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의 ‘중독탈출’ (52)-도박 중독[19] 수동-공격성 치료
도박중독은 수동-공격성의 관점에서 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도박행위는 돈을 따기 위한 것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내면의 특성이 도박으로 발휘된다. 이런 점은 수동-공격성을 고찰하면 더 밝혀진다.
수동-공격성의 사람은 내면의 갈등이 비뚤어진 분노의 형태로 잠재해 있다. 그들 내면의 갈등은 분노가 분출하려고 잠재해 있기 때문인데, 대개 남모르게 훼방을 하거나 일부러 꾸물거리거나 옹고집을 부리거나 비능률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수동-공격성은 조직화된 정신의 특성에서는 빈번하게 경멸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특성이 도박중독자들의 내면에서 작용하는 동인(動因)이라면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
1. 도박중독과 수동-공격성
도박중독은 수동-공격성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그들의 행위는 도박이라는 행동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내면에는 수동-공격성의 특성이 자리한다. 수동-공격성은 대개 겉으로 드러나기보다 내면에서 작용하는 심리적 세력이기 때문에 의존성을 기반으로 하거나 회피성과도 상당히 닮았다. 이런 특성은 DSM-III 정의에 따르면, 다음 기준과 관련된다.
A. 직업적 또는 사회적 기능에 있어 능력에 적절한 활동 또는 일의 요구에무조건 저항을 나타낸다.
B. 꾸물거림, 빈둥거림, 옹고집, 고의적 무능, 소홀 등이다.
C. 장기간 지속된 뿌리깊은 직업적 또는 사회적 무능력을 보인다.
이 진단은 사회적 상황에 정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이런 특성은 관찰자의 주관적인 관점에 의해 어느 정도 좌우되며, 비뚤어지게 표현되는 분노를 어떤 견해로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 동일한 특성을 갖고도 보는 관점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이런 것을 두고 고상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성자(聖者)와 병리적 측면으로 평가되는 피학증의 사이, 그리고 종교적 신념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순교자와 별 일 아닌 것을 위해 귀중한 신뢰를 던지는 반역자 사이의 구분이 미묘할 때와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도박중독자들은 수동-공격성을 가진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드러나게 공격성을 표출하지 않아도 이미 도박이라는 행위를 통해 공격성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면 도박중독자들이 수동-공격성을 가졌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주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면 된다. 결정과 책임을 떠맡기는 것, 자신의 욕구만 중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욕구는 경시하는 것, 그리고 뚜렷한 자신감의 결함을 보인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자기 욕구보다 가볍게 생각하고, 그들 자신의 중요한 생활 문제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맡기며, 자기에 대한 신뢰가 결여돼 있다. 그러면서도 혼자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 심한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더욱 도박판을 찾는다. 도박판을 찾아 그들과 함께 있어야 덜 불안하다. 때로는 정신이 안정되지 않아 경계를 넘나드는 경계성 인격장애처럼 많은 행동양식에 맞도록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이는 후천적으로 학습된 방식으로 보인다.
2. 도박중독에서 수동-공격성의 발전
도박중독자들이 수동-공격성을 가졌다면 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진단명으로서 이 용어는 제2차 세계대전시 미육군 정신과 의사들에 의해 처음 사용된 후, 군사보호청(Veteran's Administration)의 실험적 시도를 거쳐 DSM-I에 채택됐고, 이후 계속 DSM-II와 III로 구체화됐다. 유럽 정신과 의사들에게는 미국만큼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미국 정신분석 문헌에서는 피학증(masochism)이라는 용어 안에 동일한 인격 특성들을 대부분 포함했으며, 수동-공격성 환자들을 구순기와 항문기 고착 혼합물의 결과로 본다.
수동-공격성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정신분석에서 시작됐다. 프로이트나 아브라함에 의한 구순성 성격(oral character)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서술에서부터다. 뿐만 아니라 DSM-I에서 사용된 피동-의존성 인격(passive dependent personality)이라는 용어도 수동-공격성과 같은 의미로 인정된다. 인격에서 구순-의존성에 속하는 사람들이 여러 연구를 통해 인정되기 때문이다.
