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의심하지만 자신은 철저히 방어하려는 편집증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김충렬 박사의 ‘편집증’ [15] 편집증의 진단적 이해와 심리분석

▲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15장 편집증의 진단적 이해와 심리분석

앞에서 우리는 편집증의 진단을 위한 기초적인 점에 대하여 기술했다. 편집증으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일정한 증상에 대한 기준과 준거의 틀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시되었다. 이런 기준 때문에 조금 심한 정도의 의심을 보인다고 해서 곧바로 편집증으로 진단내릴 수는 없었다. 그런 진단이 일정한 기준적 틀이기는 하지만,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부연 설명이 필요했다. 편집증의 진단적 이해와 함께 심리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1. 편집증의 진단적 이해

편집증은 연속적 특성이 있다. 이 연속성이란 다음 단계로 진전되는 증상이다. 실제로 편집증은 정상인들이 가끔 약하게 보이는 의심과 불신으로부터 심한 피해망상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처음부터 피해망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심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그것은 마치 감정의 강도를 갖는다는 원리와 일맥상통한다.

물론 편집증과 피해망상은 질적으로 전혀 동일한 것이 아니다. 망상은 정상적 현상이 아닌 병적 현상이라는 주장들도 있지만, 연속선상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점에서다. 그것은 경험적 연구들에서도 입증되며, DSM-IV에서도 망상과 편집증이 연속선상에 일어난다고 인정하고 있다. 물론 뇌장애 등 명백한 기질적 장애에 따른 망상은 예외이다. 편집증의 심각성에 따른 인지적 특성들을 DSM-IV진단에 따라 분류해 보면, 편집증이 심하지 않은 정상인과 중간 정도로 심한 편집증, 매우 심한 편집형 정신분열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더 정확한 이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볼 수 있다.

1) 정상인과의 편집성 차이

정상인과 편집증 환자의 확연하게 다른 특징, 피해적인 망상 때문이 있다. 실제로 편집증 환자는 망상의 성격이나 정도에서 정상인들과 매우 다른 점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편집증이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과 의도를 불순한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망상이나 환각 같은 지속적인 정신병 증상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편집증을 대표하는 용어인 편집성 관념(paranoid iden)에 대해서 DSM-IV에서는 “망상보다는 약한 관념으로서, 괴롭힘, 학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신념이나 의심하는 태도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편집증에 대한 역사적 개관에서 전술한 대로, 편집증이라는 용어는 초기 광범위한 정신병적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재 임상에서는 극도의 의심을 수반하는 증상으로 제한되고 있으며, 의심이 망상 수준인 경우에만 망상장애로 분류한다. 그것은 의심이 극도에 이르면 사고의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을 시사하는데, 이는 감정이 기능이 크게 작용할 때 사고의 기능이 멈추는 원인이다.

편집증에서의 사고는 감정을 수반하면서도 감정이 작동할 때에는 사고의 기능은 기력을 잃는다는 시각이 있다. 감정이 사고보다는 더 에너지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측면은 편집증 환자의 의심이 사고보다 감정적 측면이 강하다고 보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편집증은 정상인도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정도가 얼마인가에 따른 차이일 뿐이다. 그것은 의심하는 정도, 즉 편집성의 정도는 편집증의 병리적 현상을 가늠하는 기준이라는 점에서다.

그러나 이 기준에는 애매성도 없지 않다. 정상인의 경우에도 어느 때는 편집증 환자 이상으로 의심이 극도로 심해져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시달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의심은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불쾌감이나 증오감을 유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복수심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심의 정도는 상당한 정도여야 하고, 의심의 정도가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돼야 한다. 이런 지속적인 의심이 개인의 삶으로 이어지거나 연속되어 생활에 불편을 야기시킬 때는 편집증으로 인정된다.

