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의 ‘편집증’ [11] 임상적 양상(3)
제11장 편집증의 임상적 양상(3)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신뢰의 문제에 결여를 보인 것이 편집증이라고 했다. 편집증은 신뢰의 결여로 인해 타인에 대한 의심을 바탕으로 하는 심각한 증상이다. 그런데 이 편집증상은 정상인으로부터 정신병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정신 과정이다. 다만 그 증상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어느 때는 지나치게 상대방을 의심하는 증세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편집증은 잘 치료가 되지 않는 임상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치료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가 치료자까지도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임상적이 양상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치료에 대응하기가 용이해진다.
1. 내적 갈등과 투사
편집증은 내적 갈등과 투사를 특징으로 하는데, 이러한 입장은 정신역동이론이다. 정신역동이론은 편집증이 피해적 사고, 과대망상, 색정망상, 질투망상, 자기애성 퇴행 등의 무의식적 욕구에 기인하다고 본다. 이러한 정신역동적 설명은 특히 동성애적 욕구를 가정하는 점에서 많은 비판에 부딪쳤지만, 투사와 부인(否認) 등 심리적 기제들이 편집증과 관련되는 이론에서는 타당성을 인정받는다. 여기서는 카메론의 입장을 중심으로 편집증의 갈등과 투사의 문제를 다루기로 한다.
1) 편집증을 촉발시키는 기제
편집증을 일으키는 기제들이 있다. 이는 편집증 환자의 심리에서 상호적으로 작용하여 어떤 형태로든 편집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작용한다. 그 기제들에서 분리는 일차적인 기제다. 분리의 기제란 한 사람에 대해 상반되는 양가감정을 느낄 때 갈라지는 경향이다. 이로 인해 편집증 환자는 동일한 대상에 애정과 증오를 동시에 느낄 경우, 둘을 통합하지 않고 완전히 분리시킨 후에 모든 악한 것을 외부에 투사함으로써 자신은 항상 희생자 역할을 하면서 내적인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다. 이런 완화된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들은 경직된 사고와 방어를 유지하게 된다. 자주 경험하게 되어 조직화하는 경우 분리는 그들의 중심적 방어기제가 된다. 이렇게 같은 대상에 대한 분리된 감정을 통합하려면, 환자에게는 증오가 사랑을 억누르고 파괴시키리라는 공포를 느끼면서 참을 수 없는 불안이 나타난다. 이제 그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살아가려면, 자신의 모든 ‘나쁜 부분’을 분리시켜서 그것을 외부의 인물에 투사해야만 한다.
다음으로 의심의 기제다. 의심의 기제란 타인에 대한 신뢰의 결여에 근거한다. 편집증 환자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경험이 불연속적이어서 단지 순간적인 지각만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세계는 신뢰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하다. 실로 그들은 그런 부정적 확신을 가지고 끊임없는 불안 상태에서 살고 있다. 또한 타인에 대한 경험이 안정되고 지속적이지 못하여 관계에 대한 안정적인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사람들을 의심하고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공격자들로 가득하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실수가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이를 자신의 신념을 재확인하는 증거로 삼는다.
2) 불완전한 자아기능
불완전한 자아기능도 전술한 편집증을 유발시키는 기제이다. 불완전한 자아기능은 그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현상이다. 편집증 환자들의 부정확한 해석은 그들의 불완전한 자아기능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현실경험에 대한 지각과 감정, 그리고 사고(思考) 사이를 중재하는 자아의 기능이 불완전하여 지각과 느낌 그 자체를 마치 실제인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세상에 대해 부정확한 해석을 한다. 이때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는 편집증의 두 가지 주된 방어기제로 작용된다. 이들은 투사를 통해 내면에 있는 위협을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서 위협을 외재화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아주 병리적인 방법으로 속박함으로써 통제한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욕구는 편집증의 핵심인 매우 낮은 자아존중감을 반영한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 보면, 그들은 자신에 대해 열등하고, 약하며, 그리고 쓸데없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들에게 나타나는 과대적인 행동이나 특별함의 느낌은 바로 그들의 열등감에 대한 보상적 방어로 이해될 수 있다. 때로 그들이 보이는 우월감이나 과대망상 등은 그들의 열등감을 메우기 위한 병리적인 방편이다.
