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자기결정권-아하수에로와 와스디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이선이 칼럼 26

▲이선이 목사(술람미상담소 연구원).
▲이선이 목사(술람미상담소 연구원).

우리나라 대법원이 2013년 5월 16일 부부강간죄를 인정했다. 1970년 대법원은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유지되고 있을 때는 부부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43년 만에 대법원 판결문에서 “민법상 부부간에는 성생활을 함께할 의무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포기를 의미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부부 사이에서도 여성의 존엄성과 성적 자기결정권·행복추구권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실로 의미가 크다.

아내는 오랜 동안 남편의 소유물이었다. 성경에 남편의 한 마디 명령을 거절하여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되는 사건이 있다. 아하수에로는 인도에서부터 구스까지 127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었다. 아하수에로 왕은 정치적인 능력이 뛰어났고, 자기 과시와 연회를 즐겼다. 그가 즉위한 수산궁는 솔로몬 성전에 비견할 정도로 호화스러운 곳이었다. 그는 왕위에 있은 지 3년째 되는 때 방백과 중신을 모아 180일 동안이나 잔치를 베풀었다(에 1:1-4).

180일의 잔치 후에 또 왕이 도성 수산에 있는 백성들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7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다. 왕이 배설하는 잔치는 화려했다. 각기 다른 모양의 금잔으로 술 마시는 것을 자유롭게 하며 어주가 한이 없었다. 왕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에 1:5-9).

잔치 제 7일째 되는 날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내시들에게 왕후 와스디가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라는 명령을 전달하게 하였다.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 싫어하였다. 왕은 마음 속에 불이 일도록 분노가 가득 찼다(에 1:10-12).

아하수에로 왕은 이 사건을 현자들의 조언을 구하는 전례를 따라 바사와 메대의 일곱 지방관에게 물었고, 그 중 므무간은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여인들에게 전파되면 그들도 그들의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황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지방관들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하며 와스디의 행위가 전국의 여인들에게 나쁜 본보기가 된다는 이유로 조서를 내려 왕후가 왕 앞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이 의견을 아하수에로 왕은 적극 수용하였고, 전국에 조서를 내려 남편이 가정을 다스리고 자기 민족의 언어로 말하게 했다(에 1:13-22).

이 일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에 일어난, 오늘날의 여성 인권의 측면에서 볼 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아하수에로 왕이 고대 근동 아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린, 야망 있고 뛰어난 전사이며 또한 무자비한 통치자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하수에로 왕이 잔치를 연 이유는 자기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아내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자, 그는 진노에 휩싸여 결국에 아내를 왕후에서 폐위시킨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희생양 와스디와 같은 아내는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폭언과 폭력, 그리고 강간이 부부 사이에서 일어난다. 아내는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물론 남편도 하나의 인격적인 사람으로 여겨져야 한다.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 5:33). 부부간의 상호 존중은 대법원 판결 이전에 하나님이 기독교인들에게 하신 명령이다.

인간 존중의 태도는 단순히 가정 뿐만이 아니라 사회로 확대되어야만 한다. 아하수에로 왕의 행위는 그 당시에 용납되는 것이었다. 아직도 한국 가정과 사회, 교회 내에 만연해 있는 남녀차별의 행태들은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 개인적·집단적·사회문화적 요인을 아울러 복합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특별히 권력자들이 약한 자들을 성희롱·성추행·성접대를 포함한 갖가지 횡포는, 사회 전반의 성차별적 문화에 대한 자정 노력 없이 개인의 노력으로는 근절하는 데 한계가 있다.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이하며 한국 교회가 부부 상호 존중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델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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