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31] 에티오피아, 자전거 여행
그날 오후에는 들녘에서 자유의 몸이 되어 한낮의 햇볕을 즐기고 있는 다른 나귀를 만났습니다. 몸의 털 색깔이 회백색인 나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호수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총새 과의 하얀 호반새가 날아와 그의 귀에 뭔가를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당쇠와 순례자가 그들 곁으로 바싹 다가갔는데도 호반새는 놀라는 기색이 없이 대화에 열중해 있었습니다.
“호반새야, 오랜만이다. 그동안 별 일 없었니?”
“별 일 없었어. 호수에는 먹을 것 흔하고, 늘 편하고 만족해. 그래서 우리 새들은 지저귀는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단다.”
나귀는 호반새를 바라보며 귓속이 가렵다며 후벼달라고 청했습니다. 호반새는 그의 뽀족한 부리로 나귀의 귓속을 쪼아 후볐습니다.
“아, 시원해라! 아, 시원해라!”
“나귀야, 너에게 축하할 일이 있어. 그 선물로 네 귀를 후벼 준거야.”
“그래, 그게 뭔데?”
나귀는 호기심이 당겼지만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물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들은 이야긴데 너희 나귀들은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이래. 우리 날짐승 세 계에서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하듯 말야. 까마득한 먼 옛날에 독생자 예수께서 네 조상 나 귀를 타고 거룩한 성으로 들어가셨단다. 그 이후부터 나귀가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 었다고 하드라.”
“그래, 아무튼 우리 나귀들은 멍청하기도 하지만 다른 크고 작은 동물들과 싸우지 않고 사 이좋게 사니까 그럴 만도 하겠네.”
“나귀야, 이렇게 한나절 일하지 않고 쉬고 있으니 너 오늘 기분이 아주 좋겠구나!”
음색이 호수 물결처럼 잔잔한 호반새의 말이었습니다.
“그래, 기분이 좋긴 하지만 난 지루한건 질색이야. 잡념만 생기고 말야. 힘들더라도 나를 먹여주시고 재워주시는 주인님 식구 위해 일하는 것이 내겐 훨씬 낫겠다.”
“그런데 언젠가 다른 나귀들이 기분 좋을 때 하는 행동을 한번 본 일이 있는데 오늘 그걸 나에게 보여줄 수 있겠니?”
나귀에게 한 발짝 가까이 껑충 뛰면서 재잘거리는 호반새의 애교 섞인 목소리였습니다.
“아 그거? 땅바닥에 발랑 누워 온몸을 뒹구는 짓 말이지? 그건 특히 우리 나귀들이 기분이 좋을 때나 흐뭇할 때 하는 짓인데 신앙심 좋은 나귀들은 하나님 찬양할 때도 그런 몸짓을 한단다. 오늘 주인님이 아침 일찍부터 날 호숫가로 데려가 이렇게 깨끗이 씻어주셨는데 그런 몸짓으로 몸을 다시 더럽히다간 난 당장 쫓겨나.”
“나귀야, 저기 깨끗한 풀밭에서 뒹굴 수 있잖아!”
“이 맹꽁이 같은 호반새야, 그건 깨끗한 풀밭이나 시멘트 바닥에서 하는 게 아니야. 먼지 가 풀썩풀썩나는 흙바닥이나 모래 바닥에서 하는 것이 진짜야”.
“나귀야, 먼지 많이 나는 곳을 몇 군데 보아둘 터이니 다음엔 꼭 보여줘야 한다.”
호반새는 이런 말을 남기고 어딘가로 훨훨 날아갔습니다. 말과 나귀와 노새는 기분이 좋을 때 땅 위에 등을 대고 뒹굴기를 좋아합니다. 땅에서 먼지가 많이 날수록 그 기쁨과 희열이 고조됩니다. 이상하게도 소, 염소, 양 등의 다른 초식 동물들 사이에서는 그런 행동을 찾아볼 수 없답니다.
동물들도 자기들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셔서 짧은 생명이나마 살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초월적인 섭리와 다스림을 본능으로 인지하고 있을까?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행동을 영이 아닌 본능만으로도 할 수 있을까?
순례자는 그날 여행길에서 목격하고 유추한 일들과, 평화의 왕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타고 가셨던 그 택함을 받은 어린 나귀를 생각하면서 그렇다고 자문자답할 수 있었습니다.
“피조물들아, 산들과 바다와 강들아, 동물과 나무와 꽃들아, 그대들을 지으신 주 하나님을 찬미하라. 할렐루야!”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