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의 ‘중독탈출’ (56)-도박 중독[23] 자기 존중감을 활용한 치료
도박중독은 이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때가 됐다. 이제까지 치료자 중심의 방법이었다면 이제는 도박중독자를 위주로 해야 한다. 이런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자기 존중감 활용법이다.
자기 존중감 활용법이란 도박중독자가 가진 존재의 긍정적 특성을 활용하는 것으로 도박중독자의 존재감과 자기 확신에 찬 신념을 배양하고, 그의 양심에 호소하거나 스스로 자신을 조절하는 방법을 강구한다. 치료자가 아무리 치료 방법을 제시하고 권유해도 도박중독자가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면 치료 효과는 반감되기 때문이다.
1. 자기 존중감 활용과 도박중독 치료
최근에 자기 존중감(self-esteem) 이론이 각광받고 있다. 자기 존중감은 자신이 가진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귀히 여기는 특성이다. 자기 존중감은 사람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자기 존중감은 반두라(Bandura)에 의하면 개인이 결과를 얻는 데 필요한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신념이다. 이런 자기 존중감은 주어진 목표달성에 필요한 행동 과정들을 조직하고 실행하는 능력에 대한 개인의 신념과 관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자기 존중감은 자기의 능력에 대한 신념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기술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개인은 자기 자신을 확신하는 신념과 기술을 갖고 과제를 수행할 때 수행의 결과가 유발되기 때문에 수행 자체와 그 결과는 구분되는 점이 특이하다.
반두라는 이러한 자기 존중감은 성공경험, 대리적 경험, 언어적 설득, 생리적 상태 및 정서적 상태와 같은 네 가지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고 봤다. 개인의 성공경험(enactive mastery experiences)은 존중감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실패경험은 존중감을 훼손하는 점에 바탕을 둔다. 대리 경험(vacarious experiences)은 존중감을 증진시켜서 자신감을 향상시키고 정보를 제공하며, 상황에 대한 예측성과 통제가능성을 시사한다. 성공감과 대리 경험 외에도, 중요한 과제나 역경을 극복해야 할 때 주위 사람들의 언어적 설득(verbal persuasion)이나 격려는 존중감을 증진시킨다. 긍정적인 피드백이 제공될 때 존중감과 수행이 증진되고, 부정적인 피드백이 제공될 때 존중감과 수행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생리적 상태나 정서적 상태(physiological and affective states)는 자기의 능력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에 자기의 생리적 상태에 대한 지식과 주위 사람들의 인식 평가가 각성된 상태에서 긍정적인 촉발자로서 또는 부정적인 자극제로 작용한다.
이런 자기 존중감은 도박중독의 치료에서 상당히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자기 존중감이 치료를 받는 도박중독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느끼고, 사고하고, 스스로를 동기화시키며, 행동하는지에 영향을 끼치기 점 때문이다. 이런 작용은 그들의 정신적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매개 과정으로 인지적 과정, 동기적 과정, 정서적 과정, 선택적 과정을 거쳐서 이뤄진다. 물론 이들의 과정은 그들의 행동에서 계속 자기를 조절하는 과정에 독립적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상호 작용을 전제로 한다.
자기 존중감이 성공적으로 기능한다면 중독자들은 스스로의 의미를 창조하고 그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삶의 주체로 환경적 자극과 변화에 대해 피동적인 반응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 존재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여기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도박중독이 그들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이지만, 단순히 그들의 신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 더 나아가 영적인 건강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는 신체적으로 건강하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운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 점에서 드러나는 객관적인 지표에 의해 모든 삶이 결정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 행동 결정요인은 일방적 영향이 아니라, 개인적 요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진다. 개인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선택하고 창조한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용기를 주는 하나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치료자가 환경 앞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자신의 삶에 능동적 주체임을 인정하고 변화의 개인성을 수용하기를 촉구할 이유이기도 하다.