수동, 의존성, 그리고 피동적 인격을 갖는 사람들은 의존성, 염세관, 성에 대한 공포, 자신감 결여, 자기 위주, 피동성, 피암시성 및 인내심의 결여를 보인다는 것이 여러 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들이 일반적으로 모든 정신질환자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특수하게는 모든 인격 장애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해, 이를 진단명으로 사용할 경우 곤란한 문제들이 뒤따른다. 이는 자기애(narcissism)나 마찬가지로 의존성도 모든 인격장애에서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으로 간주한다면 더 확실한 정신과 용어로 사용될 수 있는 점에서다.
1963년 실시된 랭어와 마이클(Langer & Michael)의 ‘미드타운 맨하턴 연구조사(Midtown Manhattan study)’에 의하면, 조사자의 9.8%가 인격장애에 해당됐고, 이들 중 1/4, 즉 전체 조사자의 2.5%가 피동-의존성 인격장애로 진단됐다. 이런 의존성은 여성에서 더 흔히 진단되며, 형제자매들 중 아랫순위 형제들에게 더 흔하다. 반면 조사자 중 0.9%가 수동-공격성 또는 피동-의존성의 행동양상을 나타낸다는 영국의 한 지역조사에 관한 보고가 있지만, 이 결과는 수동-공격성 자체의 유병률을 꼬집어 나타낸 것은 아니고, 더욱이 이에 대한 성별 비율(比率) 또는 가계양상 역시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연구로 인해 알 수 있는 것들은 도박중독이 대개는 대체적으로 소극적인 사람, 내성적이고 의존적인 사람들이 더 관련된다고 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일상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 중 남이 알지 못하는 도박이라는 행위로 자신의 존재를 더욱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3. 도박중독에서 수동-공격성의 유발원인
도박중독에서 수동-공격성의 원인에 관한 이론들은 대개 심리사회적인 관점에 기초한다. 이런 원인이 문화권에 따라 성별, 민족성 또는 기대되는 역할을 근거로 어떤 집단에 의존적 역할이 부여될 수도 있다. 이외에 부모의 양육 방법도 관련성이 있다고 인정된다. 부모들은 어떤 아동이 독자적으로 무슨 일을 시도할 때 이를 미묘한 방법으로 처벌하는 경우도 있고, 아동의 특정한 자율 행동양식도 자율성 때문에 부모와 애착관계를 상실할 위험이 있음을 부모가 아동에게 민감하게 주입시킬 경우 아동이 자율적 행동을 습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동이 자율적 학습경험을 못하게 되면 학대나 매질조차 유대관계를 견고히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점에서 참고 견디는 것이 상책임을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다.
수동-공격성의 원인에서는 얼마간의 유전적 근거도 있다. 고테스만(Gottesman)이 1963년 실시한 일란성과 이란성 쌍생아의 인격프로필에 대한 연구를 보면, 복종성 대 지배성(submissiveness versus dominance) 측정 척도에 있어 일란성 쌍생아가 이란성보다 높은 합치율을 나타냈다. 이런 결과는 유전성이 인정되는 근거도 된다. 그러나 유전 문제는 개선이나 치료를 어렵게 하는 점 때문에 참고할 뿐 별다른 대책으로 실행되지 않는다고 할때 개선 여지가 있는 심리적 특성이 선호된다.
이런 시각에서 우리는 정신분석학에 기대 볼 수 있다. 정신분석학적 이론에 따르면 의존성은 정신 성적 발달(psychosexual development)에 있어 구순기(oral stage)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찍이 아브라함은 구순성 성격에서 의존성이 발달하게 되는 것은 젖을 빠는 기간 중 경험하는 유아적 만족, 부모의 지나친 관용과 관련이 있다고 가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에 이루어진 유아발달에 관한 전망적 연구들(prospective studies)에서는 이러한 가설이 모든 경우에 적용되지는 않음이 밝혀졌다. 성인의 구순-의존성 인격과 연관된 특성들, 즉 구순만족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나 의존성, 염세관 및 자신감 결여 등은 아동기에서 긍정적 또는 애정적 보살핌을 받았던 사람들보다 오히려 부모의 보살핌이 약회됐던 사람들에게 더 발생했다.