흔히 어떤 정신병리나 임상증상을 나타내는 경우 그들을 정상인과 질적으로 다른 환자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이런 분류 개념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정신장애의 경우 원인이 뚜렷이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따라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진단분류체계도 원인보다는 증상에 따른 분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상이 있고 없고의 심각성은 개인차가 클 뿐 아니라 한 개인 내에서도 변화가 크기 때문에, 항상 정도 차이로 해석해야지 증상 자체를 질적 차이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편집증 환자는 정상인과 전혀 다른 사람은 아닐지 모른다. 단지 정상인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성격상 특징 중 의심하는 인지 양식, 적대적 태도, 투사와 부인(否認) 경향 등 편집 성격의 특징이 다른 사람보다 많아서 여러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에 편집증으로 진단된다는 점에서다.

2) 편집증의 심리적 양면성

편집증은 심리적으로 양면성을 갖는다. 그들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면, 항상 의심하고 적대적이며 화를 잘 내는 편이다. 그들은 항상 다른 사람을 문제시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려한다고 생각해 늘 경계 상태에 있다. 반면 자신에 대해서는 과대한 자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고, 확신에 차 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들은 실제로 심한 열등감과 부정적 자기개념에 휩싸여 있으며, 그런 자신이 취약하고 나약하다고 여기므로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자격지심(自激之心)이 강한 편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다. 그들 자신이 이러한 면의 드러남에 대해 강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겉으로는 다른 사람을 탓하고 의심하며 화를 낸다. 아마도 그들에게 자신의 약함이 드러난다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힘을 잃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은 타인과 뭔가 다르거나 특별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존재를 포장한다. 그런 태도는 그들의 존재를 진실하게 보려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존재로 방어해야 살 수 있다는 처절한 노력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편집증은 우울증과 유사하다. 많은 임상가들이 이런 점을 지적했고, 실제 연구결과에서도 그들의 자존감이 낮고, 자기개념이 부정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다만 그들이 우울증과 다른 점은 낮은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의도적으로 더욱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의심하는지 모른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보다 남을 주시하면서 끊임없이 경계하며 악의에 찬 사람으로 몰아붙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다. 특히 그들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그들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3) 편집증에서 행동의 진정성 문제

우리는 편집증 환자의 행동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의심하는 사람의 행동은 진정한가’라는 흥미로운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편집증을 병적 증상으로 볼 경우, 환자 자신이 만들어낸 근거 없는 망상, 즉 자작극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피해의식과 피해망상들 모두 결코 자작극은 아니다. 그 중 상당수는 실제로 피해를 입거나 배신을 당한 경험으로부터 시작됐다. 게다가 개별 사례마다 편집성 성격의 발달 과정과 원인이 다르며, 모든 편집증과 피해망상을 자작극 아니면 실제 피해자라고 일률적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이런 시각에서는 대부분의 편집증과 피해망상 환자가 실제 피해경험과 자작극적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피해의식은 성장 과정이나 생활 경험상에서 주변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의 영향을 받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허구에 의한 망상으로 완전히 단정을 지을 수 있는 근거는 거의 없다. 그것은 일부 사실에 근거해서 그것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고, 다른 상황과 다른 사람들에게 일반화시키는 과정에서 피해의식과 피해망상이 형성된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이미 상당히 진행된 피해망상에 대해서 치료자에게는 병적으로 느껴지지만, 초기단계부터 발전된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것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고, 부분적으로는 실제 경험이 상당한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피해경험이 있는 사람은 모두 피해의식이나 편집증 또는 피해망상을 가지는가? 그렇지는 않다. 유사 경험을 하더라도 피해망상으로 발달시키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바로 편집증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편집증과 피해망상은 개인의 경험과 성격 특성, 발달 배경과 생활환경 등이 상호 작용한 결과이다. 그것은 편집증 뿐 아니라 모든 병리적 현상이 동일하게 관련되는 측면이다.

