께서 순례자에게 은사를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커다란 영적 체험이었습니다.

섭씨 40도에 가까운 불볕더위 아래 열기 솟는 아스팔트길을 자전거로 달리며 때로는 기진하여 더 달릴 수 없을 때, 때로는 꼬불꼬불 산길을 타고 올라가는 오르막길에서 더 달릴 수 없을 때, 저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향해 걸어가시는 주님의 그 피땀 흘리시는 얼굴과 눈물 흘리시는 모습을 그리며,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 주시네-

찬송을 부르면 저는 다시 팔과 다리와 발에 힘을 얻고 불가사의한 주행력(走行力)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그것을 증거했습니다. 수십 년간 내전으로 또는 가뭄과 기아로 깊은 상처와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평화의 순례자에게는 엄청난 황금 어장이었습니다. 다른 종교의 포교나 전도를 봉쇄하고 있는 이슬람교 지역과 지부티를 제외한 에티오피아 정교회와 정령 신앙의 지역에서는 예수님 이야기가 자유롭게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땅 크기가 우리나라(남한)보다 열 배나 큰 에티오피아에 한국인 선교사(목회자)는 단 한 가족(박종국, 장은혜 선교사 부부) 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장로교단에서 파송 받은 박 선교사님 내외분은 SIM(국제선교사협의회)에서 세운 신학교와 20여 개척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며 멀리 오지로 들어가 원주민들과 생활을 함께 하며 정기적인 순회 선교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 사랑과 평화 사랑의 가르침과 진리가 우리나라의 곳곳에 두루두루 퍼져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단, 터키, 쿠르디스탄,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소외되고 어두운 나라에서 신음하고 애곡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어서 그곳으로 달려가 길가에 쓰러져 있는 그들을 일으켜 세워 함께 노래 부르며 춤추고 싶습니다. 그들의 미움과 적대의 울음소리를 사랑과 화해의 울음소리로 바꾸어주고 싶습니다. 길을 걷는 우리들이,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그 일이 아니겠습니까.

“옆에서 이웃 사람이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혼자만 구원 받아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하이델베르크의 비스마르크 광장에서 만난 한 알콜 중독자의 외침이 아직도 귓가를 맴돌고 있습니다. 평화의 순례자가 노래를 부를 때 춤으로 노래의 흥을 돋우어 주십시오. 평화의 순례자가 춤출 때 북을 쳐서 춤의 율동을 돋우어 주십시오. 주님을 위한 어렵고 험한 자전거 순례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길이 끝날 때까지 나의 영원한 ‘길벗’ 되시는 주님이 나를 인도해 주시고 지켜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독자님들이여, 기름부음을 받지도 못한 이름 없는 한 평신도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고 평화의 순례자로서의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와 사랑의 물질로 성원해 주십시오. 국제적인 돈 많은 자선 단체에서 지원을 받은 작가나 연예인들이 지프차 타고 다니며 쓴 화려한 책만 팔아주지 마시고, 글 재미가 좀 덜하더라도 이름 없는 빈털터리 순례자가 바람 빠진 바퀴의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가슴과 발로 쓴 먼지 낀 책도 팔아주십시오. 이 책의 인세를 어두운 나라에서 신음하는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렵니다.

-예수, 아페크르헬로(예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

강덕치 집사는

193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959년 우리나라에 유스호스텔 운동을 처음으로 소개하였고, 1980년 독일로 이주하기까지 자연보호운동, 걷기 운동, 자전거 타기 운동을 활발히 펼쳤습니다. 지금은 독일 하이델베르크한인교회에서 섬기고 있으며, 여행작가, 청소년운동가, 성지순례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황금어장 찾아 2만리, 자전거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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