수동-공격성의 원인에 대한 전망적 연구는 아직 없지만 여러 특성들을 견줘 생각할 때 심리사회적 원인이 가장 중요하며, 다음과 같은 학습양상에 따라 설명될 수도 있다. 여기는 부모들이 자신의 갈등으로 인해 독단적이거나 심지어 공격적일 경우 아동의 정상적 자기의사 표시를 벌 주거나 차단하고, 아동의 의존적 욕구를 마지못해 부분적으로만 받아주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동의 분노를 직접 표현하기보다 비뚤어진 방법으로 표현하게 되고, 얼핏 봐서는 공손하고 양보적인 압제자에게 무능함을 표시해 음성적으로 응징하는 방법을 익힌다. 이와 같은 행동양식은 전술했던 대로 부모들이 아동들을 취급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사회가 사병이나 미국 흑인들과 같은 소집단을 대할 때도 야기된다.
부모의 행위를 자신에게 돌리는 주된 목적은 궁극적으로 중요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자율성 확립을 원하면서도 부모의 보살핌으로부터 벗어나기 원치 않는 청소년들의 경우다. 이들은 싫지만 간접적인 책략으로 부모에게 어느 정도 관심을 얻을 수도 있고, 동시에 부모에게 괴로움을 줄 수도 있음을 배운다. 이들은 나중에 성인이 돼서도 이러한 전형적 태도가 모든 중요한 권위와의 관계에서 재현될 수도 있다.
이는 나중에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펴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따르지만 그 내면에는 공격성이 잠재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이런 특성은 특히 모든 중독자들, 특히 알콜중독이나 도박중독자들에게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나 도박하는 사람들 중 그렇게 악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4. 도박중독과 수동-공격성의 양상
도박중독자들에게서는 수동-공격성의 특징과 같은 심리적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러한 특성이 공격적 느낌을 나타내는 데는 공포가 이들의 행동의 특징을 이루는 점이다. 공포는 불안의 극치로 안정감이 없는 상태의 반작용이다. 이들은 어떤 관계에서 일어났든 자신의 문제 대부분이 늘 자신을 피동적 입장에 놓이도록 외부 문제로 돌리는 법을 학습한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할 경우 불안해진다. 의지할 데가 없다고 호소하는가 하면 능란하고 효과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사귀고픈 욕구를 나타낸다.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 경우,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꾸준히 해내기를 힘들어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나서 쉽사리 해내기도 한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도박하는 것 외에는 자신의 일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평가로는 상당히 착한 사람들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엄청난 액수의 도박을 했다고 밝혀지면 놀랄 수밖에 없을 정도다. 실제 이들은 다른 사람과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착한 일을 하고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흔히 왜곡된 행동도 한다. 그뿐 아니라 친밀한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불쾌한 느낌들을 대부분이 참을 수 있는 것보다는 더욱더 잘 참아낸다. 이를테면 이들은 그들의 밀착성이 너무 심하게 또는 장기적으로 장애되지 않는 한에서 학대하거나, 성실치 못하거나 혹은 술주정을 하는 배우자라도 이를 잘 읽고 부부관계를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도박중독자들에게 수동-공격성의 양상은 어떤 특징을 갖고 나타난다. 이들의 양상은 그들이 속해 있는 조직체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들은 꾸물거림을 특징적으로 나타내고, 그들의 능력에 알맞은 일을 요구해도 저항하고, 일이 지체된 데 대한 핑계만 찾으려 하고, 그가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잘못을 돌리면서도 의존관계 자체로부터는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대개 자기 의사를 주장하는 일이 없고, 또 자기 자신의 필요한 것이나 욕구를 직접 말하는 일도 없다. 그에게 요구된 일에 필요한 질문을 하는 일도 없고, 억지로라도 일을 끝맺도록 강압을 한다든지 혹은 분노를 자신에게로 돌리곤 하는 그의 통상적 방어책을 제거해버린다든지 할 경우 심한 불안에 빠지기도 한다.
그들은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을 의존적인 위치에 서도록 조종하지만, 그의 수동적이고 피동적 행동은 누가 보아도 남을 응징하기 위함이고, 또 꾸며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잔일거리를 전부 대신해야 하고, 그의 일상적 책임까지도 대신해야 마땅한 것으로 안다. 그들의 친구나 주치의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이들의 잡다한 주장들을 달래기 위한 노력에 얽매이고, 이들이 갖는 밀접한 관계가 평온하거나 즐거운 것으로 지속되는 일도 매우 드물다.
