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자전서 순례 2만 리 10] 에티오피아, 버스여행
2월 하순 어느 날 새벽 5시 자명종 시계가 채 울리기도 전에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는 소리에 단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날도 아디스 아바바 시청 주변의 집 없이 떠도는 거리의 개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다하브 호텔 인근의 성 게오르그 성당의 사제보다도 더 일찍 일어나, 수컷들은 암놈들을 부르느라 시끄럽게 짖고 있었습니다. 녀석들이 서로 엉겨 붙어 무슨 짓을 하는지 새벽 거리는 다시 고요한 침묵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새벽은 성당 첨탑의 확성기에서 울려 퍼지는 사제의 기도와 성경 낭송 소리로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순례자는 오늘의 목적지인 만나가사(Managasa) 산을 도보로 순례하기 위해 암보 행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그것은 30여 년 전 황금의 청춘기에 반더포겔(철새:Wander Vogel) 운동을 한답시고 지리산과 설악산 등을 떠돌다가 잃어버린 내 자신을 찾기 위한 수행의 행보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높고 깊은 산 속의 동굴에서 사는 현대의 엘리야들을 만나 그들의 영혼을 통하여 값없이 살 수 있는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을 얻기 위한 순례의 행보였습니다.
거북이 속도의 주행으로 이름난 에티오피아의 시외버스가 한 시간 쯤 달렸을까, 차창 밖 저편에 부녀자들이 주일날 교회에 갈 때 머리에 쓰는 기다란 수건처럼 생긴 하얀 구름 사이로 만나가사 산의 원뿔꼴 봉우리가 그 신비롭고도 장려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전설과 같은 상상 속의 산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내 육신의 눈에 구체적인 산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한 이방인은 그 성스러운 산 자태에 매료되어 그 감격과 그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채 안달하고 있는데, 저 보화와 같은 성산(聖山)을 소유한 에티오피아인 승객들은 무심하기도 하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무표정한 모습들이며 아침부터 고개를 떨어뜨린 채 잠에 취해 있으니 말입니다.
만나가사 산은 아디스 아바바에서 거리가 약 35킬로미터. 순례자는 도중에 만나가사 산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게네트 마을 인근의 도로에서 하차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나가사 산까지는 걸어서 꼭 4Km. 거리는 가깝지만 경사가 심한 산길이어서 아마 족히 2시간쯤 걸릴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산이 많고 산 경관이 빼어나 ‘아프리카의 스위스’라 불리는 에티오피아는 산지 면적이 국토(1,133,882평방Km)의 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아디스 아바바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아비시니아 고원지대에는 해발 3천 미터 이상 되는 산들이 수십 개나 됩니다. 그들 가운데 팔레스타인의 갈멜 산이나 시나이 반도의 시내 산(모세 산)처럼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는 만나가사 산이 성별된 거룩한 산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나가사 산으로 가는 숲길과 오솔길은 키 높이가 수십 척에 달하는 유칼리 나무와 늘푸른 야생 올리브 나무와 원뿔꼴 잎사귀의 침엽수 나무들과 관목들이 우거져 있었는데 나무 가지들은 오솔길에 아치형 지붕을 만들어주어 걸음걸이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우기에 소낙비가 한바탕 쏟아진다 할지라도 한 시간 정도는 비를 피할 수 있을 만큼 나뭇잎들이 겹겹이 그리고 칙칙하게 하늘을 덮고 있었습니다. 숲에서는 각종 산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와 귀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의 노래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미하는 성곡(聖曲)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에는 수십 종류, 아니 수백 종류의 새들이 산다는데 아마 그들 가운데는 높은 산에서만 산다는 찌르레기와 피리새들도 있겠지. 순례자는 그들을 직접 보거나 만나지 못해도 숲속에서 그들의 맑고 그윽한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새들의 연주는 이지적으로, 또는 수학적으로 작곡한 인간의 그 복잡하고 요란한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경지와 자연의 경지를 뛰어넘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초자연의 노래였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어디 이름난 교향악단을 통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그런 멜로디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 대자연 속에 들어갈 때마다 순례자의 입술에서는 찬양의 노래가 술술 흘러나옵니다.
-숲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