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충돌 Ⅱ: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2013)」 출간에 즈음하여
WCC 제10차 총회(이하 부산총회) 한국준비위원회가 발행한 「WCC 바로알자(2013)」는 이형기 명예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와 박성원 교수(영남신학대학교)가 쓴 글이다.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지 않으며, 용공주의와 무관하고, 개종전도 금지주의를 선포한 바 없으며, 성경의 권위 위에 굳게 서 있다고 한다. 위 글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부제를 달았다. WCC를 반대하는 보수 진영의 주장들이 거짓증거라는 의미이다.
이형기와 박성원은 공식 문서를 전거(典據)로 일일이 제시하여 객관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그러나 주요 내용은 모두 사실호도이다. 위 신학자들은 나무는 보면서 숲을 보지 못한다. 이 단체가 한 입에 두 혀를 가지고 있음을 간과한다.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사실을 외면한다.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우물에 독 뿌리기 식 논리, 억지주장으로 일관한다.
진보 진영 신학자들이 「WCC 바로알자(2013)」를 읽는다면 매우 당혹스러워하고, 민망스러워할 것이다. 사실호도, 거짓증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형기와 박성원이 강변하는 핵심 요점들은 2013년 정초, 한국교회 4대 단체의 수장들이 작성, 서명, 공표한 이른바 공동선언문의 ‘4대 신학 조항’과 동일하다. 진보 진영 신학자들은 공동선언문의 ‘4대 신학 조항’이 WCC 신학과 불일치하는 까닭으로 이를 강경하게 거부했다. 예장 통합 소속 신학자들과 감리교, 기장, 성공회 소속 신학자들의 주장은 완전히 상반된다.
졸저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2012)」와 「신학충돌 II: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2013)」는 이형기, 박성원이 강변하는 주제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한다.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고, 용공주의 활동을 열성적으로 해 온 사실을 밝힌다. 개종전도 금지주의를 시행하고, 성경 불신주의를 갖고 있음을 상론한다.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출간된 필자의 책이 나중에 간행된 이형기와 박성원의 책에 구체적으로 답한다.
1. 궤변
이형기와 박성원은 WCC가 ①자유주의 신학과 무관하고 ②편협하지 않은 온전한 신학을 추구하며 ③사회선교만 하지 않고 통전적 선교를 하고 ④이중의미의 언어세계가 아니라고 하며 ⑤자유주의 신학 일변도 단체가 아니라고 한다. 핵심 주장들에 대한 논의에 앞서, 이들의 두 가지 궤변을 먼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교회의 보편적 속성에 대한 이형기와 박성원의 관점이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와 연결되지 않으면 사도신경의 우주적 공교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면서 “각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거룩한 교제로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그 보편적 교회성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영향을 받은 WCC 교회관을 반영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재확인한 성경적 교회는 기본적으로 가시적 기구가 아니라 불가시적인 신앙고백 공동체이다. 교회의 보편적 속성은 사도적 신앙을 공유하는 데서 발견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기독교의 중추적인 교리를 고백하는 교회는 세계교회와 가시적인 연결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 “WCC 에큐메니칼 운동이야말로 에반젤리칼 운동이다”고 한다. WCC “에큐메니칼 운동은 곧 복음적 운동이다. … 에반젤리칼과 에큐메니칼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한다. 이 궤변은 에반젤리칼하면서도 에큐메니칼하고, 에큐메니칼하면서도 에반젤리칼한 태도를 가진 예장 통합의 회색주의 태도를 대변한다.
궤변은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는 상태에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내뱉는 억지 주장이다. 완전히 그릇된 것이 아니라 핵심이 틀린 주장이다. 에큐메니칼은 철저한 에반젤리칼이라는 식의 말은 흑이야말로 진정한 백이며, 하늘이야말로 진정한 땅이라는 말과 같다. 남자야말로 진정한 여자이며, 정통은 진정으로 이단이라는 말과 같다. 자유주의 신학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주의 신학이며, 참이야말로 진정한 거짓이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2. 종교다원주의
이형기와 박성원은 WCC가 종교다원주의와 무관하다고 강변한다. “WCC는 기독교 신앙에 굳게 서서 종교 간의 대화를 도모한다. WCC가 다원주의를 조장한다는 말은 거짓증거”라고 한다.
