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자전서 순례 2만 리 11] 에티오피아, 버스여행 2
순례자는 마침내 만나가사 산의 평평한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호젓한 곳이었습니다. 그 적막한 산에는 세 사람의 은자가 살고 있었는데 나는 두 은자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세 은자 가운데 한 사람은 동굴 안에서 피정(避靜)을 하고 있었으므로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산 정상의 한 가운데에는 벽과 지붕을 함석으로 입힌 조그마한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그 예배당은 은자들을 위해 특별히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은자들이 은거하고 있는 동굴은 예배당에서 50여 미터 쯤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동굴 앞뜰의 야생 올리브 나무 그늘 아래 평평한 돌바닥에 앉아서 커다란 암하릭어 성경책을 펴고 묵상에 잠겨있던 은자 가브라 마스칼씨는 나를 못 보았는지, 또는 보았으면서도 못본 체하는지 계속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내 나이 또래의 그는 일흔 살이 훨씬 넘어보였습니다.
1977년 소말리아와 대항하여 싸웠던 오가덴(Ogaden) 전쟁 때 장교로 복무하다 전상을 입은 후 퇴역한 마스칼 은자는 40대 중반의 장년기에 모든 세속의 삶을 청산하고 에티오피아 정교회에 입교하여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3년 후에 그는 아디스 아바바를 떠나 만나가사 산으로 들어왔고 이곳에서 그는 올해 은자가 된지 열다섯 해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브라 마스칼 은자는 반벌거숭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오래된 면제품 담요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빗질하지 않은 듯 헝클어져 있었습니다. 그 누추하기 짝이 없는 행색은 인도의 힌두교 수행자보다 더 나을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가 마침내 그의 전형적인 함족인의 얼굴을 치켜올리며 나를 인자한 표정으로 말없이 쳐다보았고, 나는 그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데나 네(안녕하십니까?)”
“데나. 데나 네(그래요. 당신도 안녕하시지요?)”
은자는 나의 암하라어 인사말에 호감이 갔는지 자기 옆에 있는 납작한 돌을 가리키면서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지 않았는지 묻지를 않았습니다. 아니 그는 은자 또는 도사이니까 내 모든 것을 거울 속의 영상처럼 속속히 투시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랜 침묵이 흘렀고 마침내 그는 이런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종교가 일상생활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요. 우리 인간이 늘 하나님을 신실하게 예배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우리 인간사에 증오와 싸움이 없을텐데 말이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가에는 촉촉한 이슬 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은자들에게는 따로 정해진 피정 기간이 없습니다. 잠자는 시간 외에 하루가 온통 피정 시간입니다. 그들의 유일한 의무는 기도와 묵상입니다. 은자들은 하루에 한 끼만 먹습니다. 삶은 콩이나, 병아리콩 또는 잠두콩을 두 줌 이상 먹지 않습니다. 여러 해 습관이 되어 배고픈 줄 모릅니다. 만나가사의 은자들은 산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법이 없습니다. 동굴이나 동굴 앞 야생 올리브 나무가 있는 뜰이 그들의 하루 생활권입니다. 그들은 수도원의 수도사들과는 달리 밭에 아무런 채소도 가꾸지 않습니다. 나는 마스칼 은자에게 먹을 것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에티오피아의 한 이름 없는 엘리야라는 사실을 채 깨닫지 못한 나의 어리석은 물음에 마스칼 은자는 산 아래 숲을 가리키며 “까마귀가 가져다 주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에게 명하여서, 네게 먹을 것을 날아다 주게 하겠다. 엘리 야는 주의 말씀대로 가서 그대로 하였다.(중략)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물은 그 곳 시냇물을 마셨다(열왕기상 17장 4-6절)-
달빛처럼 환한 마스칼 은자의 얼굴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이 가득 피어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