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길 달리다 자전거에서 넘어지다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25] 에티오피아, 자전거 여행

자전거 여행 둘째 날에 순례자는 말로만 들었던 ‘대지구대’(大地溝帶:Great Rift Valley)의 호수 지역 길을 신명나게 달렸습니다. 새천년인 2000년에 이스라엘의 요단강 계곡 길을 달렸을 때도 나는 이 장대한 ‘대지구대’의 무지개 선상 위에서 곡예를 즐기기도 했었습니다. 내가 그날 의기양양하며 달렸던 그 길과 그 땅은 아시아 서남부 요단 강 계곡부터 아프리카 동부 모잠비크까지 연하는 세계 최대의 지구대입니다.

‘대지구대’에 속한 지역은 대체로 사막이나 황야로 되어 있는데 내가 달리고 있던 에티오피아의 ‘대지구대’ 지역에는 열 곳 이상의 호수들이 도열하고 있습니다. 코카(Koka) 호, 지와이(Ziway) 호, 랑가노(Langano) 호, 아비자타(Abijatta) 호, 살라(Shalla) 호, 아와싸(Awasa) 호, 아바야(Abaya) 호, 차모(Chamo) 호, 스테파니(Stephani) 호 등입니다. ‘대지구대’는 서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케냐에서는 투르카나(Turkana) 호, 탄자니아에서는 빅토리아(Victoria) 호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호수들은 빙하시대가 북유럽 땅에 영향을 주었던 동일한 기간에 수천 년에 걸쳐 아프리카를 강타한 폭우로 생겨난 것들이었습니다. 이 호수들 주변의 흙이 걸고 기름진 광대한 지역의 충적토 덕분에 농사가 잘되며, 주변의 야생 동물과 새들에게도 풍요한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주님은 자전거 사고 현장에 모여든 10여 명의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귀한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주님은 자전거 사고 현장에 모여든 10여 명의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귀한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그날 아침 일찍 데브레 제이트(Debre Zeyit)를 출발한 나는 약간 경사진 아스팔트 호수 길을 달리며 왼편에 펼쳐진 코카 호의 풍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는 5분에 한 두 대쯤 다닐까 말까 나는 도로의 황제가 되어 의기양양해 있었습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코카 호의 은빛 물결 위를 넘실거리며 날아다니는 수십 마리의 물총새과 호반새들이 ‘비르르 비르르’ 재잘거리고 있었습니다. 새들은 높고 넓은 파란 하늘에 두루마리를 펼치고 거기에서 군무(群舞)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 춤은 지상의 그 어떤 사람들도 출 수 없는 신비롭고 오묘한 춤이었습니다. 나의 몸은 안장 위에 앉아 페달을 굴리고 있었지만 나의 넋은 새들과 함께 평화의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넋을 잃은 채 춤을 추고 있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자동차 경적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습니다. 경적은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좀 크고 길게 울렸습니다. 자동차 도로의 중간 차선을 달리고 있던 나는 그 경적 소리를 자동차 길에서 비켜나라는 신호로 여기고 본능적으로 보행자나 자전거가 다니도록 되어 있는 도로의 가장자리 길로 핸들을 돌렸습니다. 길섶 길로 들어선 나는 브레이크 레버를 조였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자전거와 함께 길바닥에 왼쪽으로 나동그라졌습니다. 내리막길에서 속력을 줄이거나 정지하려면 뒷바퀴 브레이크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와 정반대로 앞바퀴 브레이크를 사용했으니 스스로 화(禍)를 자초한 셈이었습니다.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으므로 아스팔트에 정면으로 부딪힌 나의 왼팔 팔꿈치와 왼발 무릎을 크게 다쳤습니다. 왼손바닥 가장자리와 오른 손바닥도 찰과상을 입어 두꺼운 살갗이 깊게 패였습니다. 나무 잘 타는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베테랑 자전거 여행가가 길에서 넘어진 것입니다. 자전거가 나뒹굴 때의 충격이 얼마나 컸었던지 핸들이 180도로 꺾이고 체인이 풀어져 있었습니다. 말 못하는 당쇠도 고통이 심했을 것입니다.

경적을 울린 미니버스는 자전거가 쓰러진 길 가장자리에 멈추고 운전수와 조수가 내려 재빨리 나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화장지를 꺼내어 내 팔꿈치와 무릎과 손바닥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주며 자전거를 버스 지붕 위에 싣고 함께 차로 다음 도시까지 가자고 내게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운전사는 경적을 울린 것은 자기나라 땅을 자전거로 달리는 이름 모를 한 외국인의 장도를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혔다며 거듭 사과를 했습니다. 잘못한 것은 전혀 내편이었는데 말입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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