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자전거 선교 순례 2만 리 3]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
간밤에 순례자는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죄악의 할렘에서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주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 사용하라며 정성들여 헌납한 그 귀한 성금 일부를 탈취당한 것은 전적으로 제 책임과 제 잘못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프리카 선교 순례여행의 목적을 망각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취미와 관심사를 충족시키기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했다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아침 일찍부터 순례자는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찾으러 거리로 나갔습니다. 아디스 아바바의 본역에서 시작하여 처칠 대로를 따라 시청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대로 왼편에 있는 어느 가톨릭 성당의 뜰에서 중년 나이(53세)의 테스파예 룬다사 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직업이 없이 소일하고 있는 그는 그날도 성당의 수위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놀러와 있었습니다. 일찍이 고등교육을 받았고 멘지스투 공산 군사정권 때 육군 장교로 복무했던, 과거가 제법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정교회 크리스천인 룬다사 씨와 저는 성경과 신앙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목적을 이야기해 주니까. 그는 자기 가정 사정을 들려주면서 저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에게는 아이가 넷이나 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도 못 보내고 있습니다. 먹을 것 이 없어 아이들이 굶고 있습니다. 저에게 1백 비르만 주실 수 있습니까?”
1백 비르는 우리나라 돈으로 1만원에 불과한 돈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네 식구가 하루 먹고 살 수 있는 그 돈으로 에티오피아에서는 온 식구가 한 달을 먹고 살 수 있는 돈입니다. 저는 그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날, 룬다사 씨가 하람베 호텔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약속대로 그에게 생계비와 어린 자녀들의 옷값으로 210비르를 쥐어 주었고, 그는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의 집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보다는 가축우리나 다름없는 양철 지붕의 오두막집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양철 지붕에서 비가 샌다고 했습니다. 침대에는 낡은 담요가 시트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부엌 세간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안방과 침실과 부엌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룬다사 씨 가족은 주로 극빈자들을 위한 마을 공동 취사장과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룬다사 씨는 낡은 갈대 상자를 뒤적거리더니 앨범과 아람어 성경책을 꺼내어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순례자 선생님, 이 성경책은 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가보입니다.”
그가 건네주는 성경책을 받아 한두 장 넘기는 순례자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좌절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드디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고백할 수 있게 되 었습니다. 주님은 제 기도를 응답하시고, 선생님을 저에게 보내주셨으니까요.“
그리고 그는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집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시골에 있는 아내의 언니 집에 가 있습니다. 한 달 전에 있었던 ‘아프리카 통일기구(OAU)' 회의 기간에 에티오피아 정부 당국에서는 아디스 아바바의 부끄러운 모습을 외국 대표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수도 중심부에 사는 수천 명의 노숙자들과 걸인들을 남쪽 지방으로 강제 퇴거를 시켰다는 것입니다, 거리에서 구걸 행각을 하고 있었던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그래서 지금은 시골에 가 있는데 룬다사 씨는 선생님 덕분에 차비가 생겼으니 내일이라도 당장 그의 처자를 다시 데려올 참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한글 성경을 펴고 룬다사 씨는 암하라어 성경을 폈습니다. 우리는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 1-12절)의 말씀을 교독하며 주님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룬다사 씨의 움막집에는 하늘의 축복이 비둘기처럼 내리고 있었습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