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50] 에리트리아, 버스여행
다음날 새벽 4시 30분 경 아싸브를 출발한 버스는 530여km나 떨어진 멀리 북쪽의 아스마라를 향해 대장정 길에 올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에티오피아의 대부분의 노후(老朽)화 된 버스처럼 이 버스도 수명이 다 된 셈인지 중간 중간에 숨을 헐떡거리며 달리는 것을 몹시 힘들어했습니다. 결국 오후 4시경에 엔진 만성병을 앓고 있는 이 버스는 겔라 엘로(Gela Ello)라는 마을 근처에서 조그마한 고개를 올라가지 못하고 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암 세포가 인체에 전이되어 수술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말기 암 환자 앞에서 망연자실한 외과 의사들처럼 버스 운전자와 조수 역시 엔진 만성병으로 고장난 버스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리트리아를 종주하는 이 유일한 비포장 간선도로는 30분에 두 서너 대의 화물차와 군용차가 왕래할 뿐 한산하기 그지없는 길입니다. 우리가 탄 버스 승객들은 모두 나와 바로 눈 앞에 펼쳐진 홍해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나름대로 자연을 즐겼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도 없는 산책을 하며 고장 난 버스를 끌어다 줄 대형 화물차가 오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한 시간 이상 무료히 기다리면서 나는 길섶에 삼삼오오 짝지어 앉아 있는 다른 승객들의 얼굴과 생김새를 힐끔힐끔 훔쳐보면서 ‘저 사람은 어느 종족에 속해 있을까?’ ‘저 여자는 티그리니아 족일까, 아니면 티그레 족일까?’ ‘어제 드럼통 엉덩이로 나를 짓누른 그 여자는 어느 종족에 속할까?’ 의문해 보았지만 조금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에티오피아가 주요 여덟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이 에리트레아 역시 각기 자기 언어와 전통 문화를 간직한 아홉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에리트레아 전체 인구(4백60만 명) 중 약 35퍼센트가 유목민 또는 반유목민이며 약 1백만 명이 외국에 나가 살고 있습니다.
에리트레아 인구 중 약 50퍼센트를 차지하는 티그리니아(Tigrinia) 족은 두부부(Dubub) 지방과 아디 케이(Ady Keyh) 지방에 이르는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중앙 고원 지방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로 에리트레아 정교회 기독교 신자들이며, 지베르티(Jiberti)라 불리는 소수 집단의 모슬렘들입니다. 그들의 언어 티그리니아어는 이 나라의 공용어 중 하나입니다.
인구 중 약 30퍼센트를 차지하는 티그레(Tigre) 족은 북쪽의 수단 국경에 접한 저지 지방과 다나킬(Danakil)의 서부지방에 분포하여 살고 있습니다. 여러 씨족으로 나뉜 티그레 족은 대부분 모슬렘이며 농업 또는 목축업에 종사합니다. 티그레 사회는 전통적으로 성직자 계급 제도로 소규모의 귀족 계급의 사회를 이룹니다. 촌장이 죽으면 그의 자손이 세습합니다. 티그레의 구전(口傳) 문화는 풍부합니다. 우화, 만가(輓歌), 전쟁노래, 시가, 속담, 및 초자연 이야기 등은 티그레 인들의 일상 생활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티그레 인들은 주로 북이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합니다.
인구의 5퍼센트를 이루고 있는 사호(Saho) 족은 아스마라와 마싸와 남쪽의 후배 지역과 해안 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4월 하순 경, 저지에 우기가 끝나면 많은 사호 족 유목민들이 연안 지역을 떠나 가축을 몰고 아디 케이 인근의 고지지역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9월에 우기가 그치면 그들은 다시 우기가 시작되는 연안 지역으로 되돌아갑니다. 오늘날 그들은 흔히 티그리니아 족의 소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의 가축을 돌보아주고 그 값으로 대신 곡식을 받습니다. 다나킬 족으로 알려진 에리트레아 아파르(Afar) 족은 인구의 5퍼센트를 차지하며, 줄라(Zula)만으로부터 지부티에 이르는 해안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아파르 족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45편과 #46편을 참고하십시오.
인구의 2,5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 헤다레브(Hedareb) 족은 그들의 ‘형제’ 종족인 베니 아메르(Beni Amer) 족, 베자(Beja) 족과 함께 에리트레아의 북서쪽 산지 계곡과 수단 국경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원은 구스 족이며, 주로 티그레 말을 합니다. 남자들의 대다수는 그들의 뺨에 칼로 세 개의 수직 홈을 팝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들을 ‘111 족’이라고 부릅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