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9]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
열흘간의 자전거 여행을 끝내고 아디스 아바바로 돌아왔을 때 저를 애타고 기다렸던 사람은 에티오피아 여행 초기에 저로부터 물질적인 도움을 받았고 값싼 호텔을 소개해 주었던 룬다사 씨와 그의 가족이었습니다. 한 달 전에 남부 지방으로 강제 퇴거를 당했던 그의 아내와 네 자녀가 그동안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줄 몇 가지 장난감 선물을 사 가지고 그들의 양철 움막집을 들어섰을 때 그의 젊은 아내와 올망졸망한 네 어린아이들이 맑고 밝은 얼굴로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제가 의자에 앉자마자 룬다사 씨의 큰 딸(8살) 살로메와 큰 아들 타데쎄(6살)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저의 먼지 묻은 신발을 손으로 닦으며 거기에 입맞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암하라 말로, “얘들아, 잘 있었니?(르조취, 데나 나취?)” 인사를 하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암하라 족과 티그라이 족 사회에서는 15살 아래의 자녀가 아버지나 귀한 손님의 발에, 그리고 15살 이상이 되면 아버지의 무릎에 입맞춤으로 인사하는 전통적인 인사법이 아직도 서민들 사이에 널리 행하여지고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어린아이들이 낯선 손님에게 그렇게 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터였습니다. 아이들은 제 앞을 떠날 생각도 하지 않고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님의 답례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의 아빠가 나에게 눈짓으로 힌트를 주었고 나는 양팔로 살로메와 타데쎄의 어깨를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순례자 할아버지, 정말 고마워요!”
아이들은 기뻐하며 무슨 노랜가를 부르며 다른 두 어린 동생들을 얼싸안고 춤을 추었습니다.
얼마 후에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룬다사 씨 가족과 저는 조그마한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열흘 전에 보이지 않던 두서너 개의 의자는 이웃집에서 빌려온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다가온 룬다사 씨는 왼손에 조그마한 대야를 받쳐 들고 오른손에 든 물 항아리를 기울여 제 손을 씻게 했습니다. 아이들도 모두 손을 씻었습니다. 대야와 물 항아리도 이웃집에서 빌려왔다고 합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손 씻는 일에 아이들은 신기해서 입을 가리고 키득거렸습니다. 아이들의 엄마 아빠는 아이들을 나무랐지만 아이들 세계는 천국이었습니다.
이어서 룬다사 씨 부인이 정성껏 만든 에티오피아의 주식인 인제라가 식탁 위에 올려졌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전형적인 전통 음식인 인제라(Injera)는 다른 여러 아프리카 나라의 요리와는 달리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고유 곡물인 테프(Teff) 가루나, 밀가루, 보리 가루, 수수 가루, 또는 옥수수 가루를 뜨거운 물에 반죽하여 효소를 넣고 하루 이틀간 발효해서 팬케이크처럼 납작하게 구워 만든 빵입니다. 인제라는 크고, 둥글고, 납작하고, 가볍고, 맛이 싸한 해면질의 빵입니다. 사람들은 인제라를 손으로 찢어서 식성과 취향에 따라 각가지 양념을 곁들려 고기나 채소를 감싸서 먹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전통적인 신앙 가정에서는 식사를 하기 전에 의례적으로 손을 씻은 후, 식사 기도를 하거나 축복 찬송을 부릅니다. 저는 룬다사 씨 가정을 위해 전영택 목사가 작사하고 구두회 선생이 작곡한 찬송가(305장)를 불렀습니다.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있고 기쁨과 설음도 같이 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후렴)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 거운 하루하루-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 의 낙원이라. (후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