그들은 스스로를 위한 긍정적 만족에 대한 추구보다는 격노감에 더욱 강하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어떤 즐거운 일이 생겨도 그것이 자기가 원하던 것이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이 특징적으로 사용하는 방어들로는 자신에게 돌리는 것(turning against the self)인데, 이를 넓게 해석하면 가학피학증(sadomasochism)도 포함되며 합리화, 그리고 건강염려증 등이 있다. 이런 것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음의 사례를 들기로 하자.
32세의 내과 수련의가 그가 근무하던 병원으로부터 최근 사직권고를 받았다. 그 이유는 그가 출근 시간이나 회의에 빈번하게 지각하고,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고, 할당받은 일을 잊어버리고, 연구과제를 마감일까지 해내지 못하고, 상급자 지시를 따르지 않는 등 제멋대로의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는 도대체 수련을 받고자 하는 동기가 없는 것 같다는 위원회의 판단이 내려졌다. 그러나 그는 이런 사직권고에 대해 심한 놀라움과 분노를 나타냈다. 아마 자기 생각으로는 자기가 힘들고 고된 병원 분위기 안에서, 또 매사에 지나치게 강박적이고 요구만 하는 상급의사 밑에서 자기의 직무를 잘 감당했다고 할 것이다.
그의 아동기 시절을 보면 집안 내에서 두고두고 이야기거리를 삼을 정도로 심하고 지속적인 분노발작의 기왕력이 있었고, 동년배들과의 놀이에서도 항상 우두머리 노릇만 하려 들고, 다른 아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놀 것만 고집하고 그렇지 않으면 전혀 놀지 않았다고 한다. 어른들 특히 어머니와 학교 여교사와의 관계에서도 뾰로통하고, 말 안 듣고, 반항적이고, 흔히 제멋대로 행동했다. 그러다 엄격한 남자 담임교사를 만나 점차 복종적이고 규율적으로 되는가 싶었지만, 매사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것을 고집한다든지 교사의 지시에 분노로 반응하는 것은 여전했다. 학교에서도 머리는 좋지만 괴짜 학생으로 통했고 자기가 싫어하는 교사들에게는 그들의 지시를 고의적으로 이행치 않음으로 골탕을 먹였다. 비난을 받으면 자기만 옳다고 우겨대기 일쑤였고, 자기가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불평하곤 했다.
그의 결혼생활 역시 불행하였으며 그의 아내는 전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잔소리만 하는 여자라 불평했고, 아내는 아내대로 신뢰할 수 없는 고집불통이라 불평했다. 가정생활에서 남편으로서 해야 될 가사일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그만이 책임지고 하여야 할 일조차도 잊곤 했다. 세금고지서가 날아와도 몇달씩 지체하고서야 냈고 외상 술값도 갚는 일이 없었다. 친구관계는 사교적이고 상당히 매력적이었지만, 항상 전체의 의견에 따르지 않고 자기 좋을대로 고집만 부려서 성가신 존재가 됐다. 자기가 원했던 장소가 아닌 곳으로 단체여행이라도 가면 온종일 뾰로통해 있거나 고의로 회비를 잊어버리고 안 갖고 왔다고 하기가 일쑤였다.
이상의 사례를 여기서 치료적 시도를 하기에는 부족하다. 더 많은 절차의 치료가 선행돼야 하고, 경과도 정확하게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 사례는 수동-공격성의 사례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성 결여로 보아야 한다. 다만 여기서는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특성을 위주로 하는 인격을 분석하는 일로 마무리해야 한다. 특히 사회성이 부족한 것이 특징으로 드러나고 있는 점은 더불어 살아가는 현실에서 사회생활 자체에 문제를 보이는 것이다.
이런 분석에서 드러나는 한 가지 사실은 의존성과 수동성, 그리고 공격성이 일치점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의존성이나 수동성이 과거에는 수동-공격성을 가진 여성을 연극성 또는 경계성으로 잘못 진단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수동-공격성 인격은 연극성이나 경계성 인격보다는 현란함이나 극적, 감정적 또는 공공연하게 나타나는 공격성이 덜 나타나는 편이라는 점에서 동일하지 않는 것으로 구분되고 있다.
그런 특성은 그와 관련한 연구조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스몰(Small) 등의 학자는 입원환자를 연구했다. 입원했던 수동-공격성 환자들에 대한 평균 11년간의 추적조사를 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그들 중 54명은 수동-공격성 인격이 1차 진단이었고, 18명은 알콜중독이 수반된 환자였으며, 30명은 임상적으로 우울증에 걸려 있는 환자들이었다. 소재가 밝혀진 73명의 환자들 중 58 명(79%)은 지속적인 정신적 장애가 있었고, 9 명(12%)은 증상이 없어졌다고 평가됐다.