불완전한 자아기능은 대개 성장 과정에서 발달의 실패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경험되는 여러 사건이나 행동 등에 정상적으로 대응하거나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지 못한 결과인 점에서다. 이런 증상은 특히 계급이나 권력에 대한 집착의 저변에도 낮은 자존감이 자리잡고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권위적인 사람들이 자신을 멸시하고, 복종을 강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자율성이 위협당할 수 있다고 지각하며, 지나치게 자율성과 독립성, 그리고 자기결정권이라는 주제에 집착하게 된다. 이들은 성장과정에서 애정에 기반을 둔 신뢰로운 내적 표상형성에 실패했다. 때문에 애정적 관계가 매우 위험하고 불안정한 것이라 믿게 되어 그런 관계로부터 완전하게 철수하거나 자신만의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런 실패로 인하여 그들이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인간상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3) 편집증을 유발시키는 심리적 상황
편집증을 유발시키는 심리적인 상황도 있다. 물론 편집증이 유발되는 상황은 다른 정신질병의 유발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유발상황에서 특히 정신역동적 입장은 일정한 조건을 중요시한다. 그 조건들이란 대개 상실감의 특성을 갖는 것들이다. 그것은 만족의 주요 원천의 상실이나 상실될 위협을 느끼는 것, 기본적인 안전감의 상실이나 상실 위협을 느낄 때, 성적 혹은 적대적 추동이 급증하고 갑작스런 죄책감이 증가하는 경우, 방어의 일반적 효율성이 감소된 경우 등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단순히 편집증만이 아니라 다른 정신병적 장애도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그런 악조건적인 상황들에서 편집증 환자들은 정상인이나 신경증적인 사람들보다 더 취약하다. 그들은 신뢰가 결여되어 있기에 다른 기분이나 분위기, 그리고 생각의 전환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비교적 건강할 때에도 심리적 평형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산다. 이런 심리적 평형을 심각하게 방해하거나 그런 상황을 심리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리고 투사적인 방어를 사용하게 만드는 상황은 편집증을 촉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상황들이 편집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정신병적 상태에 공통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때 편집성 반응에 특징적으로 작용하는 촉진요인들로는 다음 몇 가지들이 추가된다. 학대받으리라는 만성적 예상을 적중시킴으로써 보복할 태세를 증가시키는 상황이나 사건, 의심과 불신을 증가시킴으로써 기만과 배신에 대한 평소의 예상을 확인해 주는 상황이나 사건, 경계를 증가시키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교류로부터 고립시키는 상황이나 사건, 시기와 질투를 증가시킴으로써 분개심과 미움과 열등감을 일으키는 상황이나 사건, 자존감을 낮춤으로써 초자아가 공격받게 하고 격렬한 부정과 투사가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하는 상황이나 사건, 다른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결점들을 보게 함으로써 불안을 증가시키고 그것의 극복을 인정하지 않음과 투사를 더 많이 하게 만드는 상황이나 사건, 게으름과 고립이 결합되어 타당한 현실 검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이나 사건 등이다.
이런 원천들의 조합으로 인한 좌절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그들은 그 상황에서 도피해 자신 내부로 들어가게 되면서 혼자서 반추를 계속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자아분열로 고통당하고, 깊고 엄청난 퇴행을 겪어 무의식적 환상들과 갈등들이 유아기 수준에서 재활성화 된다. 이러한 환상과 갈등은 자기방어에 실패하여 억압을 뚫고 전의식과 의식적 표현들을 향해 의식으로 올라온다. 이로써 성숙한 억압방어 구조는 무너지고, 투사와 부정이 방어적 기능들을 대신하게 된다. 편집증 환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이런 현상 때문이다.
2. 편집증이 유발되는 임상적 과정
편집증 유발 상황에서는 여러 특징들이 나타난다. 이런 특징은 때로는 편집증으로 이행되는 과정이기도 하고, 의심을 자극하여 더욱 편집으로 굳어지게 하는 특성들이기도 하다. 누구나 조금 의심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이 심리적으로 악화된 상황에서 일정한 정도를 넘으면 편집증으로 고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런 임상적 과정은 주의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치료자나 환자 모두에게 유의할 점이기도 하다.
