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캐밀롯, 곤다르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17] 에티오피아, 버스여행 8

에티오피아의 역사 유적지를 찾아 열흘간의 버스 여행을 시작한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5시에 기상하여 묵상을 하고 말씀을 읽었습니다. 순례자에게는 주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이 새벽 시간이 가장 귀하고 소중합니다. 새벽 날개를 타고 오셔서 깊은 잠에 취해있는 내 몸과 영혼을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침마다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순례자는 6시가 조금 지나 티스 아바이 호텔을 나와 버스 터미널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보안등이 없는 어두운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데 이곳저곳에서 서너 명의 젊은 남자들이 나타나 내 코 앞에 손바닥을 내밀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1비르만 주십시오!” 하고 적선을 구했습니다. 그들의 예기치 않은 출현에 잠시 섬뜩 놀라기는 했지만 겁이 나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에티오피아 걸인들은 돈을 주지 않는다고 행인을 해치거나 강탈하는 법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사전에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들은 배고프고 목말라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새벽에 만나는 첫 행인으로부터 더도 말고 빵 한 쪽과 따끈한 우유 한 잔 값 1비르(약 120원)만 받게 해 달라고 밤새도록 예수님 이름 부르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아마 내가 그들이 이른 아침에 만난 첫 행인일지도 모릅니다.

“주님, 저 영혼들의 애걸복걸하는 손길을 뿌리치지 말게 하소서.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들을 구원하소서”. 순례자는 주머니에서 1비르 짜리 지폐를 서너 장 꺼내어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침 7시 30분쯤 바히르 다르를 출발한 곤다르(Gondar) 행 버스는 183km를 달려 오후 1시경에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바히르 다르에서 곤다르까지의 자동차 길은 타나 호의 연안 길이요 역사 유적의 길이어서 차창을 통해 낭만적인 풍치와 고전미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결과는 그와 정반대였습니다. 고물 버스가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 일으키는 먼지가 열린 차창을 통해 들어와 버스 안의 승객들은 모두 하얀 흙먼지를 뒤집어써야만 했습니다.

곤다르는 ‘아프리카의 캐밀롯(Camelot)’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캐밀롯이란 영국 전설에 나오는 아더 왕의 궁전이 있었던 곳을 말합니다. 곤다르는 파실리다스 황제(1632-1667) 치세 기간에 수도가 되었으며 황제는 이 도시에 성과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곤다르에 도착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기 무섭게 순례자는 관광 안내와 통역을 자청한 야레드(21살)와 함께 시내에 있는 메드하네 알렘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바히르 다르 공과대학에서 컴퓨터 테크닉을 공부하고 있는 야레드는 주말에 부모님이 사는 곤다르에 왔다가 버스 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나 사귀게 된 것입니다.

▲파실리다스 황제 치세 때 조성된 곤다르에는 빼어난 건축술로 세워진 성과 아름다운 교회가 많다.

▲파실리다스 황제 치세 때 조성된 곤다르에는 빼어난 건축술로 세워진 성과 아름다운 교회가 많다.

파실리다스 황제 치세 때 세워진 메드하네 알렘 교회는 곤다르의 여러 교회들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교회 건물로 유명합니다. 원형 건축물로서 이 예배당의 교회 벽은 성서 사건을 주제로 한 수많은 성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메드하네 알렘 교회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오후 2시 쯤이었는데 2백 명이 훨씬 넘어 보이는 교인들이 교회당 뜰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일 예배가 아니라 사순절 기간에 신자들의 신앙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교회 측에서 아디스 아바바 국립 대학교의 어느 신학 교수를 초청하여 열린 특별 집회였습니다.

▲곤다르의 메드하네 알렘 교회당 밖 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하얀 무명옷의 여신도들.

▲곤다르의 메드하네 알렘 교회당 밖 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하얀 무명옷의 여신도들.

40대의 젊은 신학 박사는 회중들에게 신선한 외침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강의식 설교를 통해서 형식주의와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에티오피아 정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아래 설교는 나와 예배에 함께 참석한 야레드가 요약 정리해서 통역해준 것입니다.

“교회는 쇄신해야 합니다. 교회는 중생해야 합니다. 교회는 독선주의와 집단이기주의와 물량주의의 굳은 껍질에서 벗어 나와야 합니다. 아디스 아바바와 오로모 지역에서 오순절 복음교회가 요원의 불길처럼 부흥하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서 방관하거나, 시기하거나, 경계하는 눈길로 바라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주변에서 서민들은 수년간 계속되는 가뭄과 기근으로 굶주리고 있는데 복음주의의 개신교와 정통 싸움, 진리 싸움, 교리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아니 하십니다.”

젊은 교수는 교회의 제사장직 역할에만 안주하지 말고 선지자직 역할과 사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와 같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는 한 에티오피아의 정교회는 결코 쇠퇴하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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