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티에서 국경너머 아싸브까지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47] 에리트리아, 소형 화물차여행

안정과 평강과 감사의 묵상이 있은지 얼마 후 요동치던 바닷바람과 풍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바다는 다시금 호수처럼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연락선은 2시간에 걸친 항해 끝에 목적지 오보크에 도착했습니다. 지부티 부두에서 함께 승선한 소년 무함메드가 오보크에서 에리트리아 국경까지 타고 갈 찻삯이 모자라다며 나에게 5백 지부티 프랑(약4천원)을 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되돌려 받는 것이 어려운 줄 알고 있는 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용돈을 주듯 소년의 손에 돈을 쥐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국경 초소에서 소년은 여권 부소지자로 붙잡혀 에리트리아로 들어가지 못하고 남게 되었습니다. 무함메드는 나보다는 자전거 당쇠에게 마치 친구에게 대하듯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석별의 정을 쏟았습니다. 순례자는 무함메드가 다음날에라도 에리트레아로 입국할 수 있기를 빌었습니다. 그날 밤 아파르 족이 사는 국경 마을의 하늘에는 은 싸라기 별들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순례자는 지부티의 항구 도시에서 국경 마을 라하이타까지 타고 온 소형 화물차(일제 도요다)에서 에리트레아의 항구 도시 아싸브로 가는 다른 미니 화물차로 옮겨 탔습니다. 아프리카의 빈곤한 제3세계 나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화물차들은 사람들을 태워다주는 일종의 소형 버스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날 탄 화물차에는 짐도 많고 사람도 인원초과였습니다. 짐을 먼저 싣고 승객들은 그 짐들 위에 앉거나 서서 가야합니다. 짐이 사람보다 우선권입니다. 트럭 옆 난간에 끈으로 단단히 묶여있는 자전거 ‘당쇠’는 사람들에게 밟히지도 않고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느긋한 여행을 했습니다.

나는 50대의 어느 뚱뚱한 여자와 남자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자리를 바꿔 앉으려고 내가 몸을 조금 움직일 때마다 체중이 나보다 거의 두 배 쯤 되어 보이는 드럼통 여자가 당장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여자는 하나님의 창조 기준에 전혀 어긋나는 피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에리트레아(GNP 150달라)에서 사는 이 여자는 뭘 먹고 살기에 저리 기름 층이 두꺼울까. 그리고 신경질을 부리는 것은 대체로 허약 체질의 여성 전유물인데, 비대한 여자가 신경질을 부리는 것도 이상 징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집이 작고 체중이 적은 나는 그녀의 드럼통 엉덩이에 점점 짓눌리고 있었으며 급기야 그 자세는 여자의 등을 껴안는 체위가 되었습니다. 반사막의 비포장도로를 먼지 일으키며 달리는 미니 화물차가 엉덩이 춤을 출 때마다 뚱뚱보 여자도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나의 연약한 사타구니에 방아를 찌었습니다. 지옥도 이런 지옥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나는 원래 참을성이 적고 혈기가 많았던 피조물이었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늘그막에 겨우 수양이 되어 참고 견디는 것을 커다란 덕목으로 살아온 터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관광을 즐기며 떠도는 세속적인 여행가가 아니라, 온갖 고통과 시련을 감수해야할 그리스도의 영(靈)을 지닌 사랑의 수행자요 복음의 순례자가 아닌가. 그러나 순례자는 아직도 수양이 덜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영에서 떠난 세상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주님, 나의 믿음 연약함을 주님 아시지요. 세상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법보다 주먹이 앞설 경우가 있네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지요. 그게 자연의 세상 이치 아닙니까, 주님, 이런 생지옥을 견뎌내지 못하는 나의 연약함을 용서하십시오-

입술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하소연하는 동안 나의 오른손 엄지와 집게손가락은 뚱뚱보 여자의 엉덩이 바로 아래 뭉클한 허벅지를 옹골차게 꼬집었습니다. 그녀는 얇은 천 내의를 입고 있었으므로 정통으로 호되게 꼬집힌 것입니다. 순간 그녀는 벌떡 일어나면서 무슨 말인가를 조잘거렸지만 나는 몸을 조금도 일으킬 수가 없었습니다. 한 시간 이상 무거운 드럼통에 깔려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하반신이 거의 마비된 탓이었을 것입니다. 뭔가를 조잘거리는 그녀의 말소리는 다행히 반사막 먼지와 자동차 굴러가는 소리 속에 잠겨 어딘가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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