WCC가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두고 종교 간의 대화를 하지만 “종교간 대화를 할 때 기독교 신앙을 벗어나서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이 말은 김삼환 목사(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가 “WCC 내부의 소수의 신학자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WCC 자체가 그러한 신학(종교다원주의)을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고 한 말과 일치한다.
종교다원주의는 현대판 자유주의 신학이다. WCC 연구가 정병준 박사(서울장신대학교)가 지적하듯 “종교다원주의란 ‘하나님에게 이르는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기독교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役事)가 있다는 신학 사상이다.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총을 기독교에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타종교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WCC는 종교간 대화 맥락에서 이단적인 주장을 펼쳐 왔다. 7개의 공식 문서에서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without setting limits to the saving grace of God)”고 한다. 기독교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는 의미이다.
WCC는 창조주 하나님은 어느 때와 어느 장소에서도 자신을 증언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한다.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분명한 개인적 헌신에 한정하는 신학을 넘어설 필요성을 인정한고 말한다. 구원의 신비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양떼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하다고 한다. 성령 하나님은 ‘살아 있는 신앙인들(the people of living faith, 타종교인들)’의 삶과 전통 안에서도 활동한다고 솔직하게 확언한다고 말한다. 이상의 선언들은 WCC가 종교간 대화와 구원론 논의 마당에서 줄기차게 표방한 이단 사설(邪說)이다.
‘바아르 선언문(1990)’은 WCC 캔버라 총회가 보고를 받은 공식문서이며, 지금도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 실려 있다. 이 문서는 종교다원주의를 분명하게 선언한다. WCC가 지향하는 만인보편주의 구원관에 근거하여 종교다원주의 구원관을 아래와 같이 분명하게 선언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게 된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서도 나타나지만, 이제 이 제한들은 초극(超克)되었다. ‘우리는’ 구원이 보편적이며, 타종교 신앙인들, 살아 있는 신앙인들의 삶과 종교 전통 안에도 성령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다고 선언한다. 전 인류가 우주적 그리스도 곧 다양한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부산총회에서 선포될 WCC의 새로운 선교-전도 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 지형변화 속의 선교와 전도(2012)’도 종교다원주의를 담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총에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신앙인들(이슬람, 불교, 힌두교, 도교 신봉자)’의 삶과 전통 안에서 활동하며, 그 하나님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 피선교지에 우리보다 앞서 가서 계시며, 따라서 우리의 선교는 그곳에 이미 존재하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이라고 한다.
WCC의 신학에 따르면, 종교다원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꼭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까닭이 없다. 기독교 선교와 선교사의 과제는 불교인에게 성불(成佛)에 전념하라고 권하고, 힌두교인에게는 자기가 섬기는 신들에게 더 충성하라고 격려하고, 무슬림에게는 ‘알라’에게 더욱 매달리라고 충고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선교’ 곧 인간화, 인권운동, 혁명투쟁, 환경보호, 인도주의 활동만 하면 된다.
종교다원주의는 진리상대주의, 만인보편구원주의, 종교혼합주의와 얽혀 있다. 종교대화주의는 기독교의 진리를 양보하거나 포기할 각오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는 진리상대주의에 기초해 있다. WCC는 기독교와 역사적 종교들과의 통합·혼합을 지향한다. 캔버라 총회(1991) 개회식에서 정현경 박사가 펼친 초혼제 푸닥거리 한마당은 WCC의 종교혼합주의를 예술적 퍼포먼스로 정교하게 표현한, 계획된 행사였다. 정현경의 푸닥거리 한마당은 WCC 신학 흐름과 방향성을 제시했다.
WCC는 기독교 공동체를 넘어서는 종교 신학을 모색한다. “우리는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시적 인격적 위임에만 국한시키는 신학을 넘어서야 할 필요를 인식한다(a need to move beyond a theology which confines salvation to the explicit personal commitment to Jesus Christ)”고 한다. WCC는 기독교 공동체를 넘어서는 폭넓은 에큐메니즘(wider ecumenism)’과 ‘거대 에큐메니즘(macro-ecumenism)’을 거론하고 있다. 종교혼합주의를 지향하면서, 모든 역사적 종교를 아우르고 일치시키고 싶어한다.
