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칼럼 28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그러나 둘이는 마음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모르는 척했더래요. 그러다가 갑순이는 시집을 갔더래요. 시집 간 날 첫날 밤에 한없이 울었더래요. 갑순이 마음은 갑돌이 뿐이래요. 곁으로는 음음음 안 그런 척했더래요.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더래요. 장가 간 날 첫날 밤에 달 보고 울었더래요. 갑돌이 마음은 갑순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고까짓 것 했더래요.” <갑돌이와 갑순이>의 노래 가사이다. 갑순이와 갑돌이는 각자 행복하게 살았을까?
구약의 족장시대에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한 사람이 있다.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도망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왔다. 라반에게는 레아와 라헬 두 딸이 있었다. 야곱은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하였다. 그래서 외삼촌에게 라헬을 위하여 7년을 섬기겠다고 하였다. 야곱은 라헬을 몹시 사랑하기 때문에 7년을 며칠같이 여겼다(창 29:18-20).
7년의 기한이 이르자 야곱이 라반에게 라헬을 요구하여 결혼 잔치를 하였다. 그런데 야곱이 아침에 보니 라반이 자기에게 준 사람은 라헬이 아닌 그녀의 언니 레아였다. 야곱이 외삼촌에게 왜 속였느냐고 따지니,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않는 일이라고 하면서 7일을 채우라 하였다. 그리고 또 7년을 자신을 위하여 섬기라고 하였다(창 29:21-27).
야곱이 그 말대로 7일을 채우니 라반은 라헬을 그 아내로 주었다. 그리고 그는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7년 동안 라반을 섬겼다. 하나님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태를 여셨다. 레아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디나, 즉 6남1녀를 두게 되었다(창29: 31-35, 30: 14-21). 레아는 자녀의 축복을 받았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여 그녀와 결혼하길 원했지만, 외삼촌의 계략에 의하여 레아와 사랑 없는 결혼을 먼저 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친밀감과 책임 의식은 있을지 몰라도 열정이 없는 것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레아를 긍휼히 여기사 어머니로서의 행복을 누리게 하였다. 레아의 넷째 아들 유다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계보를 이어간다.
전통사회의 혼례에 대해 중국인 루쉰은 “마치 가축을 키우는 사람이 가축 두 마리를 넣고 ‘이제부터 너희 둘은 함께 살아야 된다’고 명령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하였다. 고대 중국사회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도 사랑 없는 혼인은 일반적이었다. 부모의 명령이나 중매하는 사람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관례적이었다.
청춘남녀가 만나 몰래 사랑을 나눈다든지 장래를 약속하는 것은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혼이란 다른 집안과 인연을 맺고, 대를 잇고, 남자나 여자나 장성하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와 책무였다. 전통사회에서 남녀 간의 사랑이 혼인하는 당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결혼이란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결실이다. 이제 자유연애 시대가 된 것이다. 사랑이 결혼을 하기 위한 중요 요건이 되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인간의 본성을 마음껏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모든 결혼이 사랑으로 충만한 것도 아니다.
사랑이 유지되는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청춘남녀가 만나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랑과 부부간에 살면서 만들어가는 사랑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남녀 사이의 열정적인 사랑 감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열정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동반자적인 사랑이 유지되기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한다.
야곱과 레아의 시대가 지나갔다. 갑돌이와 갑순이 시대도 지나갔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릴 수 있는 시대이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투자와 관리를 요한다. 서로 좋은 친구가 되는 것,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듣고 실천하는 것,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을 전달하고 표현하는 것, 즐겁고 기쁜 성생활을 하는 것, 정서적인 지지와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것 등이 사랑 있는 결혼생활을 하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