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8]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
박종국 선교사의 배후에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빛 없이 이름 없이 섬기고 베푸는 여종이 있습니다. 박 선교사의 아내인 장은혜 선교사(46)가 바로 그분입니다. 이화여대에서 영어 교육학을 전공한 장 선교사는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분부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에티오피아의 오지로 달려갔습니다. 현재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에티오피아 복음주의 신학대학(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에서 암하라어로 기독교 교육과 성경을 가르치고 있는 장 선교사는 에티오피아의 불우하고 소외된 여성과 길거리 소녀들의 재활 교육에도 헌신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장 선교사가 선교 사역 초기에 신학교에서 초보의 암하라어로 가르치며 열매 맺었던 믿음과 소망에 대하여 쓴 간증의 글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오랫동안 선교지를 향한 마음을 품고 기도하다가 에티오피아에 도착했을 때의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도착 후 처음 9개월 동안은 암하라어를 배우는 데 최선을 다했다. 언어 훈련 과정을 모두 끝냈지만 내 실력은 아직도 유아처럼 더듬고,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으니, 말이 언제 늘어서 사역을 할 수 있을까? 답답함과 조급함 때문에 눈물을 흘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날 언어 보조 교사인 요세프가 상심해 있는 나에게 다가와 에티오피아 속담 하나를 넌지시 가르쳐 주었다.
“안드 깐 버 으그르 헤달!”(언젠가는 계란이 발로 걸어간다!)
달걀이 발로 걸어간다고? 지금은 달걀이 발이 없으니까 걷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부화하여 병아리가 되면 걷게 된다는 에티오피아의 문화 속에 담긴 격려의 속담이다.
처음 우리가 선교 본부에서 배정받은 사역은 짐마에 새로 설립된 신학교에서의 교수 사역이었다. 아디스 아바바에서 남서쪽으로 차로 8시간이나 걸리는 짐마시(市)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토담집에 짐을 풀고 첫 사역이 시작되었다. 기숙사는 여러 부족에서 온 학생들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학생 수는 26명이었다. 그들의 일상어는 자기 부족의 말. 그리고 공용 어인 암하라어로 말해야 하지만, 시골에서 온 학생들이라 대부분에게 암하라어는 제2외국어나 다름없었다.
강의 첫날, 인사말은 무사통과했다. 성령이란 무엇인가? 열심히 준비한 강의안을 보고 읽는 것과 외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학생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식은땀이 흐르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알았던 말들조차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당황하는 내 앞으로 키 큰 한 남학생이 싱긋 웃으며 걸어 나왔다.
“내 이름은 터스화예입니다. 강의안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터스화예’는 암하라어로 ‘소망’이란 뜻이다. 순간 나는 학생들이 내 강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님, 제가 어떻게 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집에 돌아온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배우고자 각오를 하고 자기 부족을 떠나온 학생들 앞에서 선교사인 내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으니 앞으로 어떻게 가르치며 또 이곳에서 어떻게 사역을 계속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어설픈 암하릭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텐데도 학생들은 불평 한 마디 없이 내 강의를 들어주었다. 학생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의와 자신감, 그리고 언젠가 나의 암하릭어가 병아리로 부화하여 걸어가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를 용납해 주는 그 사랑에 힘입어 내 강의는 계속 진행되었고, 2년 후 이들은 1회로 신학교를 졸업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신학생들은 자기들의 부족에 들어가 교회를 개척하고 성도들을 돌보며 우리 선교사들보다 더 많은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슬람에서 개종하여 우리들 밑에서 성경과 신학을 공부한 후 전도사가 된 후세인, 아만, 이맘……. 그리고 미엔 부족의 첫 신학생이 전도사가 된 합타무와 불구……. 이 형제들이 가끔 우리들을 찾아온다. 못 먹고 힘들어 까칠한 얼굴. 때가 꾀죄죄하게 낀 셔츠에 구멍 난 신 발을 신은 그들의 모습은 냄새나는 여지없는 거지꼴이지만, 바울이 입맞추며 내 아들이 라 부른 디모데처럼(디모데전서 1장 2절) 그들 역시 이제 내게는 가슴에 꼭 품고 입을 맞추며 등을 두드려줄 수 있는 나의 믿음의 참 아들들이 되었다.
“안드 깐 은꼴랄 버 으그르 이헤달!”
할렐루야! 언젠가는 달걀이 부화하여 병아리가 되면 발로 걸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은혜의 힘으로 말입니다. 장은혜 선교사는 오늘도 이런 믿음과 소망을 가슴에 품고 검은 대륙의 오지를 뛰고 있습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