대부분 환자들은 쉽게 흥분하거나, 불안해하거나 또는 우울해 보였고, 신체증상의 호소도 많았다. 다만 32명(44%)만이 직장인으로서 또는 가정주부로서 충분한 자기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책임수행의 태만 또는 자살시도가 흔했지만 다만 한 명의 환자만이 그 사이에 자살했다. 28명(38%)이 병원에 재입원했지만 단지 3명만이 정신분열증으로 밝혀졌다.
이상의 연구조사에서는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한 결과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증상을 열거한 것이다. 부모의 억압에 의해 압도당하다 자신의 의견을 정당하게 표출하지 못한 아동기를 겪은 사람들이 매사에 수동적이거나 타율적이 되는 결과를 의미한다. 그뿐 아니라 이런 사람들은 대개 성장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훈련을 하지 못하고 매사에 자기 위주로 생활하던 것이 성장한 후에는 외톨이와 따돌림을 당하는 등 문제를 보이다 급기야는 정신이상을 보인다. 그러면 치료자는 도박중독자들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들에게 이런 특성이 내재해 있지 않은가 고찰하고 상응하는 치료를 시도해야 한다다. 도박중독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수동-공격성이 치료에서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5. 도박중독에서 수동-공격성의 치료적 시도
도박중독은 수동-공격성의 특성이 있다고 했다. 수동-공격성은 때로는 의존성으로, 수동적이고 타율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양상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소심하거나 내향적인 사람들인 경우가 많고, 자신의 존재를 갑자기 크게 내 보이려는 성향도 갖고 있다. 성장 과정에서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한 자신의 존재 가치감을 요청하는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은 더 많이 인정을 요구하고 자신의 존재가 대단함을 보이려 도박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런 점을 기초로 도박에 빠져든 다음 사례를 치료하고자 한다.
34세의 노총각이 있었다. 그는 조그마한 회사의 경리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서로 결혼하기로 하고 있던 여성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반대의견에 직면해서 갈팡질팡하다 어머니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을 한 후 우울하고 잠도 오지 않아 친구따라 간 도박판에서 점차로 도박에 빠져들었다.
그는 도박하는 상황에서도 여자친구와 헤어지기로 결정하고 나서 바보스러운 자신이 미워지고, 어머니에 대한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이렇게 어머니에게 꼼짝하지 못하다가는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생겼다. 그의 어머니는 가정의 주도권을 잡고 가정사 모두를 좌우하는 여성이었기에 항상 어머니를 두려워하고 줏대없는 자기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한편, 어머니를 존경하고 또 어머니의 판단을 항상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그는 자기 직장에서 자기가 배운 학식이나 능력 이하의 일을 맡고 있었다. 책임지고 어떤 결정을 해야 하고 또 자기 밑에 몇 사람을 거느려야 하는 것이 두려워서 몇 번씩 승진의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사양하고 말았다. 10년 이상이나 같은 상사를 모시고 항상 말썽 없이 자기 맡은 일을 꾸준히 잘 해냈기 때문에 상사로부터 신임은 받는 편이었다.
그의 성장과정은 특이했다. 그는 3녀 1남의 막내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어머니와 누이들로부터 항상 어린애 취급을 받으며 지나친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어렸을 때 심한 분리불안(seperation anxiety)을 경험했는데, 이를테면 어머니가 옆에 없으면 잠들지 못한다든가 학교에 가는데 저항을 나타낸 경험이 있었다. 어렸을 때 제대로 자기주장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어린애 취급을 받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해서 집을 처음 떠나 살았는데, 집이 그리워 1년 만에 중퇴하고는 집밖에서 생활해본 경험이 없었다. 여성과도 잘 사귀는 편이지만 여태껏 어머니와 떨어져 살 자신이 없어 결혼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의 사례는 매우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사람이 도박에 빠져든 과정의 경로를 보여준다. 지나치게 의존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다 보니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펴지 못하고 결혼문제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런 우유부단(優柔不斷)함이 사회에서도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특성은 도박에 빠져들기 쉬운 특성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유형이다. 이런 사례는 다음과 같이 치료할 수 있다.
