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의 하나님 나라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21] 에티오피아, 버스여행

▲에티오피아 화가가 그린 예수님 초상화에는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동행하십니다”라는 암하릭 글이 쓰여 있다.

▲에티오피아 화가가 그린 예수님 초상화에는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동행하십니다”라는 암하릭 글이 쓰여 있다.

아디스 아바바를 떠나 버스 여행을 시작한지 엿새째 되는 날, 저는 에티오피아의 깊은 역사와 초대교회의 뿌리를 찾기 위해 랄리벨라에서 악숨(Axum)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는 해발 2천 미터에서 해발 3천 미터의 가파른 산길을 붕붕 방귀를 뀌면서 잘도 달렸습니다. 조수는 나를 귀인으로 알고 운전석 바로 뒷자리를 잡아주었습니다.

버스 앞 유리창 위에는 커다란 예수님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암하라어와 영어로 ‘예수님은 언제 어디나 우리와 동행 하십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버스 회사 사장이나 아니면 이 버스 운전사가 아마 독실한 크리스천이겠지.’

고개를 돌려 승객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들이 저에게 쏟아졌습니다. 저를 바라다볼 뿐 어느 누구 하나 인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덜 구워진 감자처럼 누르퉁퉁한 아시아인의 얼굴 생김새가 참 요상하게 생겼구나 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그 시선들의 강한 인력에 빨려드는 것만 같은 기분과 수줍음에 겨워 나는 얼굴을 붉히고 곧장 그들의 시선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습니다.

“순례자여, 그대는 오늘도 떠돌며 머물며 무엇을 하려느뇨?”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제 영혼의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천성이 우유부단하고 소심하며 용기없는 저를 일깨워주시는 주님의 신실하신 물음이었습니다. 이 버스는 어장이고 버스에 탄 사람들은 모두가 물고기들이 아닌가. 저는 더 이상 고개를 숙이고 묵상에 잠길 수만은 없었습니다. 몇 주일간 속성으로 암기해둔 암하라어 인사말과 선교 활동에 필요한 몇 가지 용어만으로도 사람을 낚는 어구(漁具)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리고 승객들에게 우리나라 식으로 허리를 굽히며 목청을 돋우어 암하라어로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데나 나추(안녕하세요)!”

제 인사말에 아무런 반응과 답례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갸우뚱거리며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저의 두번째 인사말이 제 입에서 새어나왔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 목소리로 답례를 했습니다.

“데나(잘 있어요).”
“데나 네(안녕하세요)!”

외계에서 온 사람으로만 알았다는 듯 예기치 않은 자기네 나랏말 인사에 승객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반가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예수스 크리스투스(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들을 사랑(프크르)하십니다.”

제 입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두 마디 말의 암하라어가 버스 안의 마음이 가난하고 사랑에 목말라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심령을 움직였나 봅니다. 저의 암하라어의 틀린 문법과 틀린 발음에도 불구하고 버스 안 승객들의 가슴에는 이미 말씀의 꽃이 피어있는 듯 버스 안은 바로 하늘 나라였습니다. 평강과 희락이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이를 바라보시는 버스 앞 유리창에 걸린 초상화의 예수님도 인자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이 일의 경험이 큰 용기가 되어 그로부터 일주일 후 아디스 아바바에서 아르바 민치까지 550km의 대지구대(Great Rift Valley)에 속한 호수 지역을 달린 자전거 여행 중에도, 아디스 아바바에서 지부티까지 닷새나 걸린 기차 여행 중에도, 지부티에서 홍해 나라 에리트리아를 달린 버스와 자전거 여행 중에도, 제가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가난하고 굶주리고 병들어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눠주었던 일들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요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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