2. 자기 존중감과 도박행동의 중단
도박행동은 특성적으로는 행동의 다양한 분야 중 하나다. 물론 행동이란 행동을 유발하는 심리적 요인을 포함하는 구체적인 용어다. 인간이 행동하는 동기나 변인은 정신의 역동 속에서 어떤 작용을 한 결과로 본다. 물론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행동의 개인차는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기에 인간 심리와 행동 그리고 환경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남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초기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유인가가 인간을 행동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지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에게 분명히 이득이 있어도 그러한 행동을 선택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이유를 남김없이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인간의 행동이 유인가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매우 복잡한 매커니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심리학은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는 전통심리학적 패러다임의 위기를 지적하고, 이러한 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상호작용모델(transactional model)을 제안하기도 하는 것이다.
상호작용모델은 특성상 행동 변화에서 효과적이다. 이는 행동 차원에서 개인적이고 사회적이며 문화적이고 시간적인 경계를 초월하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 행동의 법칙을 찾는 선형모델(linear model)에서 벗어나, 다양한 과학적 방법을 토대로 인간의 의식과 의지, 그리고 맥락과 의미의 영향을 포함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인간의 행동은 단지 환경에 반응하고 상호작용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자기의 욕구에 맞게 새로운 환경을 창조하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선형적 접근 방법(top-down linear approach)은 인간 기능에 대한 보편적인 법칙을 탐색하기 위해 채택한 자연과학적 연구방법으로서, 이러한 심리학의 목표는 독립변인과 종속변인 사이의 객관적이고 추상적이며 보편적인 관계를 발견하는데 있다. 그런 이유로 의식, 작인(작인, agency), 의미, 의도와 같이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측면들은 오차로 고려돼 연구설계에서 제거되는가 하면, 불안과 동기, 정서와 같은 심리적 요인들은 매개변인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모델구축적 접근방법(bottom-up model building approach)은 작인에 특징을 나타내는 것으로 의미 목표를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설명하는 중심적인 요인으로 다룬다. 이런 점에서 생각하면 자연과학에서는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를 분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인간을 다루는 학문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인간은 그러한 탐구의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반두라도 작인(agent)으로서 인간의 생성능력을 강조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심리 행동양식에 관심을 가졌다. 이를 반두라는 이중 인과모형(dual causal lingkage)으로 표현하였다. 능동적인 삶을 구성하는 인간에 대한 관점은 그의 사회인지이론 틀 속에 용해돼 있으며, 여기서 자기 존중감 개념은 인간의 이러한 속성에 대한 철학을 가정하고 있다. 만일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 대해 수동적으로만 반응한다면, 의미를 갖는 의지의 자기조절 창의성과 같은 인간 심리가 산출해 내는 개념들은 그 진가를 발휘하기 어렵다.
이런 행동 이론을 기초로 하여 치료자는 도박중독도 행동이라는 차원에서 그 중단이 가능함을 가정할 수 있다. 도박중독자들은 자기 삶에 미치는 사건들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러한 노력에 의해 그들은 더 바람직한 미래를 실현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미래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본다.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동에 의해 바람직한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들은 아무렇게나 행동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존중감에 대한 신념은 행동의 주된 근원이며, 그들의 삶은 존중감에 의해 유지된다. 자기 존중감은 행동의 선택과 지속에 영향을 미치므로, 그들의 도박행동 이해를 위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자기 능력에 자신감이 없을수록 어려운 환경에서 쉽게 포기하며, 이와 반대로 특정 과제에서 자기 존중감이 강할수록 많은 노력을 투입하고 그러한 행동을 지속하는 행동도 길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존중감의 원리가 도박행위에서 실험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기업가들에게서는 효용성이 입증됐다. 기업가들의 일반적인 특성은 성공적인 수행, 즉 4년 동안의 판매나 고용, 그리고 이익의 증가와 관계가 적었지만 자기가 성취하기를 바라는 것에 대한 계획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강한 자기 존중감이 있는 기업가들은 다른 차이를 보였다. 그들은 점차 높은 목표를 설정했으며, 혁신적인 생산전략과 마케팅 전략을 제안했고, 기업을 크게 성장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원리가 기업가들과는 전혀 다른 도박중독자들에게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문이 든다. 그러나 어떤 것을 성취하려는 관점에서는 기업가나 도박중독자들이나 공통점이 있는 측면에서는 적용이 가능하다. 물론 이런 원리 시도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일어날 수 있다. 더구나 도박중독자들이 치료받는 것을 스트레스로 여긴다면 재능을 충분히 사용할 기회를 제한받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는 그들이 수행해야 할 도박중단의 과제를 부담스럽고 그들의 능력을 초과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자기 능력을 넘어서는 것으로 인식한다.