WCC는 지금까지 ‘바아르 선언문’이 자신의 신학과 모순되거나 이를 거부한다고 하는 의사 표명을 한 적이 없다. 위 문서는 현재도 WCC 홈페이지에 실려 있다. 바아르 선언문은 캔버라 총회에 보고된 WCC의 공식 문서이다. WCC는 정현경의 초혼제가 WCC의 신학 입장과 무관하다고 밝힌 적이 없다. 정현경의 푸닥거리 한마당이 그의 개인적인 해프닝이라고 밝힌 적이 없다. 초혼제는 WCC의 신학과 방향성을 담아낸 기획된 행사였다. 총회 기조연설장은 아무나 올라가서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3. 용공주의
이형기와 박성원은 WCC가 용공주의와 무관하다고 한다. “WCC를 용공단체로 낙인 찍은 일은 미국의 극우반공주의자 칼 매킨타이어와 그가 이끄는 국제기독교교회협의회(ICCC), 그리고 이들의 사주를 받은 남아공 인종차별백인정권”이라고 한다. 매킨타이어는 WCC의 용공주의 정책과 활동을 비판한 사람이다. 그는 허위사실을 거짓으로 꾸며내고 낙인 찍은 사람이 아니다.
WCC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용공주의 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1960년대 초 수용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정책 때문이다. WCC는 그 때부터 마르크스주의 시각으로 복음을 이해해 왔다. 이러한 기조(基調)를 가지고 세계 여러 지역의 혁명 활동과 해방 투쟁 사업에 거액을 지원했다. 1970년에서 1978년까지 인종차별투쟁사업(Program to Combat Racism)에 미화 306만여불을 제공했다. 1978년에는 로디지아 애국전선 게릴라들에게 미화 8만5천불을 원조했다. 나미비아의 게릴라 부대인 남서아프리카인민기구에 미화 12만5천불을 지원했다. WCC가 쿠바에서 훈련을 받고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마르크스주의 게릴라들에게 재정을 지원하고 정치적으로 지지한 것은 명백한 용공주의 활동이다. WCC는 무력사용을 정당화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WCC의 용공주의 활동을 최초로 본격적으로 연구한 어네스트 레훼버(Ernest W. Lefever)는 미국 국무성 인권담당 보좌관을 역임했다.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시절에 저술한 「암스테르담에서 나이로비까지: WCC와 제3세계(1981)」에서 WCC가 매우 위험한 정도로 마르크스주의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책이다. WCC는 레훼버의 책에 대한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WCC가 출판한 「세계교회협의회 40년사」는 그가 지적한 내용들을 인정하면서도 WCC의 행적은 변호한다. 레훼버의 정보들이 신중하고 정확함을 시사한다.
아르민 보엔스 박사(Armin Boyens)는 1961년부터 1966년까지 WCC 제네바 본부의 핵심 직원으로 일했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WCC의 용공주의 활동을 탐색한 연구서를 저술했다. 전 총무 유진 블레이크와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WCC 총무들이, 공산권 국가에서 일어나는 헤아리기 어려운 인권 문제들을 무시하고 용공주의 활동을 했던 행적을 소개한다. WCC가 역사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투쟁으로 이해하는 마르크스주의와 해방신학을 수용하고, 인종차별 반대투쟁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용공주의 활동을 한 전력을 공개한다. WCC가 미국에서 대해서는 투쟁적이었고, 동구권 공산국가들에게는 친절했다고 지적한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게하르드 바지에르 교수(Gehaard Basier, 교회사)는 WCC의 용공주의 활동에 관한 저서에서 주류 회원교회들이 마르크스주의 혁명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역사를 소상히 기술했다. WCC가 마르크스주의 혁명의 대리인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WCC 미국 지부 격 단체인 NCC-USA의 공산주의 활동과 재정 지원 사실을 상세히 밝힌다.
WCC의 용공주의 활동에 대한 오늘날 평가가 냉전시대와 똑같을 수는 없다. 반공이 친미는 아니며, 친미가 반드시 반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WCC와 용공주의가 무관하다고 하는 이형기와 박성원의 주장은 사실호도이다. WCC 한국지부격 단체인 NCCK는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고 ‘반공의 죄를 참회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WCC의 용공주의 경향은 사회주의 성향을 가진 종북 좌파 기독인들이 WCC 신학을 적극 환영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4. 개종전도 금지주의
이형기와 박성원은 “WCC가 결코 개종전도 금지주의를 선포한 적이 없다”고 강변한다. 개종전도 금지를 선포했다는 비판은 “WCC의 생성 동기나 역사나 현재의 선교 노력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다”고 한다. WCC가 (씨를) 뿌리는 임무는 교회가 모든 인간 공동체 안에 존재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WCC가 개종전도금지주의를 선포했다고 하는가?” 하고 개탄한다. WCC가 염려하는 것은 “양 훔치기 식 전도방법”이라고 한다.