1) 방어기제 사용으로 인한 문제
편집증에서 유달리 많이 사용되는 방어기제가 있다. 이는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어기제이다. 그것은 투사와 부정이라고 해야 한다. 특이한 것은 그들에게 투사와 부정이 방어적 기능들을 대신하면, 또다른 증상을 유발시킨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편집성 갈등, 환상, 원초적인 방어들과 과민성이 뚜렷한 증상들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현실을 따르기보다 본능적 욕구와 충동이라는 추동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나서 이제 그들은 자신의 환경을 진지하게 정신병적인 형태로 대응하려 한다. 이는 물론 그들에게서 이미 현실과는 상관없이 환상이나 망상이 작용하는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재활성화 된 환상과 일치시키기 위해 현실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하며, 이러한 재구성의 시도는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의 가상적 조직체인 편집성 가상공동체를 조직하게 만든다.
이런 관점에서의 편집성 반응의 발병은 임상적으로 다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갑작스럽고 극적인 장애의 발생이다. 적응적이고 방어적인 체계들을 압도하는 갑작스러운 내적 및 외적 위기를 만나거나 혹은 적응적 방어체계들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스트레스가 계속 증가하는 경우에 무의식 속의 욕망과 갈등들이 전의식이나 의식 세계로 급격하게 분출된다. 이렇게 되면 그들은 강력한 부인과 투사방출에 의해 어느 정도의 자아통합은 계속적으로 보존할 수는 있지만, 그 끝은 현실과 모순되는 망상체계를 낳는다. 둘째, 잠복기 후 갑자기 증상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부분적 혹은 완전한 사회적 회피와 퇴행적 환상으로 스트레스에 반응하고, 개인적으로 사물들을 이해하려 한다. 이로 인해 그들은 공격의 핑계거리가 될 만한 통합된 ‘설명’을 찾는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적 현실검증 결함으로 인해 결론을 급하게 내리다 갑자기 발병하는 것이다. 셋째, 점진적이고 진행적인 발병이다. 몇 달이나 몇 년에 걸쳐 편집성 성격에서 편집성 정신병으로 천천히 진행해가는 유형으로, 결정적인 망상적 위치에 도달하기 전에 의미한 경계선을 몇 번이고 왔다갔다 한다. 진행되면서 점점 더 현실적인 결론들에 벗어나게 되며, 현실은 그의 사고 내에서 점차적으로 망상적 재구성들로 대체된다.
2) 편집증의 증상적 과정
편집증 환자는 어떤 증상의 과정을 거치는가. 어떤 증상이든 간에 그것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이런 과정은 반드시 순서적이라고 볼 수도 없는데, 이는 과정을 뛰어넘거나 동시적으로 되거나 아니면 뒤바뀌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기준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설명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편집증적인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을 때조차도 유난히 경계하는 점이다. 그들은 위험스럽고 적대적인 세계에서 불편하게 살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들이야말로 만성적으로 위험하고 불안정한 평형상태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때로 불안정한 평형이 위협받을 때 자신의 경계를 높이고,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심리적 거리를 넓히게 된다.
이때 투사적 방출과정으로 나아감으로써 가급적 많은 공격적 에너지를 방출한다. 그래서 그들은 부정을 많이 하는 편이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처하고 모호함을 줄이기 위해 환상들을 이용한다. 이런 조작들이 실패하고 긴장이 계속해서 증가하여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편집성 정신병적 과정이 시작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상인으로 인정되는 성숙한 성인들조차 정서적으로 고통스런 상황에서는 안전감과 신뢰를 느끼기 매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고통스런 상황이 해결되지 않은 개인의 갈등들을 더 많이 자극할수록 안전과 신뢰를 갖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편집증 환자들은 더할 것이다. 이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안전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도 매우 드물고 누구에게도 완전한 신뢰를 줄 수 없는 행동을 취하는 이유이다. 실제로 그들은 정서적으로 각성되었을 때 의심이나 불일치를 견디지 못하고, 모호함을 참지 못하기에 일단 의심이 시작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3) 의심으로 이행되는 심리적 환경
