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차의 나무꾼 소녀들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33] 에티오피아, 버스 여행

아침 일찍 순례자는 미니버스를 타고 첸차(Chencha)로 하루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르바민치에서 북쪽으로 26km 떨어진 첸차는 도르제 족 사람들이 독특한 원뿔형 대나무 집을 짓고 사는 지역으로 이름나 있습니다. 버스는 구게 산맥의 산허리를 여러 구비 돌고 돌아 비포장 도로를 힘겹게 주행했습니다. 차창 밖의 숲속에는 땔감을 줍는 소녀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비가 내리는데도 땔감 나뭇짐을 팔기 위해 장터로 가는 맨발의 나무꾼 소녀들.

▲비가 내리는데도 땔감 나뭇짐을 팔기 위해 장터로 가는 맨발의 나무꾼 소녀들.

해발 2천 미터의 고원 도시 첸차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극빈 가정이 사는 집을 수소문하기 위해 정교회 사제 사택을 찾아 나섰습니다. 도중에 어떤 남자를 만나 길을 물었는데, 초등학교 교사인 그는 사설 양로 단체에서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를 양로원으로 안내했습니다. 그곳에는 십여 명의 노인들이 각자 두 평도 되지 않는 독방에서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자손이 없고 돌보아 줄 친척이나 아무런 보호자가 없어 버려진 그들을 위해 학교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유지들이 개인 호주머니를 털어 조그마한 ‘노후의 집’을 마련한 것입니다.

나에게 한 할머니와 잠시 인터뷰가 허락되었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물어볼 말이 없었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가 두려웠습니다. 순례자가 그 할머니에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몇 푼 되지 않는, 기껏 한두 달의 목숨을 연명해 주는 몇 푼의 돈이 아니라, 영생을 살게 하는 단 몇 마디의 소망의 메시지였습니다.

“할머니,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테스파예)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주님의 긍휼을 빌었습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시내 쪽으로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열서너 살 쯤 되어 보이는 소녀들 서너 명이 등에 나뭇짐을 지고 질척질척한 황톳길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두어 시간 전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그 숲속의 다람쥐들과 유사한 나무꾼 소녀들이었습니다.

소녀들은 맨발이었습니다. 까칠하고 부르튼 발이었습니다. 신발 한 켤레를 사려면 사나흘을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소녀들에겐 신발보다 맨발이 더 편합니다. 앞장서서 걸어오던 소녀와 순례자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동양인과 맞닥뜨린 소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던 동료 친구들을 불렀습니다.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던 소녀들은 이내 낄낄거리며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소녀들은 등에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도, 고원 지방의 싸늘한 날씨에 비를 흠뻑 맞았는데도 그 환하고 밝은 웃음보가 어떻게 터져 나왔을까 궁금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수목이 울창한 서남부 지방과 아디스 아바바 주변과 ‘대지구대’ 호수 지역에서는 이따금 부녀자들(주로 10대 소녀들)이 나뭇짐을 지고 거리를 터벅터벅 걷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대부분 하루에 평균 30kg이나 되는 나뭇짐을 지고 수 십리 길을 걷습니다. 어떤 여자들은 자기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짐을 나르는 나귀처럼 자기 체중보다 더 무거운 나뭇짐(35-40kg)을 집니다. 이들의 하루 수입은 평균 4비르(약 5백원) 안팎이며, 이들의 육체 노동은 한 가정을 먹여 살리는 유일한 생계 수단입니다.

오후에 순례자는 도르제 족의 원뿔형 대나무 집을 구경하러 8km 쯤 떨어진 도르제 족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오모 족의 한 종족으로 오모어를 말하는 그들은 한때 싸우기를 즐겨했던 전사(戰士)들이었지만 나중에 농경으로 돌아서서 지금은 농사를 짓고 직물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첸차가 유명해진 이유는 가비스(숄, 어개 걸치개)와 같은 양질의 면직물이 첸차 인근에 있는 도르제 족 마을에서만 만들어 팔기 때문입니다.

순례자가 마을에 들어서자 아니나 다를까 말로만 들었던 높이가 12미터나 되는 벌집 모양의 대나무 집이 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우아한 엔세트(enset) 줄기와 짚을 엮어서 만든 원뿔형 집은 엔세트와 각가지 채소가 자라고 있는 작은 정원에 에워싸여 있었습니다. 겉모습이 바나나를 닮았다고 해서 흔히 ‘가짜 바나나’로 불리는 엔세트는 인간 생활의 필수적인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귀중한 식물입니다. 굵고 곧은 줄기는 집을 지을 때 사용되며, 길쭉하고 매끄러운 잎으로는 여자들이 치마를 만들어 입습니다. 그리고 뿌리와 대와 입 줄기에서 얻은 탄수화물 수액 또는 녹말로는 죽을 쑤어 먹거나 이스트를 넣지 않은 끈끈한 빵을 만들어 먹습니다.

도르제 족의 원뿔형 집 내부는 여러 개의 단단한 재목을 수직으로 세웠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쉽게 옮길 수 있습니다. 이 원뿔형 대나무 집의 수명은 40년 내지 50년이라고 합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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