2. 편집성의 심리적 분석

편집증은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정신분열증상의 하나로 본다. 물론 이런 시각은 정신분석의 관점이다. 정신분석은 편집증에 대하여 자기 안의 정신역동이 분열을 나타낸 것이며,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도 사랑과 증오를 느끼는 등 서로 분리(split-off)된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인격 안에서 자신이 통합을 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증오가 사랑을 압도하고, 파괴시킬 것이라는 공포로부터 견딜 수 없는 불안을 일으킨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생존의 길을 모색한다. 다르게 말하면 이들의 행동은 자신이 감정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든 ‘악한 것’을 분리시켜 외부의 인물들에게 투사해야 한다. 이에 따라 그들에게는 공격자와 희생자의 심리적 현실이 자신의 인생경험으로 변형되며, 이런 경험 속에서 편집상 환자는 지속적으로 외부적인 공격자나 박해자들에 대응하는 희생자 역할을 유지한다. 이런 편집성 현상은 일차적으로 내적 긴장을 완화시킬 것을 요구한다. 더욱이 편집증 환자는 자신이 투사한 것을 다시 내재화하도록 강요받는 경우 내적 긴장이 오히려 증대돼 경직과 방어성이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편집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관계와 경험의 비지속성의 문제

편집증 환자는 인간관계에서 관계하면서 경험하는 데에 비지속성을 갖는다. 실로 그들에게는 타인에 대한 관계와 경험이 장기간 지속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순간적 지각이 유난히 발달되어 있으며, 어떤 일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이런 비지속성의 원인은 타인들에 대한 의심 때문인데, 그들은 타인들이 그들에게 속임수를 쓸 것이고, 언젠가는 자신이 의심한 것이 확인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해 있다. 이것은 그들의 사고가 대개 세상은 믿을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하다는 불안한 신념이 기초를 이룬다.

인간관계를 계속해서 지속할 수 없는 점은 그들의 심리에서 체계화되어 있지 않은 특성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심리적 현상이란 가변적이고 고정적이지 못한데, 특히 이런 현상은 아마도 부정적으로 변하여 지속하고 싶지 않은 의도와도 일정 부분 관련된다. 개인의 심리는 좋은 것은 지속하려 하지만, 좋지 않은 것은 지속하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문제는 부정화 되는 시각이나 관점이 문제이다.

심지어 그들은 치료자에게 오랜 기간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단 한 가지 사소한 실망이 일어나는 경우 치료자를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치료자와 좋은 관계였던 과거는 고려되지 않고, 의심했던 정체가 드디어 폭로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현상은 편집증 환자에게 과거에 어떤 사람과의 좋은 경험이 현재 상황으로 완전히 지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그들에게 작용되는 의심과 기준의 완고함은 일종의 강박적인 특성과도 맥을 같이 한다. 자신이 세워 놓은 기준에 위배된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무시하는데, 이런 특성은 강박증의 중요한 증상이다.

편집증 환자에게 드러나는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특성은 결국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여 어떤 허술한 것도 허용하지 못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이런 특성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관용성이나 융통성의 결여에 있다고 보아야 하는 점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완전을 지향하는 특성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사실상 자신의 열등감의 다른 측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유약한 점을 스스로 허용할 수 없기에 상대방으로부터는 오히려 완전성을 요구하는 태도를 취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런 기준에 어긋나면, 그들은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차원을 넘어 형편없는 사람으로 판단한다. 그것이 심한 정도에 이르면 이제는 그 사람을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매우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관계를 단절시키고 만다. 이런 점이 바로 그들이 인간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2) 사고보다는 감정의 우위성

편집증 환자에게는 사고보다는 감정의 우위성이 드러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감정의 우위성이라는 말은 편집증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한다. 편집증이 오히려 지적이고 철저한 이성에 기반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고는 너무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어서 그들의 논리에 누구도 설득당할 정도라는 점에서다. 그러나 그들의 사고에 논리적 오류가 일어날 때는 상황이 현저하게 달라진다는 점이 문제다. 그것은 올바른 사고의 과정을 통하여 일어나는 논리라면, 논리의 진정성이 의심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그들이 사고보다는 감정의 우위성에 지배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편집증 환자는 인식방법에 있어 자신의 사고력보다는 감정을 우선하여 행동한다는 시각에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진지하게 사고하여 얻은 결과보다는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경험양식을 갖는다. 그런 인식의 태도에서는 현재 자신이 경험하는 것들이 합리적인 것으로 이해되기는 어렵다. 그것은 그들에게 상징과 상징화된 것, 지각과 지각에 대한 사고와 감정의 해석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런 현상은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의 인식방법이 논리적인 태도가 아니라 감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들의 인식방법은 “이 사람이 나를 해치려는 같다”보다는 “이 사람이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전술한 현상은 편집증 환자가 단지 특정한 현상에 끌리고 있으며, 어떤 가치만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그들은 치료자와의 전이관계에 있어서도 그 관계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편집증 환자는 “마치 선생님이 제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내게 가학적일 것이라는 생각에 따라 제가 선생님께 반응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라고 표현하지 못한다. 편집증 환자는 치료를 단순히 가학적이라고 경험할 뿐이며, 이때 그들의 느낌이란 생각에 의한 것보다는 느낌 그 자체인 것이다. 이 경우 만약 환자가 “마치-처럼(as-if)”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비로소 우울증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3) 대인관계와 그 유지의 해석적 문제