편집증으로 이해되는 과정에서 의심은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인이다. 이때 그들에게는 타인에 대한 의심은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거나 자신이 공격해야 할 방해물로 간주되면서 좌절로 경험된다. 그리고 그런 좌절을 안겨준 사람은 그에게는 싸워서 이겨야만 할 적군(敵軍)으로 분류된다. 그러면 그들에게는 자기 자신 외에는 의존할 사람이 없다. 이제 그들은 정서적 위기를 혼자서 떠맡아 경계하고 긴장하고 감시하면서 제한된 추론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대상에게 다가가거나 공격하거나 또는 도망을 하는 기본과정으로 들어간다. 이로 인해 그들은 형사 혹은 수배된 사람처럼 모든 것을 감시하고,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는 정도가 심해질수록 의심들은 더욱 커진다. 의심은 적대적 공격을 가능하게 만들고 적대적 공격은 다시 위험의 수치를 높이는 것이다. 실로 그들은 적대적 공격 속에 살아와 위험은 더욱 커진다. 이런 감각이 그들의 심리적 상태를 변화시킬 때, 그들에게는 심리적 긴장감을 더욱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적응하게 되는 움직임과 다양한 몸짓, 시선과 신호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서 자신이 의심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 대상이 불안하고 불안전하며 사회적으로 부적절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편집증 환자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일이 순조롭게 되고 있을 때조차 현실검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울 때는 객관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도출해낸 추론은 불변의 사실이 된다. 이제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커져가는 망상적 체계에 맞도록 증거를 선택하고 해석해야 한다. 그 결과 현실과 환상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여 과거로부터 선택적으로 사건들을 회상하고, 그것들을 현재 자신의 욕구에 맞도록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건강하지 않은 신념들을 지지하기 위해 왜곡된 기억들을 계속해서 사용한다. 심지어 그들의 논리는 너무나 체계적이고 정교하여서 어떤 것이 실제로 관찰된 것이고, 어떤 것이 추론된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거의 반박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는 그들이 현실과는 거리가 먼 환상에 불과한 것인데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다. 그래서 지적이고 진지한 편집증 환자의 경우 때때로 친척들과 친구들, 심지어는 판사나 공직자들한테도 자신의 망상적인 확신들이 사회적 사실인 것처럼 설득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들의 보이지 않는 힘의 근원이다. 그것은 두려움이나 의심에서 망상으로의 완고하고 중단 없는 행진을 가능케 하는 것은 그 힘이 무엇일까의 문제다. 이것은 상당히 그들 나름대로의 논리성이 있지만, 추론의 힘이 아니라 충동이라는 점에서다. 실제로 편집증 환자들의 추론의 논리는 빈약하면서도 전진하는 힘만이 매우 강하다. 이런 점에서 치료자는 그들의 앞으로만 움직이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다름 아닌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충동에서 나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3. 편집증으로 이행되는 피해망상의 문제
누구나 처음부터 편집증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편집증으로 이행되는 일정한 과정과 경로를 거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자주 피해를 본다거나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중단시키거나 전환시키지 못하면, 편집증으로 이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집증은 현실과는 다른 망상이 중심이 된다. 망상은 객관적 현실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식의 주관적인 생각이 중심이 된다. 객관적으로는 분명한 근거를 갖지 않으나 자기 나름으로는 확고한 근거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러 망상과 연결되어 있는 주된 특징은 피해성이다. 자신이 피해를 보는 또는 받고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피해 편집성 반응은 증상적으로 피해망상이며, 대개 자기방어적으로 나타나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은 방어기제로 요약된다.
