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자전거 선교 순례 2만 리 1] 아디스 아바바
오늘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에서 맞는 동북 아프리카 선교 순례여행의 첫날입니다. 전날 밤에 나이로비(Nairobi)에서 갈아탄 케냐 항공기는 자정 무렵 아디스 아바바 국제공항에 도착했으며, 순례자는 하람베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심야 3시경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눈을 뜨니까 아침 7시였습니다. 기껏 4시간밖에 자지 않았는데도 몸과 마음이 상쾌했습니다.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약간 싸늘한 이른 봄의 공기가 유난히 맑고 상쾌하다는 느낌이 가슴과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그것은 호텔 주변에 도열하고 있는 검푸른 야자수와 유칼리나무에서 발산하는 방향탓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해발 2,400미터의 산기슭에 자리잡은 아디스 아바바의 고산 공기탓이었을 것입니다.
아디스 아바바는 적도에 가장 근접해(북위 9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연평균 기온은 섭씨 16도의 온화한 날씨입니다. 제가 아디스 아바바에서 체류했던 2월 하순과 5월 초순은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서늘한 이상적인 봄날이었습니다.
아디스 아바바가 에티오피아의 수도로 도읍하게 된 것은 1886년의 일이었습니다. 이 도시의 탄생은 한 여인의 우연한 청원(請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의 수도는 오늘날 아디스 아바바의 북쪽 고원에 있는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엔토토(Entoto)였습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방어 요새의 지형을 갖춘 엔토토는 나무도 없고 토양도 좋지 않으며 기후가 불순한 왕도였습니다. 어느 날 메넬리크 왕의 왕비 타이투는 궁신들과 함께 엔토토 산맥의 남쪽 기슭으로 소풍을 갔다가 우연히 한 온천을 발견했습니다. 온천과 주변에 피어있는 각가지 화초에 매료된 타이투 왕비는 그 지역에 ‘아디스 아바바’(새로운 꽃)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남편 메넬리크 왕에게 그곳에 별장을 하나 지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곳에 아내를 위해 별장을 지어준 메넬리크 왕은 그 지역의 왕도로서의 위치와 환경을 인정하고 왕도를 엔토토에서 아디스 아바바로 옮기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침 일찍 순례자는 도시의 분위기도 살펴보고 주요한 명소의 위치도 알아볼 겸 호텔을 나섰습니다. 거리를 걸으며 저는 아디스 아바바가 그 이름이 의미하는 ‘새로운 꽃’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향기 잃은 ‘시든 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디스 아바바 시청 맞은편에 있는 피아자(광장) 거리와 성 게오르그(St. Georg) 정교회 성당 인근의 도로 주변에는 시든 꽃들로 가득했습니다. 피아자 거리는 노숙자들과 걸인들과 노점상들과 시내버스들이 한데 엉겨붙어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장면들을 목도하면서 길 연도에 앉거나 우두커니 서서 눈앞에 펼쳐진 장면들을 하나하나 눈여겨 보았습니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한창 일할 나이에 아침부터 거리에 나와 배회를 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모습들이 제 마음을 어둡게 했습니다. 그리고 연도에 핀 시든 꽃들 사이로 순례자의 마음을 참담케 하는 모습들이 가득 들어왔습니다. 아빠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를 가슴에 안은 채 구걸하고 있는 미혼모 소녀들도 있었습니다.
국민 1인당 연(年)소득이 200달러를 밑도는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에서는 도시나 시골 어디에서도 수많은 거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전걸식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는 구걸이 용인된 하나의 생활양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동냥하는 행위는 수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와 이슬람의 생활 관습에서는 구걸 행위를 폭넓게 용납하고 있으며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 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의 주님, 헐벗고 굶주린 아디스 아바바의 적신(赤身)들을 사랑합니다. 저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전에 저들의 육신을 먼저 구원해 주십시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