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열차 타고 하늘나라 가지요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39] 에티오피아, 기차 여행

4월 3일 목요일입니다.

오늘은 멀리 지부티(Djibouti)와 에리트레아(Eritrea)를 향해 기차로 선교 여행을 떠나는 날입니다.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는 한 발짝만 디디면 건널 수 있는 지척의 이웃나라이지만 양국 간의 내전이 끝난 지가 10년이나 되었는데도 국경은 여전히 봉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먼 곳으로 우회하여 닷새나 걸리는 기차와 버스 여행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순례자는 기차 시간에 늦을까봐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부랴부랴 아디스 아바바 역으로 달려갔는데 오후 2시에 출발할 것이라는 기차는 오후 3시가 되고 4시가 되어도 역원으로부터 기차가 곧 떠난다는 아무런 안내가 없었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직접 역장을 만나 기차 시간이 왜 오락가락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역장은 플랫폼을 가리키면서 “승객을 태우고 갈 기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구만요. 기차가 본역에 도착하기 전에는 정확한 출발 시간을 말씀드릴 수 없겠네요”라고 말하면서 넉살스럽게 웃기만 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해방 전후보다도 더 뒤떨어진 에티오피아의 열악하기 짝이 없는 철도 교통 상황에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역 앞뜰 시멘트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기차를 기다리는 남녀 여행자들은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잘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저녁 8시가 지나고 빛을 잃은 아프리카의 태양이 아디스 아바바의 하늘을 엷은 보랏빛으로물들일 무렵, 승객을 태운 기차는 멀리 동쪽으로 470여 킬로미터 떨어진 디레 다와(Dire Dawa)를 향해 둔중한 쇠바퀴를 서서히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디스 아바바에서 디레 다와를 거쳐 동쪽 인도양의 아덴 만(灣)에 이르는 이 열차 철로는 에티오피아의 유일한 철도입니다.

상당량의 수출입품을 운송하는 일로 오늘날 에티오피아 경제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이 철도는 1894년에 메넬리크 황제(1889-1913)의 기술 고문이었던 스위스인 기술자 알프레드 일크의 제안으로 부설(敷設) 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1906년 이 철도의 ‘국제화’를 노린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세 열강은 메넬리크 황제와 상의도 하지 않고 에티오피아를 ‘삼등분’하는 삼국 조약에 조인했습니다. 그리하여 영국과 이탈리아가 철도 부설 자금을 투자하고, 프랑스가 철도회사를 설립하여 철로 부설 공사를 직접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10여년이 지난 후 이 철도는 길이 785 킬로미터에 터널 수 29개, 34 곳의 정거장을 갖춘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철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이 철로를 달린 그 낡고 볼품없는 프랑스제 객차는 순례자에게 영적인 비유를 보여주었습니다. 객차의 차창에는 유리가 하나도 끼워있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창틀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차는 대여섯 차량의 객차에 대여섯 차량의 무개차와 또 그 정도 수량의 화물차를 달고 있었습니다. 객차 안은 전등이 하나도 달려 있지 않아 바로 눈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습니다. 사람들은 휑하니 트인 창문을 통하여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늘엔 싸라기 같은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승객들은 별들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늘나라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 앞 자리에 앉아있는 터번 쓴 이슬람교 신자 하씸 씨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도 하늘나라를 생각하고 있겠지. 승객들의 귀에 들려오는 것이라곤 타그닥탁 타그다탁 하며 기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둔탁한 소리를 없애주는 다른 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한 동양인 순례자가 부르는 노래 소리였습니다.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죄악 역 벗어나 달려가다가 다시 내리지 않죠. 차표 필요 없어요. 주님 차장 되시니 나는 염려 없어요.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하씸 씨는 내가 부르는 노래가 하늘에서 들려오는 노래로 알았다며 계속 불러달라고 청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노래 가사의 뜻을 영어와 아랍어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흥겨워서 노래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와 복음에 대해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묻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며 그리스도의 천국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는 이슬람 신자들과 종교 토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전하고 베푸는 것으로 족합니다. 우리의 생명의 빛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푸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 열매의 결실 여부는 성령의 역사에 달려 있을테니까요. 나는 노래를 부르며 하씸 씨를 위해 간간히 중보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하씸 씨의 영혼 깊숙한 곳에 구원의 씨를 심어주소서’

노래 소리는 차창을 빠져나가 밤하늘을 향해 너울너울 퍼져나갔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한 이름 없는 순례자를 통하여 부르시는 천상의 노래였습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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