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32] 에티오피아, 자전거 여행

무랍바야 마을 근처에 당도하자 둥근 지붕의 초막집이 한둘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 주행을 멈추고 길가 나무 그늘에 서서 땀을 닦으며 먼발치에서 초막집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엔 각기 아기를 안은 두 젊은 오로모 여자가 나의 거동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무슨 말인가를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아가서에 나오는 영락없는 술람미 여자들이었습니다. 나는 지척의 거리에서 그녀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싶었습니다.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로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의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아가서 6:13,14)’

나는 물이 다 떨어진 빈병을 입에 거꾸로 치켜들며 그녀들에게 마실 물을 달라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러자 한 여자가 내 청을 기다리기나 한 듯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오목한 양은 그릇에 물을 하나 가득 담아가지고 그녀의 이웃 여자와 함께 나에게 뛰어왔습니다. 목마른 자가 샘을 찾아 뛰어가야 하는데 주객이 뒤바뀌었습니다. 만일 여기가 모슬렘이 사는 이슬람권의 마을이었더라면 상황이 달랐을 것입니다. 화장 끼 하나 없는 그녀들의 구릿빛 얼굴에서는 풋풋한 생기와 향기가 풍기고 있었으며 그들의 갈색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내 입에서는 먼저 영어와 암하라어로 번갈라 고맙다는 인사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쌩큐! 아메쎄그날로!(고맙습니다)”

▲함족에 속하는 가만 피부의 구스족 에티오피아 여자들은 아프리카의 어느 종족들보다도 어여쁘고 신앙심도 강하다.

▲함족에 속하는 가만 피부의 구스족 에티오피아 여자들은 아프리카의 어느 종족들보다도 어여쁘고 신앙심도 강하다.

오로모 족인 그녀들은 암하라 말을 했습니다. 암하라어는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이므로 암하라 족을 제외한 에티오피아의 다른 종족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암하라어를 제1외국어로 배웁니다. 에티오피아에는 종족이 많으니까 언어도 각기 달라 방언이 2백여 가지나 됩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크게 네 그룹으로 나누면 셈어, 구스어, 오모어, 나일 사하라어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인 암하라어는 히브리어와 아랍어처럼 셈어에 속합니다.

나는 조그마한 암하라어 핸드북의 도움으로 여자들과 의사를 소통했습니다. 남편들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바나나 농장으로 일하러 갔다고 합니다. 나는 여자들에게 이름을 물어보기 전에 그들의 외모를 칭찬했습니다.

“당신들은 예쁜(콘조) 술람미 여자군요”

‘술람미 여자’는 아가서에 두 번 나오는 젊은 여자의 호칭인데 ‘평화’를 뜻하는 이 이름은 미녀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술람미’라는 이름을 잘 모르는 있던 그 오로모 여자들은 자기 들 이름이 각기 ‘마리암’(마리아)과 ‘메투’이고 나이는 스무 살 전후라고 소개했습니다. 관례에 따라 그들도 십대 하반기 나이에 결혼을 했을 것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가정의 가장 큰 축복이며, 남편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에서는 결혼한 여자들 한 사람 당 5명 내지 6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마리암과 메투도 그렇게 되기를 소원한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헤어질 때 여자들은 나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청했습니다. 유부녀가 외간 남자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니요. 에티오피아의 동부지방과 남부지방에 사는 이슬람 신앙의 아파르 족이나 소말리 족 여자들에게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에티오피아 여자들은 아프리카의 다른 몇몇 나라들의 여자들에 비해 대체로 공정하고 평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물론 에티오피아 동부 지방의 일부 종족들에게는 ‘여성 성기 절단’(#45 참조) 등 몇 가지 무자비한 반인륜적인 성차별 관습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참정권, 투표권, 재산 소유권 등 국민 기본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가시나무 그늘에서 개방적인 두 오로모 족 여자들과의 데이트는 단 15분도 되지 않아 끝났습니다. 새들이 알려 주었는지 수백 미터밖에 사는 마을의 조무래기들이 떼지어 모여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일어서기 전에 나는 여자들에게 암하라어 전도지에 큰 글씨로 ‘예수스 예베데할!(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써주었습니다. 그녀들도 나에게, “예수스 예베데할!”라고 화답했습니다.

그날 오후 아르바 민치에 도착할 때까지 힘든 자전거 주행을 하는 동안,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신 ‘길벗’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암하라어로 ‘예수스, 아페크르헬로!(예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음송하면서 나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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