1) 고착과 퇴행
피해망상은 신경증 수준과 정신병 수준에 고착될 수 있다. 고착(fixation)은 발달이 방해받은 것으로 생각되기에 더 이상 성숙하지 않으면서 특정한 심리성적 발달단계에 머물게 되는 방어기제이다. 반면 퇴행(regression)이란 심한 스트레스에 직면하여 후기의 성숙한 발달 단계로부터 초기의 덜 성숙한 단계로 되돌아가는 현상이다. 이 퇴행은 정신병 환자에서는 어린애 같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편집증 환자들은 퇴행으로 자기 성격의 일부를 신경증 수준으로 이동시키고, 일부는 더 깊은 정신병 수준으로 이동시킨다. 고착과 퇴행에서는 신경증 고착과 정신병적 고착을 구분해야 한다. 신경증적 수준의 고착은 고착이 일어나더라도 비교적 좋은 대상관계를 유지하는 수준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피해의식과 두려움도 현실의 사람들과 현실의 상황들에서 나타난다. 비록 피해의식이 사회적 현실을 왜곡시키고 종종 비극적인 결과들을 가져오지만, 이들의 대상관계는 조증이나 우울증 또는 정신분열증 환자보다도 더 좋은 편이다. 누구나 정신병 수준의 고착이 일어나면 현실에 대한 부정, 두려움과 소망들의 투사, 그리고 정서적 욕구 충동들의 가학-피학적 특성 등 모든 것들이 신경증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아주 다르게 망상적 그림을 형성하면서 조합돼 있다. 따라서 편집증은 다른 정신병보다는 사람이나 사물들과 상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퇴행된 가학-피학적인 추동들과 사회환경 속의 실제 사람들의 의도들을 구별하지 못하여 자신의 상상에만 기초해서 괴롭힘이나 죽임을 당하는 것을 현실적이게 상상한다. 이런 예상은 환자 자신의 가학성에서 나오지만 당사자는 그것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한다. 그는 또한 자신의 의도와 그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의도를 구별하지 못한다. 이때 자신을 격정적인 분노에 빠뜨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그러면서도 퇴행으로 인해 그 ‘위험한 사람들’이 잔인하고 위험적인 것 같고, 자신은 무죄이며 의도된 희생자가 된다. 이 과정은 편집증 환자들의 방어 능력의 결함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퇴행은 일면 고착과는 달리 전체적인 측면이 있다. 즉 자아-초자아 퇴행은 편집성 반응들에서 신경증에서처럼 단순히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것이다. 이것은 자아-초자아 기능의 더 큰 부분이 유아적 수준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편집성 반응들에서 망상적 왜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대상관계들은 비교적 잘 유지된다. 이것은 정신병적 퇴행뿐 아니라 신경증적 퇴행도 포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병적 퇴행은 기본적인 신뢰감이나 자신감의 결여로 의해 유발되는 것 같다. 편집성 정신병에 취약한 성인들은 초기 유아기에 지나친 긴장과 불안으로부터 적절하게 보호받지 못한 경향이 있다. 지나친 자극을 받고 화를 잘 내며 공격적이면서 부모의 통제를 받지 않았던 아이는 피해망상을 발달시키게 될 수 있다. 이런 아동의 격노를 표현하는 것은 부모가 허용한 결과라기보다는 아기의 격노에 대해 부모가 무관심했거나 아기의 격노를 즐긴 결과이다. 실제로 편집증 환자는 유아기에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고, 이에 대해 통제할 수 없는 가학적 격노로 반응해 왔음을 보여주는 임상적 관찰도 있다.
2) 억압의 문제
억압은 늦게 그리고 불완전하게 성숙한다. 그 이유는 부정과 투사가 지나치게 발달해서 억압의 초기 기능들을 이미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상적이거나 신경증적인 억압이 도달하는 최상의 수준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게 되므로 무의식적 과정들을 담아둘 정상적으로 강한 억압장벽은 발달하지 않는다. 이때 약한 억압 장벽은 불필요한 한계들을 설정하며, 무의식적 환상과 갈등이 전의식적 및 의식적 조직들을 침투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는 논리적 사고와 지각에 본능적 욕구가 개입한다. 이런 영향들은 편집증의 지각적 과민성과 해석들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다.
편집증 환자를 대할 때 그들의 비합리적인 두려움들은 공포증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그들이 환상으로 인해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공동체는 잘 조직되어 현실검증을 어렵게 만든다. 그들의 가상공동체는 공포증보다 더 폭력적이고, 더 개인적이며 핍박자들로 구성된 망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피해 편집성 반응들에서의 강력한 가학-피학적 환상들과 갈등들은 강력한 자아-초자아 갈등을 겪는 강박적 반응들과 관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상은 강박증 환자의 가학-피학적 자기처벌과 달리, 가학-피학적 투사를 통해 자신의 죄책감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공격성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다.