치료자는 도박중독자들을 성취 욕구가 강한 사람으로 보는 것도 좋다. 다만 그들이 잘못된 목표를 정하여 매진한 것이 문제였음을 감안하면 된다. 그들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표찰을 붙이고 치료하려는 자세보다 존재의 인정을 내세워 긍정적으로 치료하는 자세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치료자는 이런 점을 고려해 그들에게 도박 행동을 갑자기 중단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점차 그리고 단계적으로 이해할 것을 유도해야 한다. 쉬운 행동은 점차 더 힘든 행동도 가능하게 만드는 점에서다. 이는 작은 행동이 나중에는 큰 행동으로 이어짐을 기대하자는 것이다.
3. 양심의 촉구를 통한 도박중독의 치료
양심은 자기 존중감의 중요한 요소다. 사람은 그 무엇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자신의 양심을 믿는다”고 말한다. 양심은 존재 가치를 느끼게 만드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양심을 갖고 살아간다. 도박중독자들도 양심을 갖고 있다. 여기서는 그들에게 양심의 촉구를 치료의 방법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더 양심적인 적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더 많이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고 있는 점에서 양심은 행동의 결과적 현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심리학과 행동과학에서는 도박중독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피드백과 그 방법들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물론 그런 방법들이 반드시 효과적이냐 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 않지만 때로 기대 이상의 효과를 올리는 경우도 있어 무시할 수만은 없다. 그런 이유로 여기서는 자신의 통찰을 자기 조절과 통합할 수 있는 올바른 행위나 양심적 행위에 대한 세 가지 접근법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하나의 접근은 그리스의 철학적 관점에 뿌리를 두는 것으로, 그리스 철학에서는 인간의 윤리체계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그리스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윤리적 사고가 일찍부터 올바른 행위를 통해 양심적 체계를 지향했는지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양심을 고대의 영성적 관점에서 보는 것인데, 특히 이집트 사막에 살았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금욕생활은 이후 수도원과 영적 수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마지막으로는 자기조절 이론으로, 양심을 현대 심리학의 한 구성개념 속에 통합하고자 한다. 이런 관점은 다음의 세 가지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양심의 기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재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 유사하고 타당한 양심의 목록을 제시했다. 그는 양심이 “양극 사이에서 평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믿었다. 양심은 지나침과 모자람이라는 두 가지 양극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관용은 낭비와 인색함의 중간에 있으며, 자존심은 허영심과 지나친 겸손함 사이에 위치한다. 현대 심리학이 정서(감정)의 중요성을 발견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감정이 양심적 행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이 양심적 행위에 반하는 강한 충동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는 본능적인 정서의 반응을 중요시한 이유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그는 “본능적인 정서적 반응이 윤리적 원리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감정이란 행위의 양심의 특성(선함)을 판단하는, 가장 먼저 일어나는 첫번째의 피드백 체계이기에 양심은 어떤 특정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특정한 정서를 경험하는 습득된 경향성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감정이 때로는 양심을 주관하는 특성으로 보는 점에서 긍정적인 감정의 자극은 올바른 양심에 의한 행동을 촉발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든다. 이는 치료자가 도박중독자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자극한다면 올바른 양심의 수행으로 인한 정당한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희망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양심적 행위는 우리에게 올바른 감정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윤리적 체계와 달리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에 무관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행동을 유발하는 양심과 감정은 도저히 나눌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양심은 양극 간에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열정이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예가 필요한데, 양심적 차원에서 본 자존심이나 자부심의 예를 들 수 있다. 오늘날 노벨상은 우리 시대에 하나의 우상처럼 되었다. 