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전거로만 가야합니까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아프리카 자전거 순례 2만 리 59] 에리트리아, 자전거 여행

새벽의 묵상 시간에 오늘도 새 생명을 주시고 또 활동하게 하시는 주님의 깊은 뜻과 계획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고마우신 주님, 오늘도 나에게 근력 주셔서 페달을 굴리며 아프리카의 광야 땅을 달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내가 무엇이건대 그 험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십니까. 나는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떠올리며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 페달을 밟았습니다.

마싸와를 출발한 순례자는 오후 늦게 포로(Foro)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마싸와에서 포로까지는 자전거로 반나절 거리인 백리길이지만 자갈과 모래로 되어 있는 비포장도로는 자전거의 주행을 무척 힘들게 했습니다. 게다가 한낮의 태양은 무자비하게 이글거렸는데도 자전거 당쇠는 섭씨 40여도의 불볕더위를 용케도 이겨내며 잘도 달려주었습니다. 하얀 먼지를 뒤집어 쓴 품이 며칠 전 아스마라의 어느 자전거포에서 깨끗이 목욕한 당쇠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포로 마을에는 숙박소가 한 곳 뿐이었습니다. 간판이 붙어있지 않은 걸 보니까 무허가 업소임에 분명합니다. 침실은 세 개가 전부였고 대청마루에 다 찌그러진 침대가 대여섯 개 쯤 있었습니다. 매트리스는 쥐가 오줌을 쌌는지 알록달록했고 담요에는 때가 다닥다닥 끼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이조시대의 시골 주막도 이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이 이름 없는 싸구려 숙박소가 토로 마을의 유일한 여인숙이므로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순례자는 돈 몇 푼 건네주고 하룻밤 머리 둘 곳이 있었지만, 우리 주님에게는 돈이 없으셨고 찾아가 하룻밤 눈 붙일만한 곳이 없으셨습니다. 굴이 있는 여우를, 그리고 보금자리가 있는 새를 부러워하시면서 주님은 얼마나 외로워하셨을까. 그런 주님을 떠올리니까 나의 배부른 푸념이 금세 부끄러워졌습니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습니다. 장대 같은 소낙비였습니다. 마을 집집마다 물난리를 만났다며 온 동네가 시끌벅적거렸습니다. 내가 묵은 여인숙도 물이 침수되어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가 수십 년 만이라며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생명의 물 ‘단비’를 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한밤중의 물난리와 소동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심신이 지쳐있었습니다.

아침에 나는 그날의 목적지인 겔라 엘로(Ghela elo)로 가기 위해 여인숙을 빠져 나왔습니다. 배수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포로 마을의 자동찻길은 간밤에 내린 빗물이 채 빠져 나가지 않아 몹시 질척거렸습니다. 천근만근이나 되는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흙탕길로 변한 도로를 한 발짝 두 발짝 걸어가는 내 머리 속에는 전날의 계획을 변경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험하고 거친 도로를 반드시 느리고 수동적인 자전거로 달려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자전거는 자동차에 비해 훨씬 뒤떨어집니다. 자동차는 남-엔진과 연료-의 힘으로 움직이지만 자전거는 사람의 힘으로 움직여집니다. 병든 자나 지체부자유자가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어도 자전거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자전거가 하루 종일 달려야할 거리(대략 1백 킬로미터 안팎)를 자동차는 한 두 시간으로 족합니다. 인적이 없는 초원이나 광야 길을 달리는 자전거는 악천후에 시달리고, 비적이나 테러리스트의 손쉬운 표적이 되어 생명의 위험률이 훨씬 많습니다.

나는 메달과 상금을 타기 위해 나선 자전거 경주자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기네스북에 올려지고 싶어하는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반드시 자전거 주행을 고집해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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