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달라야 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자라온 교육·가정·시대적 환경 등 여러 가지 개인적인 성장 배경이 다르고 그렇게 습관이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다름을 서로가 인지하지 못하기에 개인적인 시기와 질투가 발생하고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며 서로의 관계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고 교훈함으로, 간접적으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인의 핵심 성품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나와 생각이나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많은 동료들과 사람들을 정죄하고 배척해 왔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여 등을 돌리고 외면하는 일들이 많은 것이다.
오늘의 시대는 급속도로 다양화되어가고 있다. 다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지 않으면 이미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다름에 대한 인정은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 역사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하나로 통일하여 획일화했던 공산주의는 그래서 해체되고 말았지 않는가!
대부분 보수주의자들은 다른 부분과 이해하지 못한 일에 대하여 타락한 시대를 운운한다. 자유주의자나 진보주의자는 지나치게 포용하고 이해하여 진리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일들이 발생하여 근본이 흔들리게 된다. 자유와 권리,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틀린 것도 다른 것도 모두 수용하면서 나아가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하려면, 사물을 이해하고 분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 기본을 더 강하게 하는 것,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사관을 키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내성을 길러야 한다. 어떤 사조나 세속주의 유혹에서 견딜 수 있는 힘과, 틀림을 구별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더 급한 것이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면 수많은 갈등과 분란이 확산된다. 여기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그리스도의 관용을 배우지 못하면 인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가르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습관을 기를수 있다면 세상은 더욱 더 너그러워질 것이다. 서로가 이해하며 존중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진리에 대한 부분에서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단들도 진리를 운운하고 철학자들도 진리를 외치기 때문에, 진리에 대한 기준이나 관점에 따라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깊이 있는 배움과 역사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다름과 틀림의 구분은 상식이나 일반적인 여론으로 판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연습하고 훈련하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 나이가 먹어갈수록 경험이 많아질수록 다름을 인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틀림을 용서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만큼 생각이 자기중심적이 되고 석회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고되면 모든 것은 멈추어 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오늘의 모든 갈등과 다툼의 문제는 대부분 이러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 더 많지 않는가 생각이 든다.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모스크바 선교사)
Lee709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