이런 우상은 엄청난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겠지만 이때 자부심은 과시나 허영 등을 드러낼 수 있는데, 이때 수상자의 양심은 자만심의 극단과 자신을 업신여기는 정도의 겸손함의 사이에 있어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는 물론 하나의 원리가 발견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양심은 상황에 알맞은 정도의 감정을 의미하지만, 때로 이 알맞은, 적절한 정도에는 엄청난 강도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도박중독자에게 올바른 양심을 촉구하면 올바른 감정이 일어나 그에 상응하는 행동이 유발될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셋째로 양심의 기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양심 간에 통일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통일성의 한 가지 근거는 양심이 실용적 추론(practical reasoning)이라 불리는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점이다. 이때 실용적 추론이란 일련의 행동이 주어진 상황에서 ‘관용’의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만약 실용적 추론으로 어떤 상황에서 ‘관용’의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상황에서 ‘정직’이 의미하는 바를 분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관용은 그 특성상 긍정적인 정서, 즉 긍정적인 양심을 작동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치료자가 도박중독자들에게 내재된 정직을 인정하는 정도의 관용적 자세를 보인다면 그들은 자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보인다. 그러면 모든 양심적 행위는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도박중독자들에게도 실용적 추론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며, 각각의 양심은 전체적인 선(善)에 기여하게 된다는 원리가 옳다는 것이 입증된다.
넷째, 양심의 행복을 향한 지향성이다. 양심은 불행을 지향하지 않고 행복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양심은 인간이 주도하는 것이지 규범에 의해 주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현대적 윤리체계가 요구하는 만큼 그렇게 규범에 치중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윤리는 소크라테스의 관점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인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이때 선행은 습관이었고, 인간으로 하여금 행복을 지향하고 행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위를 하게 만드는 습관이었다. 반면 죄악은 그와 정반대로 규범이 한 공간을 차지하지만, 규범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않는 이상 무조건적으로 규범을 따르는 것은 양심적인 진보와는 거리가 먼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규범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양심을 획득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양심의 특성은 도박중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들이 사람인 이상 양심을 지향하는 점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도박을 통해 행복을 획득하려는 사람으로 보는 점이 다를 뿐이다. 치료자가 그들을 양심을 통한 행복을 지향하는 사람으로 대할 때 그들은 점차 더욱 올바른 행위를 하는 쪽으로 발전될 것이다.
4. 수도자의 생활과 도박행동의 교정
양심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서는 일정한 모델이 필요하다. 이런 모델에는 단연 수도자들을 들 수 있다. 수도자들은 양심의 수련을 통해 올바른 행위를 하도록 훈련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올바른 양심의 사용으로 누구의 간섭 없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의 기준을 갖고자 했다. 이는 정당한 행동으로 이끄는 동인으로 양심적 접근의 특이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방법은 양심적 치료를 위한 모델이 되는 점에서 수도자의 생활에서 그 근본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중독자는 수도자가 아니므로 그들과 똑같이 할 수는 없지만 많은 깨달음은 될 것이다. 이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수도자의 내적 성찰이다. 수도자는 극도로 황량한 환경 속에 홀로 살면서 높은 수준의 내적 성찰을 행했고, 그 결과 충동 통제에 대한 많은 통찰을 이뤘다. 많은 수도자들은 육체적 욕구를 통제해야 영적으로 완전해질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래서 자기를 부정하고 물질적 욕구를 박탈하는 극단적인 수렴에 몰두했다. 이런 정도의 역할 모델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자기조절 방식 역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대 그리스의 변증법을 보완, 계승하고 있다. 이들은 믿음, 소망, 사랑과 같은 종교적 덕목을 포함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양심 목록을 보다 풍성하게 했다. 이는 디오니소스적 충동과의 싸움에서, 영성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죄악(deadly vices)' 목록에 살을 붙였다. 흥미로운 것은 원래는 사악한 죄악들이었는데 이후에 자만심과 허영심이 하나로 묶여졌다는 점이다. 에스키모인들에게 눈과 관련된 여러 가지 어휘가 있듯 자만심의 위험에 민감한 수도사들 역시 이를 지칭하는 용어가 여러 가지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둘째, 자기조절 전략이다. 