1) 수동-공격성의 파악
이상의 사례는 수동-공격성의 측면에서 치료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수동-공격성은 상당히 자기 방어적이기에 겉으로는 능동적인 형태나 긍정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는 어렵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치료자는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부정성과 긍정성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 이런 부정성과 긍정성에 대하여 철학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데카르트의 개념이 도움이 되는데, 그는 의식의 내용을 능동적인 상태와 수동적인 상태로 구분했기 때문이다.
능동적인 상태란 의지의 여러 형식들이고, 수동적이란 감각과 인식에 의해 우리들 안에 생겨나는 모든 것, 즉 여러 표상들이다. 또 표상 자체는 정신에 의해서 생겨날 수도 있는데, 이것은 마치 신체를 통해 흐르는 삶의 힘들, 특별한 움직임, 꿈의 표상이나 환각을 통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표상들 중 어떤 것은 우리들의 감각을 자극하고, 외부 대상들과의 관계를 지운다. 이런 것이 때로는 육체와 관련된 배고픔, 목마름, 낮은 단계의 자연적 욕구, 또 따뜻함, 아픔 등의 요인과 관련있는 점에서 정신력과 관련된다.
수동-공격성의 문제는 정신적이지만, 때로 육체적 특성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한 점에서도 유발되는 점은 이들의 욕구를 소홀히 다뤄서는 안됨을 시사한다. 이와 동시에 낮은 단계의 자연적 욕구나 인간 관계에서의 따뜻함을 요구하는 것은 심리 및 정신적 결핍을 인정하는 것임에 착안해 치료자는 이를 존재의 인정이라는 관점에서 칭찬해 주면서 결핍을 충족하는 형태로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상황을 충분히 인정한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우선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달라는 요청을 마음 속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속 깊은 사연이나 상태를 더욱 토로하면서 치료자의 방법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이런 과정이 점차로 치료로 이어질 것은 확연하다.
2) 부정성의 해소
부정성은 그 특성상 공격성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그의 부정성이 어떤 이유로 되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정성의 측면에서 보면 대개 그 어떤 것, 예를 들면 그가 원하던 대로 되지 않은 욕구불만에 의해 축적된 것이든 간에 이미 그의 마음에 부정성이 축적된 현상이 중요하다. 이런 경우 그의 욕구가 합당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욕구불만이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으면 생기는 특성이다.
이를 감안하면 아동이 바라는 욕구에 부모가 가급적 불만을 갖지 않도록 대응해야 한다. 이는 아동의 요구를 반드시 들어주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아동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 아동이 불만을 갖지 않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대응해야 한다. 아동의 요구에 부합할 수 없는 환경인 경우 나중에 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욕구불만을 갖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부정성의 축적과 관련해서는 성장 과정에서 아동이 부모 뜻대로 따르기보다는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아동이 정신적으로는 더 건강한 점이 드러난다. 부모의 요구대로 아동이 성장하기보다는 아동이 원하는 대로 성장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다는 말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동에게 욕구불만이 쌓이면 부정성으로 이행되기 때문이다. 위의 사례에서도 그런 점이 나타나는데, 이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관계로 부정성을 축적한 것이다.
그래서 치료는 그의 부정성의 원인을 알고 그것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나아가야 한다. 이런 점들이 단순한 것 같아도 원인을 알지 못하면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통제하거나 완전히 지배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특성이 표상으로 연결돼 정신력이 되는 점에서 수동-공격성은 부정성의 특성이 내면에서 축적된 상태로 보아야 한다. 더욱이 이들의 부정성이 결혼한 후에도 해소되지 않으면 여전히 부정성의 특성에 압도돼 매달리는 꼴이 된다. 이런 형태가 바로 도박행위로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부정성의 해소는 그의 모든 행동을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것도 중요하다. 부정성을 단번에 해소하려고 하면 실패하기 쉽다. 이런 점이 치료에서 어렵다. 이런 부정성은 대개 그의 주관성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그에게 객관적인 측면을 시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임상경험에 의하면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식으로 납득되면 점차 내담자는 긍정적이 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것은 치료 원리이기에 치료자마다 다를 수 있지만, 부정성 해소를 시도한 치료자라면 그에 따른 효용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3) 지지적 치료
도박중독자에게 지지적 치료가 필요하다. 지지적 치료는 이들의 자아를 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치료자가 그들의 심리에 영향을 주어 자신감이 회복되고, 상황에 직면하여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들의 생활에서 직면하는 상황을 대처하는데 실패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사기를 저하시키고 해결되지 않았던 과거의 갈등상황을 다시 활성화시키므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도박중독자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면 일상의 생활에서도 실패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지배력은 붕괴할 수 있다. 정신분석은 이런 원리를 외상성 신경증에서 환자가 걷거나 말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능력들을 상실하고 유아기의 무력상태로 퇴행하는가를 설명한다. 소아기의 덜 책임적이고 더 안전한 상황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은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으며 생활상태가 힘들어졌을 때 스스로 나타나려 한다.
