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24] 에티오피아, 자전거 여행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留)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도시)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누가복음 9:1-5)-
3월 13일 목요일입니다. 앞으로 열흘간의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위해 행장을 꾸리느라 순례자는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옆방의 다마케사 씨가 조그마한 에티오피아 국기를 태극기와 나란히 자전거에 부착하라며 나에게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환송을 받으며 호텔 맞은편에 있는 시청 정문 앞에서 대장정 길에 올랐습니다. 아디스 아바바 시내를 벗어나는 동안 오고가는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매연가스에 몹시 시달렸습니다. 집을 떠나기 전부터 꽃가루 알레르기 기침으로 고생하고 있던 나로서는 검은 연기를 호흡해야 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기쁨과 감격이 뒤따랐습니다. 시민들과 어린이들이 길가에 나와 태극기와 에티오피아 국기를 펄럭이며 대로를 달리는 한 무명의 아시아인을 향해 박수와 환호로 인사를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순례자는 더 편하고 더 안락한 여행을 하기 위해 자전거 앞뒤의 패니어에 25kg 이상이 되는 휴대 물품을 가득 싣고 달리는 자신을 바라보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나는 예수님의 분부를 철저하게 어기는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 그들을 전도지로 떠나보내실 때 맨몸으로 가라고 말씀하셨고, 주님의 제자들은 그야말로 돈 한 푼 없이 전국을 떠돌며 곳곳에 천국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예수님의 ‘작은 제자’를 자처한 나는 집을 떠날 때부터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주님의 분부를 어기고 그와 정반대로 여행에 필요한 여권, 지도, 여행 안내서, 침낭, 배낭, 1인용 텐트, 카메라, 카세트, 세면도구, 수건 등 서른 가지가 넘는 휴대품을 준비한 것입니다. 나는 도보여행자가 아니라 자전거 여행자이므로 지팡이보다 훨씬 편리한 자전거를 가지고 왔습니다. 돈 주머니는 한 개가 아니라 여행자 수표, 달라, 유로 화(貨) 등을 보관하는 주머니와 여행국 돈을 넣어두는 주머니를 합하여 두 개를 가지고 왔습니다. 혹시 도난이나 강탈을 당할까봐 허리춤에 차는 비밀 돈 주머니도 두 개나 준비했습니다. 양식은 비상용으로 말린 쇠고기와 돼지고기, 비스킷 등을 교회 집사님들이 싸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행 중에는 싸고 맛있는 망고-한 개에 5백 원 안팎-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먹었습니다. 옷은 두 벌 옷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나 봅니다. 나는 큰 배낭에 팬티와 러닝셔츠 각각 5 벌, 양말 5벌, 티셔츠 3벌, 긴 바지 한 벌, 반바지 3벌, 스웨터와 트레킹 점퍼와 셔츠 각각 한 벌, 모자 2개, 그리고 샌들 한 켤레를 혹시나 빠뜨릴라 단단히 묶어가지고 왔으니까 말입니다.
순례자는 빈틈없는 행장 준비를 하느라 주님의 분부를 그렇게도 철저하게 어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잠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아니 그건 높은 하늘 보좌에 계시는 만왕의 왕께 드리는 경외의 기도가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나와 동행하시며 나의 힘든 자전거 순례 여행을 격려하시고 위로해주시는 나의 ’길벗‘ 예수님의 귓전에 속삭인 푸념 투의 기도였습니다.
“주님, 주님의 분부를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나의 불순종을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원래 기름 부음 받은 성직자도 아니고 훈련 받은 선교사도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주님의 작은 제자된 것을 흉내낼 뿐이지요. 그런데 주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언질을 드 려 조금 죄송한데요. 단기 선교를 한답시고 해외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성도님들은 저보 다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여행 물품을 가지고 다니는데 주님,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눈 감아주실 건가요? 아니면 책망하실 건가요?“
대답 대신에 못 자국 난 손바닥을 나에게 보여주시는 예수님은 한숨을 쉬고 계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십자가를 메고 주님의 뒤를 따른다고 공언하면서도 뒷전에서는 암암리에 어깨에 힘을 주고 권위, 위선(외식), 독선, 높은 자리, 교만, 허례허식, 가식, 이기주의, 자기 자랑 등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예수님의 손바닥에 못을 박는 일로 인하여 주님은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쓰라리실까!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