3) 자기방어의 문제
앞에서 편집증으로 이해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특징적인 자기방어기제가 등장한다고 했다. 그래서 고착과 퇴행을 다루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편집증 환자가 사용하는 방어로서의 퇴행은 고착과는 상당히 다르다. 편집성 반응에서의 신경증적 고착과 퇴행은 상대적으로 좋은 대상관계들과 실제 환경과의 연속적인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다. 심지어 정신병적인 고착과 퇴행조차도 환자가 적어도 더 심한 와해를 겪지 않도록 막아준다. 신기하게도 편집증에서 퇴행은 2-3세 고착점에 도달될 때 멈추게 된다. 그것은 핵심적인 무의식적 구조들이 초기 아동기부터 변하지 않고 보존된 채로 고착되는 안정적인 지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2-3세의 아이들은 부모의 행위가 옳든 그르든 간에 부모의 임의적인 통제에 잘 복종한다. 이 시기에는 부정이나 투사와 같은 원초적인 방어들은 활동적인 반면에 억압은 약하게 남아 있고, 가학적 관심들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퇴행된 상태에서 새로운 자아조직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정신병이 지속되는 한에서는 이전에 억압된 충동, 공포, 환상 및 갈등은 억압되지 않고, 이 새로운 자아조직에 남아 있게 된다. 이런 방어적인 태도에서는 불안전한 억압도 작용한다. 편집증 환자는 일생을 통해 불완전한 억압을 보상하고, 보충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그들에게는 부인과 투사의 방어기제가 지나치게 발달하고, 지나치게 사용되며, 그리고 그것은 정상적인 억압의 발달을 방해하게 된다.
인간의 무의식적 과정들은 원초적이고 미숙한 것이 특징이다. 이 과정은 사회화되지 않은 일차적 과정이라는 원리에 따라 작동하며, 원초적이고 반사회적인 충동, 욕구, 두려움에 훨씬 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에서다. 정신역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일차적 과정들을 억제하고 조절하고 창조적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는 비교적 성숙한 자아조직이 없다면 자아의 와해와 함께 억압 방어들이 점진적으로 약화되고, 무의식적인 과정들은 이제 전의식적 의식적 조직들을 침범하는 규모가 점점 커진다. 이런 침입은 댐의 구멍이 댐을 무너지게 하는 것처럼, 그 장벽을 빨리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이런 침입은 또한 전의식과 의식체계를 더욱 심하게 와해시키기 때문에 억압된 방어들의 회복을 방해한다. 편집성 반응들에서 퇴행이 멈추고 더 원초적인 수준들에서 재조직화가 시작될 즈음에는 억압은 너무 불완전해져서 오직 부인과 투사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야만 심한 자아의 와해를 막을 수 있다. 방어에는 부정도 해당된다. 어떤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방어로서의 부인은 억압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자아 경계들이 설립되기 이전에 그리고 성숙한 초자아가 실현되기 훨씬 이전의 아동기 초기에 작동한다. 억압이 불완전할 때 그 사람이 잠재적으로 와해되는 경향들을 막아주는 것이 바로 부인이기에 편집성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발달해 있다.
4. 투사와 관련되는 편집적인 특성
편집증은 고착과 퇴행, 그리고 부인과 투사 등의 방어기제가 특징적으로 사용된다고 했다. 이런 것들은 상황에 따라 어떤 것이 더 많이 사용되기도 하고, 덜 사용되는가 하면, 때로는 모두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이때 우리는 특히 투사와 관련되는 점에 초점을 두어 기술하기로 한다. 다른 기제들이 자신의 한계로 머무는 것인 반면에, 투사는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공격성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가해적인 성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1) 투사적 적대감
투사는 편집증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쉽게 드러나는 기제이다. 편집증은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어떤 적대감에 둘러싸여 있다고 느끼고 있기에 가학적 추동을 갖는다. 이것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퇴행하면, 자신의 가학적 충동들과 그에 따른 두려움들 때문에 그들은 압도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가학적 충동들을 부인하고 투사하는데, 그러고 나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온 것처럼 생각된다. 이로 인해 그들은 퇴행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는 위험을 과장하고 자신의 두려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못하게 하며, 어디를 가든지 투사된 폭력성이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런 투사에는 공격적 에너지를 억제하고 방출하기, 현실 재구성으로서의 망상형성, 정서적 추동 등이 해당한다. 특히 공격적 에너지를 억제하고 방출하기가 투사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억압된 편집성을 드러나게 하는 가장 큰 위험은 자기 안에서 온다는 점에서다. 이때 그들에게는 공격적인 에너지의 홍수가 그들의 정신역동적인 체계를 완전히 와해시키는 현상이다. 이런 홍수는 여러 원천들에서 오는데, 성격이 와해되지 않으려면 이런 파괴적 홍수는 방출되거나 억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이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강하게 사용함으로써 극단적으로 적대적인 전의식적인 상상체계들을 새롭고 정교하게 형성하거나, 지각적 경계나 근육 긴장 또는 분투적인 활동 등을 증가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때 그들에게는 원초적 방어들, 특히 부인과 투사를 크게 증가시키고 끊임없이 공격적 투사적 방출을 하거나, 매우 복잡한 가상사회를 형성하거나 적대적인 말과 폭력적인 행동으로 터뜨리는 방법들이 동원된다. 이 모든 절차들이 파괴적인 에너지를 억제할 수 있도록 해주며, 이 파괴적 에너지가 방출되더라도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된다.
