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칼럼]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2)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상처의 치유는 침묵을 깨고 다가가 고통에 직면하는 것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강선영우울증치료연구소 대표).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강선영우울증치료연구소 대표).

오래 전 보았던 영화 <해프닝>은 아주 독특했습니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바람을 타고 불어오면, 사람들이 하나 둘 스스로 자살하는 끔찍한 장면이 계속 이어집니다. ‘자살 바이러스’. 이것이 중증 우울증 증상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속 사람들이 무엇에 홀린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자살 행위를 하게 되듯, 우울증이 심해지면 마치 자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그 무서운 죽음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차려 보면 너무나 무서운 상황인데도 정신을 못 차린 채 저지르게 되는 자살.

혹자는 자살자를 사회적 도태자라고 보고, 어떤 이는 정신력 부재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그런 속단이 맞는 부분이 있다 해도,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모든 사람은 죽음에 직면했을 때 엄청난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수 년 전 저는 과로로 인해 죽음의 고비를 경험했는데, 그 후 일시적 공황장애가 생길 정도로 공포가 제 영혼을 물들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이후 찬란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상황은 이 세상에서의 개인적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병적으로 혼란스럽고 멍한 상태에서만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용기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마음이 병들어 아무 것도 인지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정신없이 저지르는 행위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살한 사람들의 유가족들은 더욱 고통스러워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지탄이 유가족들에게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가족이 자살자를 따라 자살하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됩니다. 사별의 고통과 더불어, 그런 시선에 대한 고통이 덧입혀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살한 유명인들의 유가족이 똑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떠난 비극적 사건들이, 우리 기억 속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더 이상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무엇보다 주변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자살 유가족 모임에 참석하여 같은 고통을 나눈 사람들과의 공감 어린 지지를 경험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전보다 많이 살 만한 나라가 되었는데도 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자살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을까요? 주간조선에 실린 ‘자살 뒤의 또 다른 비극, 유가족 100만명이 위험하다’라는 기사를 보면, 자살 문제 만큼이나 심각한 것이 유가족의 죄책감과 고립감인데, 그로 인해 이 분들의 자살 위험이 일반인의 6배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인구 10만명당 31.2명, 하루 평균 42명, 2003년 이후 OECD 1위. 대한민국의 자살 현주소입니다. 2009년 기준 OECD 평균 자살률이 10만명당 11.2명에 불과하고, 우리나라에 이어 자살률 2위인 헝가리가 19.8명인 점과 비교하면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OECD 나라들 대부분의 자살률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 한국은 유일하게 2000년 이후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자살은 한 명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가족에게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남기기 때문에, 특히 유가족의 ‘살아남아 있는 지독한 고통과 슬픔’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한 명의 자살 뒤에 직접적인 정신적 외상을 입는 유가족이 평균 여섯 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2010년의 경우 자살자 1만5,566명에 따른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경험한 유가족이 9만3,396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자살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15년간 발생한 자살 유가족을 따지면 100만명이 넘는다고 보고됩니다.

자살 후유증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미국 인디애나대학 존 매킨토시 교수는 책 ‘자살과 그 후유증’에서 “자살 유가족은 강간이나 전쟁, 그리고 범죄적 희생과 같은 깊은 정신적 외상을 남기는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과 공통적인 심리 증상을 겪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국립정신보건원은 “자살 시도자 4명 중 1명 꼴로 가족 중에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특히 자살자 유자녀의 경우는 이것이 학습될 위험이 높아, 성장한 후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해결방법 중 하나로 자살을 선택할 수 있어 문제가 됩니다. 남은 가족들 간에도 ‘자살’이라는 단어는 금기시되고, 입 밖으로 한 번도 꺼내지도 못한 채 억압된 상처 때문에 수십 년 후 정신적 와해를 겪기도 합니다.

상처의 치유는 침묵을 깨고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 고통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저는 상담실에서 종종 자살 유가족의 끝없는 고통을 목격합니다. 그들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 온몸으로 참을 수 없는 통증을 겪으며 함께 울게 됩니다. 그들이 오랜 기간 치유를 거쳐 죄책감을 내려놓고 가벼워질 수 있도록 주위 사람들은 따뜻한 사랑의 시선으로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마음껏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애도의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편견을 깨고 그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자살은 지옥행이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정죄하지 않는 긍휼한 시선으로 유가족을 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살하는 사람이 없도록 주위를 살펴보고, 마음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가 주어야 합니다.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www.kclatc.com
강선영우울증치료연구소 www.lovehelp.co.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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