편집증 환자들은 대인관계의 발달과 그 유지에 어려움을 보인다고 전술했다. 실제로 대인관계에서 원만치 못하는 문제는 편집증 환자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편집증 환자가 대인관계의 발달이나 그 유지에서 어려움을 갖는 것은 정신분석적으로는 대상항상성의 발달이론에서 설명된다. 대상항상성이란 내적 대상과의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가 위험하고 불안정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편집증 환자는 스스로 자신이 대상과의 관계에서 단단하며, 신비로운 연결을 가지고 있다는 환상을 갖는다. 이런 환상은 대개 환자로 하여금 극단적인 양자택일을 지향하게 만든다. 그것은 자신이 관심을 가진 대상이 지속적으로 자신만을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신과는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타인이 자신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에는 결코 참을 수 없다는 방식의 느낌이나 반응을 나타낸다. 이런 무관심과 관련된 불안은 결국 환자로 하여금 대상들에 대한 신비로운 연결성의 환상을 갖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편집증 환자의 대상관계의 어려움은 상호적이지 못한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들의 지각이나 감각은 상당히 일방적인 것이 문제다. 그들에게는 상대방에 대응하는 훈련이 원만치 못할 뿐 아니라 전혀 자기 방식에만 치중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적 특성은 그들의 지배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이 상대방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에게 적절히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심리의 기저에는 자신이 굽힐 수 없다는 일종의 열등감이 자리한다. 그것은 자신이 상대방에 따르면 실패한다는 방식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지배적이고 권위적인 심리는 열등감의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지배력과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에서다. 이런 점에서 열등감은 그들에게 인지의 문제, 상대방의 인식의 문제를 정확하게 구분하는데 방해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된다. 만약 그들에게서 이런 열등감이 자신감으로 변화된다면, 많은 측면에서 인지의 정상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편협적으로 대응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자신감은 여유로움을 산출하여 대인관계를 부드럽게 대응하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4) 낮은 자존감 상태

편집증에는 낮은 자존감이 중심을 차지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편집증 환자는 낮은 자존감이 중심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낮은 자존감은 근본적으로는 자기방어적인 현상으로 일종의 열등감과도 관련된다. 이것은 그들이 권력이나 사회적 위상이 높은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지 않을까에 예리한 감각을 갖고 있다는 데서 드러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권위적인 사람들이 자신을 업신여기거나 복종하기를 기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단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주변의 상황과는 관계없이 본인 스스로 느끼는 자율성의 위협이 공포감을 갖게 만들어 방어적이게 만든 결과로 볼 수 있다. 낮은 자존심의 깊이에는 자신은 열등하고, 약하며 무능하다고 느끼는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낮은 자존감 때문에 그들에게는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는 두 가지 중심적 방어기제가 되고 있다. 투사는 내적인 위협을 외적 위협으로 대치시키는 것이며, 투사적 동일시는 외향화 된 위협에 대하여 대응하는 한 단계 진행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향화 된 위협에 대하여 고도로 병적인 방식으로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결합시킴으로써 제압하는 방식이다. 그런가 하면 편집증 환자의 낮은 자존감은 열등감으로 대표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특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복합적 특성이 있다. 그것은 편집증 환자가 갖는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서 자신에 대한 과장함과 열등감이 혼합된 현상이다. 특별하게 과장된 자기와 약하고 열등한 자기가 공존하는 매우 특이한 현상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편집증 환자는 타인이 볼 때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요구가 많고, 타인에 대한 불신감, 쉽게 감정적이 되고, 낭만적인 측면은 없으나 매우 도덕적이고 주변에 대하여 민감하게 경계심을 갖는 태도이다. 그 반면에 자신의 내면적으로는 두려워하고 소심하며 자신마저도 의심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그들은 스스로 쉽게 속고 있으며, 때로는 색정광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의 근본적인 요인은 아마도 그들이 실제적인 사건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거나 인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치료자들이 그들의 특성에 대하여 더 연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결론: 편집증 진단을 위한 기초적 요소들을 보충하는 부분들

