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칼럼 29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한다. 고지식한 사람은 순수해 보이고, 고집이 센 사람은 주관이 뚜렷해 보이며, 말 많은 사람은 사교성이 있어 보인다. 얼굴에 있는 점이 보이지 않고, 작은 키도 커 보이며, 치아가 벌어진 것도 멋져 보인다. 즉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 현실을 잘 직시하지 못한다.
성경에 사랑에 빠진 야곱이라는 청년이 나온다. 야곱은 형 에서의 눈을 피하여 멀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주하였다. 야곱은 자신이 에서인 것처럼 하여 아버지로부터 축복기도를 받아 형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와 보니 야곱의 눈에 확 들어왔던 사람이 있었다. 외삼촌의 딸 라헬은 곱고 아리따운 처녀였다. 야곱은 라헬을 보자 첫눈에 반해 버려 그날부터 열심히 일을 하였다.
라반이 야곱에게 품삯을 어떻게 할지 말하라고 했을 때 야곱은 “내가 외삼촌의 작은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창 29:18)고 말했다. 그 당시 남자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 결혼 지참금을 지불해야만 했는데,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하여 칠 년 동안 머슴 일을 자청했던 것이다. 야곱이 그녀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다(창 29:20). 칠년이 되어서 결혼잔치를 하였다. 그런데 라반은 야곱을 속여 그녀의 언니 레아를 신방에 들여보냈다. 야곱이 다음날 아침에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라반에게 따졌으나 지방 풍속을 들어 변명하였다. 라반은 칠 일을 채우면 라헬을 주겠고, 그녀를 위해 다시 칠 년을 일하라고 하였다. 야곱은 억울했지만 그녀를 사랑하기에 감내하였다(창 29:21-27) 우리나라 옛 속담에 “색시가 고우면 처갓집 말뚝 보고 절한다”는 격이었다.
야곱과 라헬은 아이를 갖고자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라헬은 자식을 잘 낳는 레아에게 시기가 나서 야곱에게 자신에게 자식을 낳게 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죽겠노라고 하였다. 이에 야곱은 라헬에게 성을 내면서 그대를 임신하게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고 하였다(창 30:1-2).
세월이 흘러 하나님은 라헬을 생각하사 소원을 들어주셨다. 그녀는 출산할 때 “여호와께서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며 아들의 이름을 요셉이라 하였다. 그리고 라헬이 두번째 임신하여 출산할 때에 산고로 인하여 죽었다. 라헬은 둘째 아들을 베노니(슬픔의 아들)라 불렀으나 야곱은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이라 하였다(창 35:16-18). 야곱은 라헬이 그리워서 그랬는지 그녀의 죽음이 안쓰러워서 그랬는지 요셉에 대한 애정은 유별났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신경전달물질인 페닐에틸아민의 농도가 높아져서 호르몬 대사를 지배하기 때문에 이성이 마비된다고 한다. 이런 콩깍지가 씌어 있는 기간은 길어야 3년 정도 지속된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부부도 행복의 유효기간이 있다. 야곱도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했지만 마냥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낭만적 사랑을 좇아 결혼한다면 3년마다 배우자를 새로 바꾸어야 한다. 재작년에 세상을 떠난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사랑을 좇아 8번이나 결혼하였다. 호텔 상속자, 영화 제작자, 팝가수, 배우, 정치인, 건축업자 등 다양한 직업의 남편을 두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들에게 다 실망하고, 말년에 개 한 마리와 함께하였다.
사랑으로 시작된 결혼을 어떻게 사랑으로 끝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다행히도 페닐에틸아민의 분비가 끝나게 되면 몸에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한다. 이 옥시토신은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게 한다. 옥시토신은 서로를 위한 이해와 노력으로 분비된다고 한다. 아무리 시작을 사랑으로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위기의 중년 부부들은 옥시토신이 활동하도록 상대방의 장단점을 수용하는 제2의 사랑의 자세가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