자기조절 전략은 마치 “심층심리학에 익숙하고, 현명하며, 경험이 풍부하고, 공감적인 인지행동 치료자”에 의해 개발된 전략과 유사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지행동 치료자들이 ‘사고(thought) 문제’를 이용하여 자기조절을 하는 법을 가르쳤으며, 도박이 죄악이라는 것 대신 도박은 ‘마음을 다루는 훈련’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이 다르다. 자기조절 전략은 오늘날 인지치료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인들이 우울을 죄악에 포함시켰다고 볼 수 있지만 프로이트가 예견한 대로 슬픔이 분노와 연결돼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며, 이는 인지치료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마음의 비합리적인 전환(irrational tum of the mind)'의 결과로 발생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인지치료에서는 우울증의 ’비합리성‘이 부정적이고 자동적 사고를 경유하여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우울을 유발하는 도식(depressogenic shemas)이 사건을 부정적으로 보는 성향을 야기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셋째로 사고의 훈련이다. 사막의 수도자들은 인지치료와 유사한 전략을 많이 사용하였다. 에바그리우스 폰티구스(Evarrius Ponticus)는 각각의 죄악에 고유한 도식을 추적하여 파고들어갔다. 부정성의 바탕에 깔린 도식 혹은 비합리적 사고를 가려내기 위해 ’하향식 화살표‘ 방법과 유사한 접근법을 사용한 결과, 에바그리우스는 폭식이 병이 생길 것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이 있다고 간주했다. 다른 많은 부정성 역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두려움에서 기인한다는 ‘하찮고 무용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주님이 악마로부터 받은 광야의 시험인 ‘유혹’의 핵심은 생각의 훈련으로, 우리 자신을 현실적 조건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도록 만들어,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필요도 없는 문제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모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수도사들의 계획과 두려움 및 사고 훈련은 이후 16세기가 지나서야 탄생한, 오늘날의 인지행동치료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재앙적 사고(catastrophizing)의 정의 및 해결방법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 신기하다.
넷째, 감정과 행동의 통제다. 사막의 수도사들은 감정과 행동을 통제하는 습관을 키우는 데도 여러 가지 비효율적인 전략들이 있음을 발견했다. 여기에 소개한 자기조절 모델과 관련해 사고와 감정을 통제하는 데 비효과적인 방법들이 있다. 수도자는 모든 시간을 영적 반성에 쏟아붓고 싶은 열망에도 자신의 생각을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초기의 영적 지도자 성 안토니오(St. Anthony)의 경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부와 값비싼 음식, 성(性)이나 명예 같은 욕망을 버리기 위해 주류 사회를 버렸지만 사막 한가운데서 두려움과 공포가 결국 그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최악의 전략이 원치 않는 생각을 억지로 통제하려는 시도임을 깨달았고, 이것이 오히려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생각하게 된다는 ‘백곰’ 효과를 촉발시킴을 알게 됐다. 그는 밀밭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마음을 밀과 잡초가 함께 자라는 밀밭으로 생각하도록 했으며, 성서 구절의 은유를 사용해 영적 사고로서의 밀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괴롭히는 생각들인 잡초를 뿌리뽑도록 가르쳤다. 이는 실로 사막의 수도자들은 모든 죄악의 뿌리에 과도한 자기애가 있음을 보게 함으로써 양심의 이해를 증진시켰다.
도박중독자들이 수도자처럼 금욕이나 극기의 훈련이 불가능하고 또 그렇게 시도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특별한 목적을 갖고 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경우 수도자들의 자기훈련이 참고가 될 것이다. 수도자들의 내적 성찰, 자기 조절 전략, 사고 훈련, 감정과 행동의 통제 등은 일상의 생활에서도 정상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는 실제로 활용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박중독자들이 진정으로 자신이 도박을 중단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할 때는 이런 유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특별한 수도자들만이 하는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기에 전혀 실현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5. 성격의 인식과 도박중독의 치료
도박중독자들의 자기 존중감에는 성격도 해당한다. 성격은 개인이 타고난 특성인 점에서 성격 인식은 도박중독 치료에 필요한 부분이다. 성격이란 개인 내면에서 행동을 유발하는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성격 인식은 그 특성상 자기조절 훈련에 해당한다. 실제로 자기조절 이론에서는 도박의 치료 범위에 성격을 포함시키고 있다. 아직 성격의 인식을 위주로 한 치료법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지만 도박으로부터 회복되는 훌륭한 사례들에게는 이러한 의도와 계획들이 포함돼 있다. 이런 방법에서는 도박중독자들의 개인적 성격을 발전시키는 방법에 중점을 둔다.
