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염소처럼 풀잎 먹고 사는 나라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43] 지부티, 지부티 시

순례자는 지부티 본역에서 3킬로미터 쯤 떨어진 시내로 들어가 값싼 숙소를 찾아다녔지만 지부티에는 에티오피아에서처럼 하룻밤 3달러 안팎의 호텔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지부티 시장 근처에 있는 바나디르 호텔을 숙소로 정했는데 하룻밤 숙박료 15달러를 주고 사흘을 머물기로 했습니다.

여장을 풀고 시장기를 풀기 위해 시장 안에 있는 값싼 식당을 찾아 나섰습니다. 시장 변두리 골목거리에는 암 달라 상-주로 여자-들이 진을 치고 손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비슷한 차림의 부녀자들이 상자나 바구니에 무엇인가를 가득 담아놓고 그 위에 천이나 종이로 덮은 채 호객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무엇을 파느냐고 넌지시 물으니까 ‘카트(Khat)’라고 했습니다. 양귀비나 대마초와 같은 일종의 환각제 또는 마약 비슷한 카트(학명:Catha edulis forskal)는 말린 연초(煙草)처럼 피우지 않고 생잎을 이빨로 껌처럼 지근지근 씹어 먹는 식물입니다.

카트의 주생산지는 에티오피아입니다. 키가 약 2미터 정도로 자라는 상록 관목 식물인 카트는 해발 1,500미터에서 2,800미터 사이의 습기가 많은 경사지에서 잘 자랍니다. 엊그저께 방문했던 하라르와 그 주변 지역은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주요한 카트 생산지입니다.

세계 최고 양질(良質)의 커피콩을 재배, 외국에 수출하여 외화를 획득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정부는 제2의 커피로 일컫는 ‘카트’를 재배하고 수출하는 일에도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카트는 인체에 생리적 해악을 끼치는 경우는 희소하지만, 카트 상용(常用)으로 인한 정신적인 해악은 무척 심합니다. 예를 들어, 카트를 씹어 삼키는 동안 황홀경을 느끼게 되고 그 후유증으로 온몸이 나른해지며 모든 의욕을 상실합니다. 카트를 씹어 먹으면 공복감이나 갈증을 느끼지 못하므로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도 카트에 인이 박히면 끼니 대신에 카트를 사먹는 쪽을 선호합니다. 이웃의 에리트리아, 수단, 이집트, 사우디 아라비아 등의 이슬람 나라에서 상용이나 거래가 금지되어 있는 카트가 지부티, 소말리아, 예멘 등의 이슬람 나라에서는 상용과 거래가 허용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컬 합니다.

지부티에서 카트 판매는 주요한 기업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지부티로 열차와 항공기로 운송되는 카트 화물 무게는 여행자들의 무게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지부티 정부는 에티오피아에서 카트를 아주 싼값으로 수입하여 자기 국민들에게 카트 3백 그램을 3백 지부티 파운드(약 2달라)에 팝니다.

그날 저녁 순례자가 바나디르 호텔에 도착했을 때 30세 전후의 호텔 매니저 하흐메드와 그의 친구 무스타파, 그리고 소말리아에서 왔다는 현역 연예인 아로블레 씨는 호텔 2층 복도에 진을 치고 본격적인 카트 파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풀잎을 뜯어먹는 풀쐐기들이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풀잎을 씹고 있는 염소들이었습니다. 호텔 숙박비가 비싼 탓으로 투숙자가 없어 파리를 날리는 판에 친구들과 카트 파티로 세상 일 까마득히 잊어버릴 수 있으니 우린 이걸로 자족한다며 그들은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리아 그리고 소말리아 등 세 마리의 사자들에게 에워싸인 가련하고 우둔한 고집 센 염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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