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조와 징카 행 버스에서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35] 에티오피아, 버스 여행

3월 하순 아르바 민치에서 사흘째 맞이하는 아침이었습니다. 오늘은 멀리 오모 족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오모 강 하류 지방으로 5일 간의 선교 순례 길을 떠나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달려갔습니다. 징카 행 버스를 타야하는데 정반대 방향의 첸차 행 버스에 잘못 올라탔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징카’로 물었는데 그들은 내 말을 ‘첸차’로 잘못 들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내 징카 방면의 버스에 부랴부랴 올라타긴 했지만 승객들로 초만원이었습니다. 운전석 바로 옆 엔진 덮개에 방석 깔린 자리가 있었는데 겨우 엉덩이 하나 비집고 앉을 만한 공간을 얻었습니다. 평일에는 만원이 아니라는데 그날은 순복음 교회 수련회 집회에 참석한 징카 지역 교인들이 대거 탑승하는 바람에 나는 그만 좌석을 놓치고 만 것입니다.

엉덩이 아래 엔진 덮개에서는 섭씨 100도에 가까운 열기를 뿜어 올리는데 내 옆 사람은 그 뜨거운 기온을 용케도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방석 위에 조수가 입는 작업복을 청해 두 겹 세 겹으로 포개어 까니까 훨씬 나았습니다.

“주님, 제 몸 밑에는 지옥이지만 제 가슴에는 주님이 계시니까 여기는 천국입니다.”

8시간 이상 육신은 뜨거운 지옥 열기로 시달렸지만 주님과 동행하는 내 영혼은 평강으로 가득 찼습니다.

▲ 반나체의 이 콘조 족 소녀는 외래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진 모델이 되어 준다.

▲ 반나체의 이 콘조 족 소녀는 외래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진 모델이 되어 준다.

시외버스는 정오 무렵에 콘조(Konjo)에 도착했습니다. 암하라어로 ‘아름답다’란 뜻의 콘조는 원주민의 아름다운 문화와 건축 예술로 이름난 곳입니다. 마을에서는 외래 광광객들을 위해 문화 촬영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으뜸 되는 인기 종목은 반나체의 젊은 콘조 족 여성들에 대한 촬영입니다. 순례자의 여행 목적이 선교 순례가 아니고 문화 순례였더라면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필시 이 도시에서 하루 이틀 머물며 원주민 여자들의 나신을 눈요기하는 등 세상살이의 재미에 푹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점심 식사 후에 콘조를 출발한 버스는 아카시아 나무가 우거진 대초원을 지나가기도 하고 첩첩 산중을 굽이굽이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버스는 간밤에 내린 호우로 허리까지 분 오이토(Woyto) 강물 속으로 들어가 개헤엄 치며 기어가기도 했고, 승객들은 강변에 나와 부끄러움도 없이 발가벗고 목욕하는 아녀자들을 눈요기하느라 넋을 잃기도 했습니다.

아침 6시30분에 아르바 민치를 출발한 징카 행 버스는 도중에 엔진 고장으로 수선하느라 1시간 이상이나 지체하고 비포장 진흙길을 엉금엉금 기어가느라 그날의 목적지인 징카까지 228km를 11시간이나 달려 오후 5시 30분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니까 저만치서 마치 친척어른이나 스승을 마중 나온 것처럼 키가 훤칠한 낯모르는 소년이 나를 반겼습니다. 소년은 순례자가 한 달 전 에티오피아의 북부 지방을 여행할 때 곤다르에서 만났던 야레드나, 랄리벨라에서 만났던 기르마와 다름없이, 버스 터미널과 호텔 주변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한두 시간 관광 안내를 해주고 한두 푼 안내비를 받아 학비에 쓰거나 가정을 돌보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른바 아르바이트 학생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소년은 자격증을 소유하지 않은 무자격 관광 안내원인 셈입니다. 에티오피아 정부에는 문화관광부와 국제관광공사와 같은 관광 기구가 있지만, 관광 안내자를 육성하는 학교나 교육 기관이 없으며 관광 안내자의 법적인 자격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관광 도시의 시청 문화과에서는 관광 안내자로 활동하는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조그마한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리고 관광 안내비도 하루 10비르부터 100비르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입니다.

순례자가 징카에서 만난 소년의 이름은 말코무(18세)입니다. 징카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말코무는 곤다르의 야레드와 랄리벨라의 기르마, 그리고 또 나중에 하라르에서 만나게 되는 하일루 테키예 처럼 영어를 곧잘 구사하는 소년입니다. 그날 저녁 말코무의 순박성과 신앙심, 그리고 그 지역 문화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에 매료한 나는 그를 가이드와 통역으로 삼았습니다. 그날 밤 늦게까지 말코무와 나는 사흘간의 오모 강 하류 지역 순례에 관한 일정을 세웠습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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