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30] 에티오피아, 자전거 여행
소도(Sodo)에서 아르바 민취를 향해 뻗힌 호수길 위에 그날따라 눈부시게 쏟아지는 태양의 양광(陽光) 속을 달리는 순례자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을 인하여 즐거워하나이다(시편 89:11-12)-
에티오피아의 한중간을 남북으로 가른 대지구대에 예닐곱 군데의 아바야와 차모 등 크고 작은 호수들과 그 주변의 울창한 숲에서 온갖 나무와 식물과 뭍짐승과 날짐승들이 창조주를 찬양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 복되고 아름다운 자연계를 호흡하면서 자전거를 저어가고 있는 순례자는 조금도 외롭거나 또한 조금도 곤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과분한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도중에 순례자는 식수를 가득 채운 플라스틱 통을 나귀 등에 지우고 가는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자전거여행 중에 에티오피아에서는 북아프리카나 중동지방 나라에서처럼 길에나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나귀입니다. 나귀를 만나면 순례자인 나보다 더 반가워하는 것이 자전거 ‘당쇠’입니다. 10리 밖 소리까지도 듣는 귀로 주인 말을 잘 듣고, 다리에 힘이 좋아 잘 걷거나 잘 달리고, 허리가 강하여 사람이나 무거운 짐을 거뜬히 싣고, 배가 고프거나 힘들 때에도 잘 참고, 무엇보다도 주인 말을 잘 듣는 등 나귀와 자전거는 그 속성들과 모양새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당쇠가 나귀를 만나면 반가워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유사성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당쇠는 여러 해 전 이집트 자전거 여행 때 많은 나귀들을 만나 사귀었습니다. 그 당시에 당쇠는 나귀들과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사귀기도 했습니다. 동화식 여행기인 ‘이집트 자전거 여행기’(2003년 현암사 간)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자전거 당쇠는 우리나라 어린이들 사이에서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처럼 말했다는 이야기가 성경(베드로후서 2:15-16)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귀 등에는 5갤론(약20리터)들이 노란 플라스틱 통이 등 양편에 두 개씩 4개의 통이 지워져 있었습니다. 용량 1리터의 무게는 1킬로그램이므로 나귀들은 각기 약 80킬로그램의 물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자기 체중에 버금가는 짐을 지고 10리 20리 길을 걷느라 허리와 다리가 몹시 아플텐데도 불평 한마디 없이 걷고 있는 나귀의 모습이 순례자의 눈에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게다가 주인 남자는 막대기로 나귀 볼기짝을 연신 때리고 있었습니다. 매로 때리는 일이 비록 습관성이겠지만 그 현장을 목격하는 순례자는 못 본 체하거나 침묵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만일 주인이 못 본 체 한다면 똑같은 생각과 의식이 교감하고 있는 당쇠는 하늘처럼 믿고 모시며 사는 주인을 원망할 게 분명할 것입니다.
순례자는 자전거를 길섶에 세워두고 남자에게 뛰어가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막대기를 빼앗았습니다. 낯선 아시아인 나그네로부터 졸지에 막대기를 빼앗긴 남자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체 어이없다며 쓴 웃음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영어와 암하릭어를 뒤섞어 대충 이런 내용을 들려주었습니다.
“주님(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당신이나 나 같은 주인을 모시고 피땀 흘리며 열심히 살고 있는 가축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똑같이 아름답게 지으신 이웃 종족과 동물과 나무와 꽃 등의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헤어질 때 나는 그의 손에 10비르(약 1200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쥐어주면서 오늘 일이 끝나면 나귀들이 좋아하는 바나나나 옥수수와 당근을 사서 먹이라고 당부했습니다. 설혹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을지라도 그에게 ‘동물 사랑’이라는 조그마한 깨달음이 그의 마음속에 스며들기를 바랐습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