WCC는 1997년에 개종전도 금지주의를 선포했다(‘Towards Common Witness: A Call to Adopt Responsible Relationships in Mission and to Renounce Proselytism’, 1997). 이 문서의 핵심은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의 미신적인 신앙 습속을 비난하지 말고, 개신교회의 구원관 곧 이신칭의(以信稱義)를 더 우월한 교리라고 주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형식상 또는 명목상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 신자들에게 구원론 중심의 개종전도 활동이나 교회 설립을 금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가 선점한 지역에서 복음 전도는 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교’만 하라고 한다.
첫째, 다른 교회(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역자 주)의 교리, 신앙,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구체적으로 대화하려 하지 않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비판하거나 비웃는 행위, 성상을 받는 모습을 우상숭배라고 비난하는 행위, 마리아와 성인을 향해 우상이라고 비웃거나 죽은 자에 대한 기도를 비난하는 행위.(중략)
셋째, 자기의 교회가 다른 교회의 드러난 약점과 문제에 비해 높은 도덕성과 영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행위.(중략)
여덟번째, … 나아가서는 특정한 교회가 주장하는 구원관을 더 우월한 교리라고 주장하는 행위.
WCC 신학은 점차 반기독교적이고 비성경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 위 개종전도 금지주의도 마찬가지이다.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 관계에서 선언된 개종전도 금지주의는 WCC 부산총회(2013)가 보고를 받아 선포할 선교-전도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 지형변화 속의 선교와 전도(2012)’에서 ‘이웃 종교인들’, 곧 타종교인들에게 적용된다.
“개종주의(Proselytism)는 복음 메시지에 역행한다. 전도할 때 서로 다른 신앙(타종교의 신앙―역자 주)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존경과 신뢰 관계의 정립이 중요하다. 우리는 각각 모든 문화(종교 포함―역자 주)의 가치를 존중하며 복음이 특정 그룹(기독교―역자 주)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만인보편구원주의―역자 주)임을 인정한다.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을 선교지로 모셔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계시하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종교다원주의―역자 주)이다.”(‘함께 생명을 향하여’, 110항).
‘개종전도 금지주의’는 WCC의 반개종주의(Renounce Proselytism)와 선교유예(Mission Moratorium)를 하나로 묶어 우리말로 옮긴 신조어이다. 이 단체의 선교정책을 정확히 담아낸다. 공동선언문 사태 때 한국 진보계 신학자들과 NCCK와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개종전도 금지주의 반대에 유별난 반감을 드러냈다. 그 선언문이 WCC가 천명하는 반개종전도와 선교유예 원칙, 곧 개종전도 금지주의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까닭이다.
5. 성경의 권위
이형기와 박성원은 WCC가 성경의 권위에 굳게 서 있다면서, 성경을 “하나님을 만나는 책”으로 규정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만나는(encountering) 책이라는 이 표현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is)”라고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become)”고 보는 바르트주의 성경관을 반영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수단―도구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도 아니다. 문학서와 역사서와 같다. 따라서 무오하지 않다. 이처럼 바르트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관적 차원으로 격하시킨다. 기독교 복음의 절대성을 주관화·상대화한다.
이형기와 박성원은 “WCC는 성경의 권위 위에 굳게 서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성경’은 한국교회가 믿고 고백하는 성경이 아니다. WCC는 성경 66권을 하나님 특별계시의 무오한 말씀이라고 고백하지 않는다. WCC 교회일치운동에 투신하는 로마가톨릭교회는 73권의 ‘성경’과 ‘기록되지 않은 성경’ 곧 ‘성전(聖傳)’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회는 성경만을 계시된 진리의 원천이라고 보지만 로마가톨릭교회는 성경과 성전 두 가지를 계시의 원천이라고 보아왔다.
WCC 가맹교단의 한국 진보계 신학자들은 성경을 66권에 제한시키는 공동선언문을 질타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성경’(가경 7권 포함)을 존중해야 한다는 까닭이다. WCC가 영리하게 고안한 ‘전통론(몬트리올보고서, 1963)’을 근거로 로마가톨릭교회 교회관을 사실상 인정하고 묵인한다. 반면에 개신교 신앙의 정박지인 ‘오직 성경’ 원리를 내팽개쳤다.
