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죽음이 나 때문인 것 같아요.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을 때 관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설마 자살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렇게 착한 아이가 어쩌다가… 다 내 잘못이에요.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불쌍하고 가슴이 아파요. 이제 그만 나도 죽어야겠다는 생각만 들어요….”
몇 개월 전 상담실에 찾아왔던 한 어머니의 절규 어린 말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딸은 오래 전부터 우울증을 앓아왔었고, 병원을 다니면 잠시 치료를 받았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견뎌보겠다며 열심히 일도 하고 이겨내려고 애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딸은 세상을 등지고 어머니 곁을 스스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이 어머니는 충격과 슬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잠을 이룰 수도 없고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딸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결심도 했다고 합니다. 이 어머니에게 이제 산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렸고 깊은 우울증세까지 생겼습니다.
가족의 자살을 경험한 사람들을 ‘자살 유가족’ 혹은 ‘자살 생존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자살 유가족들은 일반적인 사별보다 몇 배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엄청난 고통으로부터 살아남았다는 의미에서 자살 생존자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생존자, 그들은 진정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일까요? 자살을 택한 가족을 향한 원망보다 “왜 내가 막지 못했을까?”라는 죄책감과 자신 혹은 자살한 사람에 대한 분노로 고통받으며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사는 게 고통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은 또 다른 자살충동으로 변해가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자살 유가족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 사회의 자살에 대한 편견과 낙인입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는 더욱 더 편견과 비난이 심하고, 정죄받는 느낌 속에서 더욱 심한 죄책감을 가지게 됩니다.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고통과 사회적 편견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더 큰 희생자는 자살한 사람이 아닌 그의 유가족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슴에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안아볼 수 있다면, 작은 대답이라도 한번 들을 수 있다면 이 찢어진 가슴이 조금이라도 메워질 텐데. 왜? 왜? 왜? 이런 일이…, 엄마보다 훌쩍 커버린 너지만 내겐 늘 아가란다. 아장아장 종종걸음으로 지금도 뛰어와 안긴다. 가슴에 통증이 서리서리 저며온다. 입을 악물어 울음소리마저 터지지 않는다. 가슴이 아파 숨조차 멎을 지경이다. 네가 남기고 간 향수를 살짝 뿌려 본다. 너의 향기를 조금이라도 오래 두어야 하기에 아끼면서…, 너의 동생을 생각해 눈물을 닦고 표정을 감춘다. 너를 내 머릿속에서 멀리하고 엄마 모습을 바꾸어야 하는 현실이 너한테 너무너무 미안하다. 죄책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가야 미안하다. 네 곁에 있어주지도, 아픈 곳을 만져주지도, 그 무서운 것을 함께 해 주지도 못해 정말 미안하다. 너의 가슴과 마음은 얼마나 아팠니. 아빠도 조카 결혼식장에 다녀오더니 시멘트 바닥에 널부러져 앉아 너를 부르며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그칠 줄 모르고 하염없이 우시더구나. 엄마는 그 누구의 결혼식에도 가지 못한다. 사랑하는 딸아 보고 싶다. 미치도록…, 그리고 미안하다.”
2009년 8월, 당시 27세로 자살한 딸을 가슴에 묻은 50대 엄마가 한국생명의 전화에서 펴낸 자살 유가족 수기집에 남긴 글입니다. 이 글을 처음 읽게 되었을 때 너무나 큰 슬픔이 느껴져 한참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식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상처. 세상에서 이보다 더 큰 고통과 슬픔은 없을 것입니다.
그 무엇도 자살 유가족들을 위로하지 못합니다. 섣부른 위로를 했다가는 더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냥 곁에 머물러 함께 울어주는 일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비난도 그치고 편견도 접어야 합니다. 자살 유가족은 극심한 상처를 입은 피해자입니다. 그들은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무엇보다도 자살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도록 우울증을 치료하도록 도와주고 사랑을 부어주는 일, 그것이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심각하게 손상된 마음에서 생긴 우울증이 무수한 사람을 죽이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할 것입니다. 사랑을 주고 관심을 주고 손을 잡아 주어 그 죽음으로부터 건져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이미 자살한 이들의 가족들에게도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입니다. 그들이 또다시 죽음을 선택하지 않도록.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www.kclatc.com
강선영우울증치료연구소 www.lovehel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