1) 성격의 분석
성격은 어떤 상황에서도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특성이 있다. 이는 도박중독자의 양심의 인식에 앞서 성격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성격의 분석에는 성격발달을 반영하는 행동이나 그에 따른 결함을 파악하는 것이 일차적이다. 여기에는 적업기록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여러 가지 주제들을 치료계획에서 긍정적인 초점을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성격의 결함을 유발하는 것을 위주로 시도해야 한다.
작업기록지에서는 성격의 특성을 기술해야 한다. 성격의 특성은 일관되게 개인의 행동을 유발시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특히 성격적 관점에서 양극단에 치우치는 두 가지의 성격적 결함, 이를테면 잘못된 죄책감을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용기의 양극단에는 경솔함과 소심함이 포함되기에 도박으로부터 회복되는 과정에서 자기조절에 필요한 대표적인 행동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절제력도 빼놓을 수 없는데, 도박중독은 다른 중독질환과의 공병률이 높고, 음주나 마약, 성문제 및 섭식 문제를 무시할 경우 재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독자에 따라서는 목록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 선행을 선택할 수도 있기에 선행과 성격적 결함을 추가할 수 있도록 빈칸도 남겨 놓아야 한다. 작업기록지에는 또한 성격적 결함과 관련된 ‘도박의 유혹이나 함정’을 기술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어떤 결함이든지 간에 도박의 소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용기라는 주제에는 대개 도박중독자의 경솔함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은 경솔함 때문에 위험한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도박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그들이 만약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면 대인관계를 넓힐 수 있는 기회나 생활의 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칠 수 있다. 이론 과정에는 그들의 낮은 자아존중감이나 죄책감, 그리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즉 회피적인 목적으로 도박을 하게 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각각의 작업기록지에는 중독자가 자신들의 성격적 결함을 이해할 수 있는 실례를 제공하고 있으며, 치료를 받는 중독자와 치료자가 어떤 행동을 감소하거나 제거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때 치료자는 양심의 정의를 제시하고 어떻게 자신이 이를 개발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이런 질문을 통해 중독자는 자신들의 양심과 함께 내면의 깊은 의식을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을 기대한다.
성격의 분석은 자신의 존재를 깊이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임상 경험에 의하면 그들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갖지 못한다. 자신의 행동을 단순히 잘못되었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무엇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생각보다 둔한 편이다. 이런 특성은 그들의 부정성 때문이다. 내면에 부정성이 축적되면 옳은 것이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특성이 내면에서 작용되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지 못한다. 치료자는 이런 점을 고려해 그들의 성격적 결함이나 양심과 관련돼 유발되는 행동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2) 성격의 개발과 실행
심리학에서 성격은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이런 성격을 두고 더 구체적으로 인격과 구분하기도 하지만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개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도 이런 성격과 인격을 구분할 때 성격은 타고난 선천성을 인정하고, 인격은 개발이 가능한 후천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인격은 나이가 들어가고 지식이 늘어나면서, 경험이 많아지고 직위가 높아짐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라면 성격은 그와 상관없다고 보는 것이다. 자기조절 이론에서는 자기통제가 근육처럼 작동하기 때문에 너무 과부하가 걸릴 가능성도 있다. 중독자에게 다뤄야 할 성격적 문제가 많다 하더라도, 중독자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너무 많은 노력과 열정을 들이지 않는 조심성과 분별이 필요하다. 지나친 열정은 중독자가 치료자와의 협동적인 작업을 회피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무엇이 유용하고 필요하며 가능한지는 치료자와 함께 결정해야 할 문제다.