2) 망상적 투사
재구성으로서의 망상 형성은 투사의 또 하나의 현상이다. 피해망상은 환상과 갈등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 이상 억압을 통해 유지할 수 없다. 그 때문에 그것들을 부인하고 투사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이것은 또한 외부 현실에 대한 지각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 편집망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때 그들의 망상은 신경증 증상처럼 환상과 현실과의 괴리에 대한 하나의 타협이지만, 외부현실의 왜곡은 신경증 증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망상들은 단지 병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자발적인 치료의 신호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환상을 객관적 현실과 같이 취급해 상황에 적응하는 것으로서, 그 당시에 환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이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그렇게 재구성하는 것 외에 유일한 대안은 혼란에서 혼미로 도피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편집증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망상의 출현이 현실에 대처하는 새로운 시도임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투사에는 정서적 추동도 빼놓을 수 없다. 피해 편집성 퇴행이 드러내는 핵심적인 정서는 원초적 격노, 사랑, 그리고 박탈당하고 좌절된 아이의 두려움 등이다. 유아기에 겪은 것과 같은 정도로 되살아나는 환상과 갈등은 부모상을 향한 가학적 충동과 보복을 포함한다. 결국 가학적으로 공격하는 환상은 잔혹한 보복에 대한 두려움의 환상과 훨씬 더 잔혹한 복수의 환상 등으로 이어진다.
3) 투사적 성격이 형성되는 아동기
투사적 성격은 갑자기 형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아동기의 성장배경과 성격형성이 중요시된다. 발달과정에서 편집성 사고는 성격, 사회기술, 환경적 사건들 간의 복잡한 상호 작용의 결과이며, 이런 상호 작용은 초기의 가족관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편집증 환자들은 어린 시절에도 냉담하고 의심과 비밀이 많으며 고집이 세고, 처벌에 쉽게 분개하는 성격 특성을 보인다. 그들의 가족 분위기는 흔히 권위주의적이며, 지배적이고, 그리고 비판적이다. 이들이 자주 느끼는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두려움은 냉담하고 요구가 많으며, 변덕스러운 부모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런 부적절한 사회화는 다른 사람의 동기와 관점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사소한 일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인관계에서도 적대적이고 지배적인 태도를 보이게 됨으로써 사람들을 떠나가게 된다. 이런 필연적인 사회적 실패는 자존감을 더욱 저하시키면서 사회적 고립과 불신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편집증은 적대감, 피해, 권력, 복종, 나약함, 수치심 등에 관한 내면적 갈등을 겪은 아동들에게 생기는 것이다. 이런 초기의 경향은 이후 발달 과정에서 자부심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거만한 성격으로 이어지며, 자신의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을 탓하고, 자기 자신 속에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음으로써 비현실적인 자기상과 통제감을 유지한다. 그들은 자신의 관점 이외에는 어떤 다른 입장도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과 과민성을 바로잡지 못하고 이로 인해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5. 편집증을 유발시키는 아동기
아동기 발달의 요인은 성인기의 편집성 성격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많은 답변들이 제기되었지만, 특정한 답변들만을 인정할 수는 없다. 아동의 발달과정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인 환자의 아동기를 재구성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며, 동일한 결과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요인들이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몇몇 영역들이 있다. 수십 년의 임상연구에 기초해 볼 때, 편집증 환자들은 생후 첫 2년 동안 지나친 기만과 불안으로부터 적절하게 보호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아동기에 기본적 신뢰감을 발달시킬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의 긴장과 분노를 개방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허용되어 왔다. 많은 경우에 편집증 환자들은 자신에게 좀더 적대적인 부모와 동일시해온 것 같다. 적대적 공격자들과의 이러한 동일시는 두려움이 많은 비편집성 성인들에서도 잘 알려진 방어이다. 흔히 어린아이에 대한 학대라는 것은 단지 엄마의 무관심, 냉담함, 괴롭히거나 얕보는 것 등이 전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행동은 아이에게 잔혹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보다 더 잔혹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가학적인 엄마는 고의로 아이를 성나게 해서 그 아이가 사나워지게 만들고는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격노와 무기력한 폭력을 즐기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유아나 어린아이는 지나친 자극을 받고 분노하며 공격적이 된다. 결국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랑과 증오의 양가감정을 경험하지는 못하게 된다. 때로 어떤 부모는 지배와 통제를 통해 아이의 자유를 계속적으로 방해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나중에 더 큰 문제들을 만든다. 감시하고 의심하고, 항상 허락해 주지 않는 집안 분위기도 마찬가지이다.
