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는 지점인 입춘이 지났지만 폭설이 내리고 도로 곳곳이 막혔습니다. 새하얀 눈은 언제나 즐거움과 깨끗한 희망을 주지만 운전자에게는 위험한 복병이기도 하지요. 막힌 도로처럼 마음도 막혀 평생 체한 것처럼 살아온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막힌 마음들을 만나며, 내 마음의 막힌 부분도 들춰지는 것을 느낍니다. 며칠 전 새벽에 내 깊은 무의식의 한자락이 펼쳐지면서 미해결된 이슈가 살짝 빠져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살인적 분노’의 장면이었습니다.
오래 전 나는 어느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곳의 대표는 겉으로는 온화한 사람이었으나 숨어있는 분노와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오해를 한 그는 나를 불러 앉혀놓고 살인적 분노를 퍼부었습니다.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분노의 비수와 폭탄을 날렸고, 나는 그날 산산이 찢어지고 부서졌습니다.
새하얗게 질린 채 그곳을 나서는 순간부터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심각한 공황장애 증상을 겪어야 했습니다. 수많은 병원을 들락거리며 치료를 받거나 입원을 해야했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거나 정신이 아득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이 무섭고 사람이 두려웠습니다.
몇 년에 걸친 치유를 통해 그 상처와 고통에서 빠져나오기까지 내 안에는 복수심이 들끓었습니다. 그러나 침묵했습니다. 침묵하는 동안 상처는 더 깊어졌습니다. 어느 날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욥기서 36장 6절의 말씀인 ‘악인을 살려 두지 않으시며 고난 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대신 의로운 복수해주시는 하나님’께 신원해달라는 기도를 쉼 없이 몇 년 간 했습니다. 그는 몰랐을 것입니다. 그토록이나 살인적 분노를 퍼부어 나를 병들게 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를.
지금은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 등 그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지만 그 ‘살인적 분노’에 대한 기억이 무의식의 저편에 새겨져 또 다른 분노를 만날 때마다 들추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식은 두려움과 무력감을 동반하여 일시적으로 우울 무드가 영혼을 물들이는 것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나는 나의 치유를 이루어가는 중입니다.
‘살인적 분노’는 사람을 죽이는 분노입니다.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당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채 분노를 터뜨리는 순간, 어떤 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살아있으나 죽은 상태가 되어 생의 기쁨과 행복을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십대의 남성이 찾아와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분노가 많은 분이었어요. 툭하면 심하게 화를 냈죠. 한번 화가 나면 아무 말이나 막 쏟아냈고 어린 저와 엄마에게 물건을 집어던졌어요. 한번은 엄마 얼굴이 찢어져 피가 흘렀는데도 화를 계속 내셨죠. 정말 무서웠어요….”
십대의 여중생은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젠가는 아빠를 죽이고 싶어요. 안 그러면 제가 죽을 거에요. 술 취하면 짐승처럼 변해서 욕을 하고요. 그래서 저는 남자는 다 무서워요. 그래도 아빠를 죽이고 싶어하는 제가 정말 싫고 죄책감을 느껴요. 저는 살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죽고 싶어요.”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갈 분노를 자신도 모르게 표출하고 있지 않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분노는 결국 자신의 상처에서부터 온 것이고 자신도 피해자였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되고 만 무서운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 분노가 너무 오래 되고 성격처럼 형성되고 나면, 자신의 문제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성격장애자가 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살인적 분노의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살인적 분노를 행하는 가해자일지도 모릅니다. 이 극단적 상처로부터 우리 모두를 보호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존귀하며, 또 반드시 행복해야할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잠언 29:11-”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전도서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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