치료자는 중독자의 한 가지 성격의 특성을 확인하면 그 다음 단계에는 자기감찰(self-monitoring)이 필요하다. 고전적인 영적 텍스트에서는 통제이론이 강조하는 만큼이나 양심의 특성을 발전시키는데 자기 감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매일매일 성격을 점검하는 것(daily examination of conscience)’의 개념을 도입하여 작업기록지에서 성격적인 목표를 구체화한 다음, 아침에 한 번 그리고 밤에 한 번 자신이 그날 이행한 것을 돌아보도록 요청한다. 이런 식으로 중독자는 기준을 따르게 되며, 성격의 특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가능한 상황들을 예측하여 마침내 자신의 경험을 반성해볼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 모두가 통합적인 치료적 계획과 연계돼 있다. 중독자는 도박을 유발하는 성격적 특성이나 문제점을 확인하고 그것을 다스릴 수 있으며, 나아가 도박 유혹에 대항하는 특정한 행동목표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일상적 성격의 특성 알기는 삶의 기준을 도박자의 마음의 맨 앞에 혹은 중심에 위치하도록 해준다. 이를 종합하면 이러한 발달단계들은 자기조절을 증진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삶의 기준과 대인관계 기준을 내면화하는 양심의 힘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치료자는 중독자를 강압하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심리학적인 수준에서 ‘올바른 행위’를 생각하도록 계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은 양심적인 노력을 영적인 체계로 통합하고자 하는 중독자의 목표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점검 과정은 중독자를 대단히 힘들게 만든다. 그러나 작업기록지의 질문들은 사실 회복에 초점을 두기도 하지만 동시에 즐거운 활동과 의무 사이의 균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인생에서 ‘원하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간의 균형을 주장하는 재발방지 모델에서 빌려온 것이다. 과거에 중독행동의 과거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실천을 과도한 부담으로 느끼면서 지나친 의무에서 탈출하기 위해 재발로 발전할 수 있다. 실천 목표 안에서 일상적 반성을 실천하는 프로그램을 지켜나가다 보면, 충만한 삶이 중독된 삶과는 완전히 다른, 그 반대에 있는 것임을 배워나갈 것이다.
6. 자기조절과 도박행동의 조절
자기조절 방법은 상담의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추세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이 있다 해도 그것은 치료받는 내담자의 자기조절 문제로 귀결되는 점 때문이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이 자기조절 방법을 발전시키면서 한 가지 중요한 변인으로 성격을 포함시키고 있는 점에 놀랄 것이다. 심리학의 뿌리는 철학이었고 심리학은 그 태동기부터 철학으로부터 분리되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경험적 방법론과 결정론적 과학의 활용을 크게 강조했다. 임상적 영역에서도 심리학은 종교적-성격적 관심을 신봉하는 입장을 탈피했고, 가치중립적이고 비판단적이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정통성이 있는 주류 학술지의 한 뛰어난 연구에 의하면, 오늘날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자기조절 이론 역시 적응적인 인간 기능에 필요한 중요한 특성들이 무엇인지 확립하기 위해 성격에 관한 고대의 개념들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자기조절 이론에서는 성격의 특성을 ‘사람들이 조화롭게 함께 살 수 있도록 고안된 문화적 구조’로 본다. 성격의 특성이란 인간이 함께 어울려 살도록 촉진하는 양심적 규범의 내면화를 의미하는 점에서 어느 정도 양심도 포함하고 있다. 양심이 없다면 사람들은 우선해야 할 사회적 선행은 제쳐두고 개인적인 자기 관심사에만 몰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격을 발전시키려면 핵심적인 열쇠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자기통제다. 십계명과 같은 범우주적인 양식은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자기통제가 필요한 행동들에 어떠한 것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와 유사하게 사악한 죄악 역시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양심적 실패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자기조절 이론의 틀에서 볼 때 자기통제는 ‘성격을 숙달’하는 것이며, 이는 자신의 개인적 관심사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보다 큰 사회집단에 소속됨으로써 지켜야 할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중 어떤 것은 성격의 숙달이 강점이기도 하지만 제한된 자원일 수도 있다. 만약 성격이 근육처럼 기능한다면 훈련을 통해 기술을 증가시킬 수 있다. 나아가 성격을 숙달하는 데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즉 사람들에게는 기준이 필요하며, 이러한 기준과 관계하여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감찰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기준에 맞게 자신의 행동을 개선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성격이나 양심을 중요시한다는 것이 현대의 시대적 흐름과는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다. 오늘날 “사회적 관계의 유대와 안정성 감소”는 타인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려를 촉진시키는 정서적 유대감을 약화시켰다. 