1) 편집적 성격형성
성격은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한 행동을 유발시킨다. 이런 성격이라도 특정한 상황에서 반드시 동일하게 반응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면 편집적인 성격은 환경을 통해 점차로 발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심리적인 환경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심리적 환경이란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인데, 이때 인정하고 수용하며 않는 것이 편집적인 성격의 현성에 가장 큰 문제로 작용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아동에게 정신에너지를 증가시키지 못하게 된다는 점에서다. 그런 부모의 양육에서 성장하는 아동은 늘 불안을 경험하면서 자라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부모에게 대응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정상인조차도 극심하게 불안하고 두렵거나 충격을 받았을 때에는 의심이나 공포에 대해 잘 이유를 대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자신이 관찰한 것의 타당성을 살펴보고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과, 자신의 결론에 의문을 갖는다. 이런 중요한 절차들에서는 개인의 행동을 억제하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즉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 불확실하고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과 긴장감 등의 정서적 흐름에 압도되어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막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런 이유로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잠시 동안 자신으로부터 떨어져서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거나 심지어는 두려움과 의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입장을 취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실로 불확실성과 모호함에 따른 불안과 긴장을 참고 그 관점을 옮기는 능력은 성숙한 성격발달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숙하고 잘 조직화된 성인조차도 정서적 위기를 만나면, 이 능력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 유일한 희망은 자신의 두려움들과 의심들을 정서적으로 그 일에 덜 관여되고 믿을 수 있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렇게 되면 혼란스러워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염려해 주는 사람들과 자신의 불안을 나눔으로써 커다란 안정을 얻고 이를 통해 상황을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2) 공격자와의 동일시
편집증 환자들은 마음이 언제나 여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뢰, 모호함을 잘 견디는 것, 그리고 스트레스 상황에서 입장을 바꿔볼 수 있는 기술 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애 초기에 지나친 긴장과 불안에 대해 보호받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은 유아기의 신뢰나 자신감을 발달시키지 못해 그 결과로 원초적인 두려움들을 극복하지 못했다. 어떤 경우는 부모의 지속적인 사랑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해서 안정적이고 다정하고 의존할만한 세계에 대한 개념을 형성시키지 못했다. 실로 그들에게는 안전하고 가까운 대인관계를 맺는데 필요한 행동적 기반이 결여되어온 것이다. 그런 결과는 또 다른 행동을 유발시키기 마련이다. 그것은 자신을 보호 및 방어하기 위한 일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편집증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심하게 대하고 속일 것이라는 뿌리 깊은 기대를 가지며, 자신이 심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속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공격적으로 반응할 태세로 무장되어 있는 이유이다.
많은 경우, 그들은 실제로 유아기나 초기 아동기 동안에 학대를 당했으며 그 결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하학적 태도들을 내면화시켜 왔다. 이것이 잘 알려진 유아기 과정으로서, 정신분석에서는 이를 ‘공격자와의 동일시’라고 부른다. 편집증 환자들은 신뢰를 배울 수 없는 환경에서 양육되었기에 모든 것에 대해서 항상 경계를 늦출 수 없다. 다른 측면으로는 이런 환경적인 경험이 그들에게 갑작스런 속임과 공격을 경계하며 살아가도록 학습한 결과일 수 있다.
6. 결론: 편집증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우리는 편집증의 임상적 양상에 대하여 기술했다. 편집증의 임상적 양상은 편집증을 잘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다. 편집증을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러다 보니 편집증에 대한 증상의 이해를 넘어서 거의 진단의 수준에 가깝기도 한다. 때로는 왜 편집증이 유발되는가의 문제도 포함하고 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편집증으로 이행되는 과정이나 그 원인, 그리고 편집증으로 드러나는 특징으로서의 방어기제들이 등장되어 기술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