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라시에 황제와 군사 독재자 멘기스투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6]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좌)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독재자 멘기스투(우).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좌)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독재자 멘기스투(우).

1973년 아디스 아바바에 강력하고도 극단적인 군사 집단이 등장했습니다. 에티오피아 북부 지방에서는 가뭄과 기근이 발생하여 수천 명의 농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 왕궁에서는 호화판 연회를 진설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BBC TV는 이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고, ‘데르그’(Derg)로 알려진 혁명위원회는 황제의 전권과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언론 매체를 이용하여 이 사실을 전국에 보도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아디스 아바바의 거리는 학교 교사들과 학생들과 택시 운전사들의 반정부 시위의 물결로 가득 찼습니다. 일부 군인들도 상관의 명령을 어기고 부대를 뛰쳐나와 시민들의 봉기에 참여했습니다.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국무총리와 전 각료가 퇴진하고 새 내각이 구성되어 부랴부랴 개헌을 추진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1974년 9월 12일에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폐위되었습니다. 이성을 잃은 혁명위원회 산하 장교들은 황제를 포승줄로 꼭꼭 묶어 독일제 폭스바겐(자동차)의 트렁크에 싣고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은 전 현직 장관들과 고관들과 귀족들과 황제의 측근들을 모조리 체포했습니다. 황제의 절대권과 1세기에 걸친 왕조의 통치권이 영원히 종막을 고했습니다. 황제로부터 국가 통치권을 박탈한 ‘데르그’는 의회를 해산하고 ‘임시군사행정회의’(PMAC)를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이념 문제로 양분된 ‘데르그’는 공산주의자들이 헤게모니를 잡게 되고, 이어서 그 극렬한 충돌은 57명의 고관들과 고위급 장교들의 처형-이 사건을 ‘60인 학살 사건’이라 부른다-으로 그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이 혼돈의 암흑을 뚫고 등장한 인물은 마르크스 레닌주의 신봉자이며 셀라시에 황제 정부의 반대자였던 멘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대령이었습니다. 그러면 투옥된 황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1975년 8월에 멘기스투가 자기 손으로 직접 황제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1992년에 마침내 셀라시에 황제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가 널에 입관 되지 않고 아무렇게나 매장된 곳은 멘기스투가 이전 대통령 관저에서 사용했던 집무실의 화장실이었다고 합니다. 그 범행을 어떻게 증거할 수 있을까요? 셀라시에 황제가 대대로 물려받아 끼었던 솔로몬의 황금 반지가 멘기스투의 중지에 끼워져 있었다니까요.

1974년 12월 20일에 멘기스투가 이끄는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되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으뜸이다’(Ityopya Tikdem)라는 기치 아래 도시와 지방 토지는 물론 은행, 기업, 공장 등이 국유화 되었습니다. 마을과 동 단위로 3만 개 이상의 농민회가 조직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으로부터는 군사, 경제 원조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났지만 멘기스투의 사회주의 실험은 점점 실패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1977년에는 모든 정적(政敵)과 반정부 시민들을 억누르기 위해 공산 테러 집단을 조직, 반정부 시민들에 대한 살해 작전을 폈습니다.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반정부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공산 테러 집단에 의해 10만 명에 가까운 무고한 시민들이 죽임을 당했으며, 수만 명이 외국으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1984년과 1985년 사이에 또 한 차례의 가뭄과 기근이 에티오피아 전역을 강타하였고, 수십만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티그라이 족, 아파르 족, 오로모 족을 포함한 십여 종족이 이곳저곳에서 무장해방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마침내 여러 종족의 반정부 무장 단체들이 연합하여 ‘에티오피아국민혁명민주전선’(EPRDF)을 결성하기에 이르렀고, 1989년에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향해 역사적인 군사 작전을 감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서냉전과 더불어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 동맹국들이 모두 군사 독재자멘기스투의 곁을 떠나가고, 그로 인하여 그는 정부의 재정적 적자와 군사적 취약점에 압박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국민혁명민주전선’과 ‘에리트리아국민해방전선‘(EPLF) 등 두 군사 집단의 결정적인 도전에 직면합니다. 이어서 멘기스투의 시대가 종막을 고하고 그는 1991년 5월 21일에 외국으로 도망칩니다. 일주일 후에 EPRDF는 아디스 아바바에 진주하게 되고 ‘데르그’는 완전히 와해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짐바브웨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멘기스투는 아직도 손가락에 셀라시에 황제의 황금 반지를 끼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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