지금까지 우리는 편집증의 진단적 이해와 심리분석에 대하여 기술했다. 이것은 앞장에서 편집증의 진단을 위한 기초적인 점에 대하여 보충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편집증으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일정한 증상에 대한 기준과 준거의 틀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기준으로 인해 어느 누가 조금은 심한 정도의 의심을 보인다고 해서 편집증으로만 진단내릴 수 없다고 했다. 그런 진단이 일정한 기준적인 틀이기는 하지만,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그에 대한 부연적인 설명이 필요하기에 편집증의 진단적 이해와 함께 심리분석을 더 기술해야 했다. 편집증의 진단적 이해에서는 편집증에 연속적 특성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뒀다. 이 증상의 연속성이란 다음 단계로 진전되는 증상이 있는 것으로 정상인들이 가끔 약하게 보이는 의심과 불신으로부터 심한 피해망상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증상이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피해망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심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기에 그것은 마치 감정의 강도를 갖는다는 원리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물론 편집증과 피해망상은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는 점은 분명했다. 망상은 정상적 현상이 아닌 병적 현상이라는 주장들도 있지만, 연속선상의 현상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점에서였다. 그것은 경험적 연구들에서도 입증되고 있으며, DSM-IV에서도 망상과 편집증이 연속선상에 일어난다고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물론 뇌장애 등 명백한 기질적 장애에 따른 망상은 예외였다. 편집증의 심각성에 따른 인지적 특성들을 DSM- IV진단에 따라 분류해 보면, 편집증이 심하지 않은 정상인, 중간 정도로 심한 편집증과 매우 심한 편집형 정신분열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여기에 정상인과의 편집증 차이, 편집증의 심리적 양면성, 편집증에서 행동의 진정성 문제 등이 부차적으로 다루어졌다.

편집증의 심리적 분석에서 편집증은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정신분열증상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중요시됐다. 이런 시각은 물론 정신분석의 입장에 기대본 것이다. 정신분석은 편집증에 대하여 자기 안의 정신역동이 분열을 나타낸 것이며,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도 사랑과 증오를 느끼는 등 서로 분리(split-off)된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이유였다. 실제로 그들에게는 인격 안에서 자신이 통합을 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증오가 사랑을 압도하고, 파괴시킬 것이라는 공포로부터 견딜 수 없는 불안을 일으키는 점에서 보면 수긍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생존을 위하여 자기의 방식대로 행동하는 특유의 대응양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시 말하면 편집증 환자의 행동은 자신이 감정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든 ‘악한 것’을 분리시켜서 외부의 인물들에게 투사하게 만들기에 공격자와 희생자의 심리적 현실이 자신의 인생경험으로 변형되며, 이런 경험 속에서 편집상 환자는 지속적으로 외부적인 공격자나 박해자들에 대응하는 희생자의 역할을 유지하는 특성이 있었다. 이런 편집성 현상은 일차로 내적 긴장을 완화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지만, 자신이 투사한 것을 다시 내재화 하도록 강요받는 경우에는 내적 긴장이 오히려 증대되어 경직과 방어성이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여기에 관계와 경험의 비지속성의 문제, 사고보다는 감정의 우위성, 대인관계와 그 유지의 문제, 낮은 자존감의 상태 등이 부차적으로 다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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