심리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희망이 거의 없는 왜곡된 자아를 가진 심한 만성환자들이 있다. 선천적 또는 후천적인 약한 자아의 이러한 사례들에서 지지치료는 대개는 환자의 특징적인 자발적 방어를 강화시키려하고 실제적 지도로 도움을 요구하는 환자를 만족시키려고 한다. 열등감은 그들의 근원적으로 추적당하지 않고 위안에 의해 투쟁을 받게 된다. 이때 죄책감은 설명되지 않고 허용적 태도에 의해 완화되고, 불안은 의사가 보호적 역활을 취함으로써 완화된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순전히 지지적인 치료의 효과는 필연적으로 제한된다. 더욱이 그것은 환자와의 장기간의 접촉을 요구하며, 어떤 면에서는 끝이 없다.
이런 지지적 원리를 도박중독의 치료에 적용할 수 있다. 도박중독자들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표상을 정상적으로 발휘하지 못한 사람들일 수 있다. 이런 특성은 연구조사에서 드러난다고 볼 수 있는데, 전술한 스몰(Small) 등의 추적연구 조사에 의하면 수동-공격성 인격장애자들 중에서 의지적 정신치료(supportive psychotherapy)를 받은 환자들이 가장 결과가 좋게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수동-공격성을 가진 도박중독자들에 대한 치료에는 많은 함정이 있다. 이를테면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다 보면 흔히 그들의 병리를 보강해 주게 되고, 반면에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들을 거부하는 것이 된다. 이때 치료시간은 하나의 전쟁터가 되는데 그들은 의존하고 싶어 하면서도 치료자에 대해 동시에 격노감정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드물기는 하지만 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자살흉내(suicidal gesture)는 대상상실이라든지 또는 원인을 잘 알 수 없는 원발성 우울증에서 연유해 나오는 경우와는 달리 분노의 감추어진 표현으로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 약물치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운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심리적인 방법으로 치료가 어려운 경우로 약물치료를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반드시 임상적으로 필요한 때가 아니면 삼환계 항우울증제(tricyctic antidepression)의 처방을 피하는 것이 좋고, 그런 증상이 감소될 때에는 이를 자살목적에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 치료자는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치료자는 도박중독자들에게서 수동-공격성이 나타날 때마다 그러한 행동에 뒤따를 수 있는 결과를 계속해서 지적해 주어야 한다. “당신 스스로를 위해 당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또는 “당신이 다시금 말썽을 일으켰을 경우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와 같은 질문이 올바른 분석적 해석보다도 도박중독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더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6. 결론: 부모의 사랑이 도박중독을 막는다
지금까지 도박중독의 치료에서 수동-공격성의 문제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도박중독자들이 수동-공격성을 가진 특성을 치료에서 초점을 두자는 것이었다. 물론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내재돼 단순히 접근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그중 이런 수동-공격성의 문제에 치중해 치료하자는 새로운 치료적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중독의 특성에서 보면 도박중독은 생각만큼 쉽게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 중독자의 개인적인 특성이나 환경적인 문제, 그리고 성장의 과정과 현재에 처해 있는 가정생활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치료에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이렇다 할 치료기법이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시도를 함으로써 치료의 다른 출구를 찾을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반드시 도박중독에 빠진 경우는 아니라 해도 전술한 내용들이 모두 도박에 빠져들 수 있는 특성임을 감안하여 그 예방적 차원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의 경우에 결혼생활이 그에 상응하는 대응이 일어나지 못하면 얼마든지 도박이라는 중독의 형태로 발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는 성장기의 부모관계와 더불어 원만한 결혼생활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이런 특성을 보이는 사람들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신앙적으로 지도하여 목회적으로 돌보야 할 필요성이 중요시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