WCC의 ‘에큐메니칼 성경관’은 로마가톨릭교회의 관점을 수용하고, 바르트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 급진주의 신학 성경관을 종합한 것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전 총장 김중은 교수(구약신학)는 동료 이형기 교수가 역사적 장로교 신학과 성경관을 고백하지 않으며 ‘에큐메니칼 성경관’을 지향한다고 지탄한다. WCC의 에큐메니칼 성경관을 양두구육(羊頭狗肉)에 비유한다.
이형기는 자신이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선언’을 작성하면서 기존의 정통신학 패러다임을 버렸다고 밝힌다. 바르트주의 신학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었고, WCC의 문서들을 번역하면서 에큐메니칼 패러다임으로 또 다시 신학 패러다임을 바꾸었다고 한다. 김중은의 불만은 동료 이형기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한국 장로교회의 신앙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성경 불신주의’로 일컫는 WCC의 에큐메니칼 성경관을 따른다는 말이다.
이형기와 박성원은 WCC가 성경의 권위를 부인한다는 말은 낭설이라며 지탄한다. WCC가 “어떤 신학적 주장을 할 때 성경을 인용하면서 성경적 근거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WCC의 문서들의 성경인용 방법은 대체로 아전인수격이며 견강부회식이다. 예컨대 ‘함께 생명을 향하여(2012)’가 강조하는 만물의 생명, 생명 충만을 요한복음 10장 10절을 근거로 인용한다. 이 본문이 말하는 ‘생명’은 WCC가 말하는 자연적인 목숨, 모든 생명체들이 가진 생명(bios)이 아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 선한 목자의 대속사역의 결과로 얻는, 영적이며 영원한 생명(zoe)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WCC 교회일치 운동에 가담하면서도 개신교회를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 시론, 성찬론, 사도직 계승론과 관련하여 교회의 구성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직전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2007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기존의 교회를 바꾸지 않았고 바꿀 의도도 없었다고 성명했다. 개신교회는 유효한 성례를 가진 ‘교회’가 아니라고 했다. 영국 국교회는 예외이다. 교황 무류 교리를 가진 로마는 교회와 신앙에 관한 선언을 바꿀 수 없다. WCC는 로마가톨릭교회를 사실상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다. 사도직 계승교리, 성전(聖傳)교리, 마리아론, 성찬론, 성인을 향한 기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연옥설 등을 문제 삼지 않는다.
맺음말
2013년 정초 한국 기독교 4대 단체의 수장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공동선언문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을 담고 있다. 이 문서에 대한 진보 진영의 반발은 한국교회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발상이 허구임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은 기독교와 WCC, 한국교회와 WCC 사이에 존재하는 신학충돌, 패러다임의 차이를 드러냈다. 양측은 상극관계이며, 하나가 아니며, 결코 하나될 수 없는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한국교회가 하나의 가족(one household)이라거나, 진보계와 보수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근본적으로 하나라거나, 상호 보충적 관계라는 따위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알려주었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교회 일치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 교리 고백에도 불일치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NCCK 지도부와 성공회대학교, 감리교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신학 교수들, 진보계 에큐메니칼 신학자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공동선언문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4대 신학조항’이 WCC 신학과 정신에 불일치한다는 까닭이었다. 공동선언문에 대한 거부 행사로 열린 에큐메니칼 신학 심포지엄(2013.2.4)은 ‘4대 신학 조항’과 대립하는 WCC 신학을 확인했다. 이정배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는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있다고 선언했다. 예장 통합 에큐메니칼 정책세미나(2013.2.15)는 공동선언문의 ‘4대 신학 조항’을 폄훼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진실하고 정확한 정보와 신뢰에 기초를 둔 신앙고백공동체이다. 고의적으로 사실호도―거짓증거를 하는 기독교 운동은 하나님 앞에서 정당할 수 없다. WCC 한국준비위원회가 한국교회를 기만하는 책을 출간함으로써 기독교 단체가 갖추어야 할 도덕적 권위를 사실했다. 양심의 판단, 역사의 판단,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없다. WCC에 대한 사실호도는 능사가 아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이다.
한국준비위원회의 행보는 여러 측면에서 일제말기의 친일파 목사들의 행적을 연상시킨다.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2012)」와 「신학충돌 II: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2013)」, 그리고 이 글에 대한 진보 진영 신학자들, 특히 이형기와 박성원의 학문적인 비평을 기대한다.
/최덕성 교수(브니엘신학교)