죄책감은 대인관계의 손상을 복구하고 회복하며,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러나 사회적 네트워크가 축소됨에 따라 우리가 죄책감을 느끼는 범위는 점점 더 좁아지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이익만 극대화하도록 하였으며,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럴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자본주의는 보편적인 종교적-양심적 체계가 없기 때문에 자기(self)가 모든 양심적 가치의 기준이자 근원이 되었다. 자기-충족(self-fulfillment)이나 자기-실현(self-actulization)이 양심적 결단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자기통제 모델과 충돌하고 양립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과거에는 자기통제가 양심의 특성의 토대였지만 현대에는 자기-확대(self-aggrandizement)가 가치기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만일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자기 존중감을 유지하려 한다면, 위험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저지를 위험률이 높아진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중독현상이나 자기 패배적인 행동패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자기중심성의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자기를 조절한다는 문제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정상적인 사람들도 자기조절이 이뤄지지 않아 여러 실수를 유발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도박중독자들이 자기조절이 가능할까에 대해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나 치료자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하면 치료를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치료 원리는 모든 가능한 것, 특별히 존재의 변화 가능성을 믿고 시도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치료는 가능성의 연속이요 그에 따른 실현을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치료자가 치료에 성공했다면 이는 누구보다도 도저히 불가능한 것에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고 치료에 도전한 의지와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7. 결론: 그들의 존재 가치감이나 좋은 특성들을 인정하면서 치료하기
지금까지 우리는 자기 존중감을 위주로 하는 도박중독 치료를 시도했다. 이런 자기 존중감이란 존재의 가치감에 해당하면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상당히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도박중독자들이 가진 존재에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사용해 치료하자는 의도였다. 이런 시도는 치료자의 치료적 한계라기보다는 그들이 갖는 존재의 긍정적 가치를 인정하여 그것을 치료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것이 중점이다. 다른 어떤 치료 가치가 수단, 그리고 방법들보다 그들이 갖는 장점을 살려 치료한다면 더욱 효과적이라는 점에 착안한다.
자기 존중감의 치료적 방법은 그들을 잘못한 사람으로 표찰을 붙이는 것보다도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치료하려는 긍정적인 관점의 일환이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는 존재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장점으로만 된 사람이 없고 단점으로만 된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좋은 사람’이라 말하고,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나쁜 사람’으로 평가한다. 이런 것은 정확하게 분석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때는 아마도 그 사람의 장점만을 보았을 때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단점만을 보았을 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치료에서 적용한다면 도박중독자들이 인간으로서 가진 존재에 대한 가치감이나 좋은 특성들을 치료자가 인정하여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들을 잘못한 사람들, 사회에 해악을 끼친 죄인으로만 몰지 말고, 그들이 가진 점을 인정하여 그것에 호소해야 한다. 저자의 임상 경험에 의하면 이런 현상들이 자주 발견됐다. 내담자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대해 상담하기보다는 귀중한 사람으로 혹은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으로 대할 때 더욱 상담의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귀중한 사람으로 여김을 받고자 하는 심리는 본능으로 보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했더라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형편없는 사람으로 대우받으려 하지 않고, 잘못을 했음에도 귀중히 여김받는 존재로 대우받고자 한다. 이런 현상은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경험에서 저자는 “인간은 모두 인정받지 못한 병”에 걸린 것이라고 발견하게 됐다. 그러면 그들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그런 방법을 강구할 때 오히려 치료 효과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부정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런 긍정의 관점에서 양심, 성격, 자기조절 등이 중요한 치료적 관점으로 적용됐다. 치료자에게 중독자들을 더욱 긍정적인 관점으로 대할 것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